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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탈핵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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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옥 May 31. 2023

싸놓은 똥은 치워야지 않것소?

농사꾼 노병남의 핵사고종합세트 한빛핵발전소 30년 투쟁기

서울 한복판에 울려 퍼진 ‘고준위건식저장시설 반대’     


“영광군민들은 오늘 한수원 이사회의 ‘고준위건식저장시설’ 논의 자체가 무효임을 분명히 선언했어요. 지역주민들 의사는 한 번도 묻지 않고 서울 한복판 즈그덜 사무실에 숨어 쥐새끼처럼 방망이 뚜드리면서 백날 결정해 보씨요. 우리가 가만 있나!”     


서울 중구 한복판이 낯익은 영광 사투리로 쩌렁쩌렁하다.

30년 넘게 한빛핵발전소와 공존하며 싸워온 농사꾼이자 베테랑 탈핵운동가 노병남 영광군농민회장 목소리다. 

4월 4일 ‘탈핵 잇_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대뜸 내일모레 4월 6일 ‘서울로 데모하러 온다’라는 노병남 회장 말에 원불교환경연대 조은숙 사무처장에게 연락해 부랴부랴 일정을 잡고 4월 6일 오후 1시 중구 서소문로 한수원‘방사선보건연구원이 있는 센트럴타워로 달려갔다.

‘한수원은 영광군민 동의 없는 한빛원전 내 건식저장시설 계획의 이사회 상정을 즉각 철회하라!’는 현수막을 펼치고 항의 집회가 시작되자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도 멈춘다.

한빛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이하 민간감시기구)위원들과 영광군의회 의원, 영광지역주민 열다섯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집회 사회를 맡은 노병남 회장은 ‘임시’라는 이름을 달고 ‘영구’핵폐기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건설’을 지역주민 의견 한마디 듣지 않고 한수원 이사회가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도, 정의도, 자유도 아닌 비열한 폭력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2023년 4월 6일 영광주민대표들이 한수원 방사선보건연구원 앞에서 한수원이사회가 '고준위핵폐기물 건식 임시저장시설'을 결의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영광은 풍성했던 어장도 포기하고 핵발전소 지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전기를 생산한 죄밖에 없어요.”      

마이크를 넘겨받은 영광주민은 “1986년 한빛1호기를 시작으로 2002년 한빛5·6호기까지 건설되면서 영광군민들의 행복은 짓이겨졌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민어, 조기로 유명한 칠산 앞바다 어장은 풍성했고 가마미 해수욕장은 여름이면 피서 인파로 넘치는 아름다운 해변이었어요. 그런데 핵발전소가 들어서고는 어느 날부터 잠을 못 자요. 2000년대 초반 짝퉁 부품 사건으로 심장을 오그라들게 하더니 어느 해에는 핵발전소 안에 망치가 들어있다고 하질 않나, 구멍이 100개도 넘게 발견됐다고 하질 않나? 생각만 해도 오싹한 사건 사고들이 줄줄이 터졌어요.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사업자인 한수원이 고준위 핵폐기물까지 떠안으라는 결정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날 발언에 나선 영광주민들은  “방사선 환경영향평가는 강화되었는데 왜 ‘해양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항목 자체가 빠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영광군이나 의회에서 반드시 해양 환경영향평가를 추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빛 1~6호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배수로 이미 영광 앞바다는 어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우리마을에는 벌써 한수원이 관광버스를 돌리기 시작했어요     


한빛핵발전소 인근 마을에 사는 주경채 민간감시기구위원은 한수원 ‘고준위핵폐기장 대응팀’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벌써 우리 마을에는 관광차가 가동되기 시작했어요."

야유회를 빙자한 한수원은 대절한 관광버스에 마을주민들을 태워 관광지와 연결된 핵발전 시설을 견학시키며 고준위 건식저장의 안전성을 선전하는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다른 지역에 1차 견학을 다녀왔고 이번에는 요즘 잘 나가는 순천만을 다녀왔더라고요.”   

  

주 위원은 “30년 넘게 핵발전소 인근 마을에 살면서 한수원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갈가리 찢고 서로 싸우게 하는 모습을 진저리치게 봐왔다”라며, 존재 자체가 불의한 핵발전소와 추가시설을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노병남 회장의 표정이 황당하다. "참내 오늘 얼척 없는 일을 다 당하네요. 제 뒷통수에서 누가 동영상을 찍고 있길래 영광군이나 의회쪽 직원인 줄 알았어요. 그래도 하도 열심히 찍길래 가서 물어봤더니 한수원 직원이랍니다. 주경채 위원이 말한 한수원 홍보팀이 이렇게 백주대낮에 대놓고 활동을 해요.“     

노병남 회장은 당장 지우라고 요구했고 지우겠다는 말만  남긴 한수원 직원은 어느새 사라졌다. 

영광초등학교 앞 게시대에는  '핵발전이 안전하다'는 한수원 홍보문구가 10년 내내 걸려있고 심지어 불갑사 주변 나무이름표에도 한수원 이름을 떡하니 붙여 놓았단다. 지역주민 안전을 위해 사용하라는 세금이 사업자 한수원 홍보비로 줄줄 새어나가고 있는 증거는 영광땅에 발을 딛는 순간 알 수 있다. 

비가 그치더니 일기예보대로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차다. 하루 전만 해도 평균기온보다 높아 방심하고 남도 기온에 맞춘 영광사람들 옷차림이 못내 걱정이다.


“군민동의 없는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반대한다.”


노병남 회장이 목소리를 높여 구호를 외치며 추위를 털어낸다.     


“다시 한번 선언합니다. 오늘 한수원 이사회의 ‘고준위건식저장시설’ 건설에 대한 결정은 무효이고 영광군민들은 끝까지 막아낼 것입니다.”     


항의서한을 한수원 측에 전달한 영광주민들이 버스에 오르고 영광으로 출발했다. 한수원의 ‘뒤통수치기’가 예정되어 있음을 알기에 영광으로 내려가는 길, 현장 투쟁에 대한 논의가 무성했을 것이다.

예상대로 오후 뉴스에 한수원 이사회가 ‘한빛·한울 핵발전소 내 핵폐기물 임시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의결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온다.     


“한수원과 정부가 ‘고준위핵폐기물 영구처분장’을 짓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전국 곳곳을 후보지로 정했지만 2004년 ‘부안 핵폐기장반대투쟁’처럼 어마어마한 반대에 부딪혀 전국 어디에도 짓지 못했잖아요. 영구처분장에 대한 계획조차 없는 상황에서 핵발전소 부지 내에 임시저장고를 짓는다는 의미가 뭡니까? 바로 그 자리가 영구처분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영광을 10만년, 100만년 동안 핵무덤 만들겠다는 거예요. 지난 40여 년간 전기생산을 위해 희생을 치르며 핵발전소를 품고 사는 지역에 또다시 핵폐기물까지 떠안으라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노병남 회장의 분기탱천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한빛원전 고준위핵폐기물 영광군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4월 26일 한빛핵발전소 정문 앞에서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설치 반대 영광군민규탄대회’(이하 규탄대회)를 열기로 했다.    

 

 40년 희생의 대가가 고준위 핵폐기장 이라구요?     


 서울집회 이후 한 달 만에 영광에서 노병남 회장을 만났다. 가정의 달 5월은 가족 행사들로 분주하다. 늦은 결혼으로 아직 어린이날을 치러야 하는 줄 알고 5월 6일로 날을 잡았더니 초등학생인 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 청소년이란다. 만나기로 한 영광군농민회 사무실은 농민회관 3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노병남 회장과 필자와의 인연도 33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영광군 농민회원으로 만났으니 말이다.     

“4월 26일 집회는 어땠어요?”     


바쁜 농사철임에도 불구하고 4월 26일 한빛핵발전소 정문 앞에서 열린 규탄대회에는 600여 명의 영광주민들이 모였다. 그만큼 고준위핵폐기장 건식저장 시설에 대한 반감의 반증이다. 영광은 2002~2003년까지 핵폐기장 투쟁을 벌여 막아낸 경험이 있다. 물론 김종규 부안군수가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하는 바람에 핵폐기장 투쟁이 부안으로 넘어간 이유도 한몫하긴 했었다.     


“아무래도 군의회가 주축이 된 공대위가 주관한 행사다 보니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이 모였어요. 게다가 2025년, 2026년 40년 설계수명이 만료돼 폐로가 예정되었던 한빛1·2호기 수명연장 문제까지 발등에 떨어진 현안들이 심상치 않아요.”     

2023년 4월 26일 한빛핵발전소 앞에서 열린 '고준위핵폐기물 임시 건식저장시설 반대 영광군민 규탄대회'에 참석한 노병남 회장

핵발전 부흥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 1월 12일 핵발전소 적극 활용, 신재생 합리적 보급, 석탄 감축 유도 등의 방향을 담은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전원별 비중(실효용량 기준)을 현재 LNG 35.9%, 석탄 32.8%, 핵발전 21.5%, 신재생 6.1%에서 2036년 LNG 44.7%, 핵발전 21.9%, 석탄 18.5%, 신재생 10.0% 등으로 구성했다. 발전소별 수명 만료를 감안하면 핵발전 0.4% 증가는 높은 수치다.

특히, 오는 2025년까지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 2033년 신한울 3‧4호기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수명 만료로 전력수급계획에서 제외했던 한빛 1·2호기 등 핵발전소 11기가 다시 포함됐다.

2년 전 수립했던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2023년과 2024년 고리 2·3호기, 2025년과 2026년에는 고리 4호기와 월성 2호기에 한빛 1·2호기 등 2034년 한빛 3호기까지 원전 11기가 수명만료로 공급물량 제외설비에 포함됐었다. 영광군은 전문기관 용역을 통해 한빛 1·2·3호기 폐로 이후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TF팀을 만들기도 했었다.      


“4월 6일 한수원 항의집회에서 주경채 위원도 말했지만, 한수원은 이미 대외협력처에 ‘수명연장과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건립을 추진할 전담팀(PA)’을 만들어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어요. 올 상반기에 한빛핵발전소측도 규제기관인 원안위에 수명연장 신청서를 제출할 겁니다.


4월 7일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이 낸 ‘한수원은 영광핵발전소 독단적 결정, 즉각 철회하라!’는 제목의 긴급성명서에도 기존 핵발전소 내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서둘러 결정하는 이유로 윤석열 정권 하에서 적극 추진되는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지적하고 있다.

영광에 한빛핵발전소가 들어선 지 37년째이다. 1986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총 6기 가동으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모두 격납건물 옆 수조에 습식 저장되어 있다. 전국의 25기 발전소가 고준위핵폐기물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한빛핵발전소의 현재 수조 포화율이 75%를 넘어 2030년이면 포화상태가 된다는 것이 사업자 한수원의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위험하게 수조에 관리하는 것보다 영구처분장을 마련할 때까지 임시 건식저장시설이라도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냐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노병남 회장은 어떤 입장인지 물었다.   

  

“화장실 없는 집을 지어놓고 임시화장실은 짓고 살다가 40년 된 낡은 집을 부술 때가 되니 추가로 임시 화장실을 짓고 10년 더 살겠다는 짓거리에요. 싸 놓은 똥은 치워야 되지않것소?핵폐기물 처리대책도 없이 오로지 핵발전을 중심으로 전국민들에게 전력을 수급한 대가를 왜 핵발전소 지역이 또다시 떠안아야 합니까? 고준위핵폐기물 중 ‘우라늄234’ 같은 핵물질은 반감기만 24만 년이 넘어요. 더군다나 ‘고준위건식저장시설’은 언제까지 운영한다는 기간도 설정하지 않았어요. 말만 ‘임시’지 ‘영구처분장’이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예요. 고준위핵폐기물 처리 시설 문제는 일단 ‘탈핵’이 전제가 되어야 해요. 안 그러면 핵발전소 내에 계속 추가시설이 들어서고 지역은 더 위험에 빠지게 돼요.”     


전제 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한수원이 막무가내로 지역주민 의견수렴과 국민적 동의도 없이 기존 핵발전소 내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서둘러 결정하는 이유는 윤석열 정권이 추진하는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과 맞물려 있다. 탈탈핵을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정권은 안전성 강화로 설계비용이 오르면서 신규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니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으로 방향키를 돌렸다.


“고준위건식저장시설은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위한 대안이에요. 핵발전을 멈추고 줄이는 것이 아니라 핵진흥을 하겠다는 것이 전제인데 지역주민들의 동의가 되겠습니까? 추가 핵시설은 절대 안 돼요! 한수원도 추가시설은 하지 않겠다고 그동안 누누이 약속을 했구요.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집단이긴 하지만요.”

“이제 투쟁은 시작되었어요.”     


땜빵, 땜질 한빛 4호기 재가동     


 2022년 11월 30일 영광고창주민 100여 명이 서울 원안위 앞에서 한빛 4호기 재가동 반대 항의집회를 열었다.


 “그날도 겁나게 춥드만요. 핵발전소는 18개월 돌리고 40~60일 동안 세워서 점검해요. 2017년 계획예방 기간에 한빛 3호기에서 82개, 4호기에서 102개의 구멍이 발견됐어요. 그것도 방사능누출을 막는 최일선에 있는 격납시설에 구멍이 숭숭 뚫린 거지요. 핵마피아들이 입만 열면 5중 방호벽으로 방사능 누출 가능성은 없다고 선전해 왔던 그 방호벽이 뚫린 것에요. 그런데 5년 7개월 동안 진상조사하고, 구멍 때우고, 녹슨 철판 오려내고 땜질해서 다시 돌린다는 거예요. 게다가 상부 돔은 구멍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로 가상검사를 했어요. 전수 조사 안하고 가상으로 괜찮을 거야. 뭐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한수원과 규제기관 원안위가 이런 위험천만한 짓거리를 해요.”


한빛 3·4호기는 우리나라 최초로 국내 기업인 현대 건설이 주도하여 건설하고 1995년부터 상업가동을 시작한 핵발전소다. 한국 순수기술로 건설해 드디어 핵발전 강국으로 발돋움했다고 핵마피아들이 침 튀기며, 선전해 대던 한빛 4호기 격납건물 콘크리트 벽체에서 부실시공이 확인된 것은 2017년 6월 26일의 일이다. 둥근 벽체를 감싼 내부철판(CLP)에 부식 흔적이 있어 일부를 걷어냈더니 원주 방향 전체에 약 20㎝ 깊이의 빈 구멍(공극)이 나 있었다. 한빛 3·4호기 격납고에 184개의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난리가 났지만, 공사할 때부터 부실공사라고 소문이 났었어요. 영광사람들 사이에서 저러다 반드시 사고 난다는 이야기들이 나돌았어요.”

한빛 3, 4호기는 구멍, 망치, 부식 등으로 재가동이 불가능함에도 때우고, 땜질해서 2020년, 2022년 재가동 했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한빛 3·4호기의 부실공사는 이를 실제로 목격한 제보자들과 건설 당사자들이 고발한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17년 8월 10일 발표한 환경운동연합 성명서에 따르면 당시 한빛 3·4호기 공사에서는 녹이 슨 철근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강도가 떨어지는 철근을 설치하여 철근이 매우 조밀하게 설치되었다. 그리고 규격 이상 크기의 자갈이 많아 골재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등 콘크리트 다짐 작업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건설 당시 불법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현장에는 관리 감독을 해야 하는 한국전력의 개입이 없었다. 그리고 격납건물 건설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 품질 검사의 실패가 연이어 발생했으며 격납건물 콘크리트 다짐 작업을 미숙련 노동자가 진행했다는 제보 등이 잇따랐다.

영광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한빛원전안전성확보 민관합동조사단’이 꾸려져 2019년까지 특별점검을 벌인 결과 4호기 벽체에서 발견된 공극은 140개나 됐고 이 중 깊이가 157cm나 되는 것도 있어 동굴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빛 3·4호기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또한 192곳의 내부철판 부식, 23곳의 철근 노출이 확인돼 한빛 4호기는 재가동은커녕 조기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2019년 당시 가동 중인 핵발전소 24기에서 발견된 공극은 332개이고 공극의 90%는 한빛 3·4호기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철근 노출은 한빛 3호기에서만 184곳으로 23%를 차지했다.

원자력계 인사들로 구성된 안전점검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킨스)조차도 시공업체가 애초 설계상 제거해야 하는 임시보강재를 그대로 둔 상태로 야간에 자주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 “공기 단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경영 문화가 공극 발생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결론 냈다.

한빛 4호기와 함께 격납건물에서 공극이 발생했던 한빛 3호기는 ‘한빛 4호기 격납건물 상부돔 내부철판(CLP)검사’, ‘국회 차원의 부실 공사 진상조사 및 대책 마련’, ‘부실 공사에 대한 군민 피해보상’ 등 7가지 이행사항을 약속하고 2020년 11월 14일 가동중단 2년 반 만에 재가동됐었다.

그러나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한수원은 한빛 4호기에서 발견된 공극을 모르타르로 메우고 노출된 철근을 시멘트로 덮는 등의 방식으로 보수를 진행하고 재가동을 추진했다. 핵발전소 하루 세워놓으면 10억 원의 적자 타령이 재가동의 이유였다.

땜빵, 땜질, 누더기 한빛 4호기는 영광 고창은 물론 환경단체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2022년 12월 11일 원안위 승인을 얻어 재가동에 들어갔다.     


 20년간 망치 품은 한빛 4호기     


“구멍뿐이 아니에요. 2017년 8월에는 4호기 증기발전기 상부 세관 틈에 12mm, 세로 7mm의 소형 망치가 발견되었어요. 증기발생기는 원자로, 격납건물 등과 함께 핵발전소 3대 안전 방호시설이에요. 증기발생기 내부는 고온고압에 물이 불규칙적으로 흐르고 8,400개의 세관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물질이 있거나 돌아다니면 세관을 건드려 냉각기를 멈추게 해서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 공기 단축 하려고 얼마나 밀어붙였는지 그 당시 망치를 제거하지도 않고 허겁지겁 덮어버린 거지요. 망치의 존재 자체를 20년 동안이나 몰랐던 것이 더 큰 일이에요.”


증기발생기는 원자로 설계수명과 같다. 1995~1996년 상업 가동을 시작한 한빛 3·4호기 증기발생기를 2019년 교체하겠다고 하더니 한빛 4호기는 그보다 2년이나 앞당겨 2017년 교체를 서둘렀다. 

“환경단체에 제보가 들어가고 문제를 제기하니까 그제야 어쩔 수 없이 언론에 발표한 거죠. 한수원과 핵마피아들이 핵발전소를 관리하는 것이 방법이에요. 최대한 은폐하고 축소하다가 들키면 ‘원자로는 이상이 없다. 방사성 물질 누출 없다’라고 발뺌하며 위험한 핵발전의 본질을 감춥니다.”


노병남 회장은 이토톡 위험하고 섬세한 발전소를 운영하는 집단이 양심도 없고 뻔뻔하기 이를 데 없다는 점이 가장 핵발전소의 가장 위험 요소라고 지적한다. 

‘한빛원전안전성확보 민관합동조사단’에 참여한 원자력안전연구소 한병섭 소장은 “증기발생기가 중요한 시설이고 순환되는 냉각수에 의해 금속 물체가 세관을 파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혈관에 돌고 있는 물체로 심장이 손상 입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1mm의 세관 8,400개가 있는 증기발생기에 망치가 20년 동안이나 돌아다녔어도 사고가 없었다는 것이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우하사’이다.


“증기발생기 교체에 3천억 원이 드는데 시공사인 두산중공업(두산에너빌리티)에 피해보상도 제대로 못 받았다면 사업자나 시공사 규제기관 모두 한통속이라고 봐야죠. 새로 제작하는 증기발생기도 두산중공업(두산에너빌리티)이 제작했어요. 아이러니죠."


한수원은 교체할 증기발생기 제작을 또다시 두산중공업에 맡겼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던가? 

 2019년 1월에는 한빛 3호기 격납건물 내부에서 30cm 망치가 발견됐다. 한수원은 “망치가 고정되어 있던 것으로 추정하며 안전에 문제가 없다”라고 또다시 앵무새처럼 읊조렸다.    

  

 반핵운동은 신앙고백    

 

1978년 고리핵발전소를 시작으로 월성, 울진, 영광 등에 핵발전소가 지역에 들어설 때만 해도 5·6공 정권에 의해 민족중흥의 불로 홍보되며 지역경제 발전은 물론 산업화와 문명화의 첨병으로 강요될 때였다. 당시 핵발전소는 2조 원대의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지역을 부흥시킬 산업으로 여겨졌고 영광군이 시로 승격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었다. 그러나 영광 1·2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한 1986년 8월 25일보다 4개월 전인 4월 26일 체르노빌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서 반핵운동이 세계적인 기류가 되었다.

1988~1989년 영광핵발전소 노동자 김익성 씨 2차례 무뇌아 출산, 1990년 노동자 문행섭 씨 대두아 출산과 고창군 상하면 기형 가축 출산 보도가 이어졌다. 또한 1990년 영광 1호기 방호복 세탁부에서 일했던 김철 씨가 방사성 물질 피폭된 뒤 얼마 후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등 핵발전소 관련 고장 사고까지 이어지면서 공포가 확산되었다.

2002년 호남지역반대대책위 집회에서 사회보고 있는 노병남 회장

더욱이 1988년 국회 5공 비리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청문회가 열리면서 영광 3·4호기 건설 허가와 관련한 안전성과 비리가 문제 되면서 영광지역사회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했다.

1989년 3월 영광핵발전소추방협의회 (이하 핵추협)가 전국조직보다 한 달 먼저 결성되면서 영광사람들이 본격적인 반핵운동에 뛰어든다.

영광 3·4호기는 건설 당시부터 문제가 불거져 ‘핵연료 장전 저지대회’를 비롯한 집회와 행진이 연속적으로 열렸다. 1991~1994년 사이 항의 집회 참가자는 10만 명이 넘었고 영광핵발전소는 영광군민과 전남도민에게 불안한 일상을 강요하고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켰다.

1990년 가톨릭농민회, 기독교농민회, 자주적 농민회가 영광군농민회로 통합되면서 영광군농민회는 영광지역 뜨거운 현안이었던 핵발전소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반핵운동은 제겐 신앙고백이었어요. 기독교청년회 활동하면서 핵무기반대 평화운동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어요. 핵무기와 핵발전은 연결되어 있잖아요. 핵발전소에서 나온 플루토늄이 핵무기 원료가 되는 거고요. 종교인에게 생명·평화는 거스를 수 없는 소명 같은 거예요.”


이십 대 후반 고향에 정착하기 위해 영광으로 돌아온 청년 노병남은 농사도 짓기 전에 영광핵발전소추방협의회(이하 핵추협) 간사로 활동을 시작한다.


“핵공학을 전공하고 당시 영광핵발전소 설계에 참여했던 교회 선배가 기술을 배우러 미국 출장을 다녀오더니 저한테 지역에서 농사지으면서 살려면 핵발전소 문제에 관해 공부하라고 권했어요. 아마 미국 출장 가서 1979년 쓰리마일 핵사고에 대해서도 듣고 그린피스 같은 국제환경단체 활동 등에 대해서도 들었나 봐요. 영광핵발전소 공사 속도나 기술자들의 숙련도, 우리나라 기술에 대한 신뢰성 문제 등이 걱정된다고 했어요. 본인은 공사 끝나면 떠나지만, 영광에 살려면 핵 문제를 제대로 아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1992년 부임한 영광성당 박재완 신부와 원불교 영산성지 김현 교무를 중심으로 천주교, 원불교 등 종교계의 반핵운동이 활발했었다. 개신교는 반핵운동에 관심 있던 목사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영광지역 반핵운동에서 맥이 끊어진다.


“지금은 핵발전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탈핵이라고 하지만 90년대는 핵발전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반핵이라고 했어요. 반핵운동 하려고 하니 일단 공부부터 해야겠더라고요. 이하영, 주경채씨 등 농민회원들과 김용국 가톨릭농민회원 등도 각자 핵발전소에 관해 공부를 무지하게 했어요. 핵마피아들하고 싸우려면 논리적으로 뒤지지 않아야 된께 누가 갈차 주는 사람도 없이 독학으로 공부했어요. 진짜 코피가 다 나더라니까요.”

1993년 영광 3, 4호기 반대 군내버스 선전전

영광군 농민회 이하영, 주경채, 노병남 그리고 영광성당 김용국 씨는 핵공학자 누구와도 붙어도 지지 않는 실력을 갖췄다.

핵발전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발을 뺄 수 없는 것이 반핵·탈핵 운동이다. 사고가 나면 재기 불가능할 만큼의 재앙이니 사고 나기 전 예방과 더는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40년이 넘는 동안 핵산업은 막강한 자본력으로 정·관계 전방위적인 카르텔을 형성해 난공불락, 무소불위한 권력이 되어갔다.

영광핵추협과 천주교, 원불교, 불교 등 종교계까지 3·4호기 반대 투쟁에 참여했지만 1994년 당시 사업자였던 한국전력은 영광 5·6호기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영광주민들은 영광 3·4·5·6호기 건설 저지라는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1995년 노병남 회장은 김용국, 김현수 등과 구속돼 1년 6개월 실형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4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결국 1996년 10월 19일 영광 3·4호기가 준공식과 5·6호기 기공식이 열리고 2002년 영광 5·6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한다.

“그때의 충격으로 어머니가 심장질환을 얻어 지금까지 고생하세요. 그래도 어쩌겠소 알아버렸으니 끝까지 해야제”     


하마터면체르노빌     


2019년 5월 10일 영광 한빛1호기 열출력 급증사고가 난다. 핵발전은 핵분열 에너지로 물을 끓여 전기를 만드는데 핵분열을 적절히 제어 못 하면 후쿠시마 핵발전처럼 폭발하고 만다. 제어봉은 ‘핵발전의 브레이크’에 해당하는데 핵연료를 분열시키는 중성자를 적절히 흡수하면서 출력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한빛핵발전소 주 제어실에서 제어봉을 제어하는 실험에서 담당자가 인출 값 계산을 잘못해서 열출력이 급상승했어요. 원자로 상황에 따라 제어봉을 얼마나 노심에 넣고 빼느냐가 관건인데 그 계산을 잘못한 것도 문제이지만 제어봉 자체가 고착돼서 움직이지 않았어요. 운전미숙에 브레이크까지 고장 난 상황인데 당시 운전미숙으로만 몰아가면서 핵발전소 자체의 결함을 덮기에 급급했죠. 제어봉 조작자가 무자격자라는 점도 한수원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사건이에요.”     


1986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참사 역시 터빈 출력시험 중 제어봉을 조작해 무리하게 출력을 올리려다 짧은 시간에 원자로가 폭주하면서 발생했다.

게다가 사고 이후 12시간 이후에나 원자로를 정지시켜 규제기관인 원안위가 더 큰 문제라는 질책을 받았었다.

영광에서 핵사고가 일어나면 우리나라 특성상 서쪽에서 동쪽으로 해서풍이 불어 방사능 낙진이 전국에 다 퍼질 수밖에 없다. 전라도의 광활한 곡창지대가 방사능으로 오염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제품을 해외에서 더 이상 구매하지도 않게 돼 경제 자체도 완전히 망가지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남한 전체가 끝장난다고 봐야 한다.

사건 직후 한수원은 한빛 1호기를 무기한 정지한다고 했다가 석 달 뒤 CCTV를 많이 설치해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겠다며 재가동을 발표했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 보다 마치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것으로 몰아간 것이다. 핵발전소 중앙제어실은 기본적으로 자동화 시스템이다. 근무자들은 대부분 자동으로 운전되는 시스템의 온갖 계측기만 감시하는 역할이다. CCTV 설치가 답이 아니라는 말이다.     


 “서울 사람들은 안 무섭소? 영광에서 사고가 나면 영광사람들만 죽지 않아요.”     


핵사고 종합세트 한빛핵발전소     


“한빛 1·2호기 수명연장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2014년 원안위가 고리 4호기 원자로 용기 용접부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용접부 17개 부분 중 2개 부분의 위치가 잘못 선정된 것을 확인했어요. 그래서 20기 핵발전소를 대상으로 확대 조사를 벌였더니 한빛 4호기에서도 같은 오류가 발견된 거예요. 용접 부위가 아닌 엉뚱한 곳을 20년 동안 검사해온 거예요. 가슴을 검사해야 하는데 20년 동안 머리만 검사했다면 사망 아닙니까?”


한빛 1·2호기와 고리 3·4호기 원자로 용기는 모두 미국 CE 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지만, 용접 부위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 자체를 한수원이 몰랐다는 것이다. 고리 3호기와 한빛 1호기 용접 부위를 기준으로 검사를 했으니, 고리 4호기와 한빛 2호기는 엉뚱한 곳을 검사해 온 것이다. 20년 동안 데이터가 잘못됐거나 없는데 어떤 근거로 수명연장을 하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해양생태계 복원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해요. 영광처럼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해안지역에 세워진 핵발전소는 거의 없어요. 구글 자료를 돌려보면 한빛핵발전소에서 원자로를 식히고 버리는 열폐수가 바다로 퍼지는 모습이 보여요. 이 열폐수를 바다 멀리 보낸다고 방조제를 설치했는데 의미가 없어요. 방조제도 제거하고 폐로 이후 ‘해양생태계를 어떻게 복원할지’에 대한 방안을 내야 해요.”


얼마 전 영광군수 만나고 나오는 산자부 직원을 만나서 “영광에 추가 핵시설은 있을 수 없다”라고 하니 산자부 직원들은 ‘임시 건식저장고’는 ‘사용후 핵연료봉’을 이동하는 것이라 추가시설이 아니다’라고 했단다.


“임시저장고 새로 지을 것 아니요. 그게 추가시설이지, 뭐요? 정부나 한수원은 핵발전소 지역에 추가건설을 하지 않겠다고 누누이 약속했어요. 임시저장고도 엄연한 추가 핵시설이에요.”     


1~6호기까지 한빛핵발전소는 핵사고 종합세트이다. 2023년 한국 사회에 돌아가고 있는 25기 핵발전소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위험천만한 핵발전을 계속해야만 하는 걸까? 2010년을 지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핵발전은 재생에너지보다 비싼 에너지가 되었다. 갈수록 안전 규제도 강화되어 비용은 올라갈 것이고 기후 위기로 인한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 앞에 가장 취약한 에너지가 핵발전소이다.


“한빛 5·6호기도 원자로 헤드관 부정 용접으로 1년 이상 서 있다가 5호기는 2021년 5월에 재가동했어요. 6호기는 1년 늦게 했으니 균열 정도가 5호기보다 덜 하다는 핑계를 대며 2025년 아예 원자로 헤드를 교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어요. 그렇게 되면 한빛 6호기 헤드 교체 때까지 정기 정비기간을 제외하면 3년 이상 원자로 ‘헤드 관통관’을 균열 된 상태로 돌리겠다는 거예요.”

2019년 한빛1호기 제어봉 조작실패로 출력이 급증했던 사고는 지금도 아찔한 사고이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이다. 

지난 2020년 7월 한빛 5호기 정기 검사 때 원자로 ‘헤드 관통관’ 84개 용접을 진행하던 중 시공 과정에서 69번 관통관 용접에 부식에 강한 니켈 특수합금 제품인 ‘alloy 690’ 재질이 아닌 스테인리스를 사용한 것이 적발돼 지역 원안위가 작업 중지와 전수 조사를 지시했었다. 조사 결과 부실 용접뿐만 아니라 무자격자가 용접을 진행했고 용접 방법의 잘못 등이 추가로 밝혀져 2023년 2월 원안위는 원자력안전법 26조 위반을 들어 한수원에 과징금 18억 원을 부과하기도 했다.     


“총체적 난국이에요. 2019년 한빛 5호기 가동 중 주 변압기에서 이상 신호가 발생해 가동이 정지됐고 2020년 10월 26일에는 180일의 정기 점검을 마치고 가동하는지 20일 만에 새로 바꾼 증기발생기 고수위로 인해 원자로 정지가 발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신호계측기 문제도 있고, 냉각수 문제까지 다 거론하기도 어렵네요.”     


1986년 상업 운전을 시작 이후 37년간 한빛핵발전소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고가 2023년 5월 현재 기준 178건이다. 연평균 5건의 사건·사고가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핵발전소는 노후화되고, 밀집되어 있으면 사고 확률이 더 높아진다. 한국사회의 핵사고 위험도가 더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핵발전소에 고양이가 산다는 것은?


노병남 회장은 ‘한빛원전민간환경안전감시기구’ 위원이다. 얼마 전 회의에 참석한 한빛원자력본부장에게 엉뚱해 보이는 질문을 했다.


“핵발전소 안에 고양이가 돌아다니요?”

“예, 고양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본부장도 황당한지 생전 처음 받는 질문이라며 눈만 껌뻑였단다.


“질문의 핵심은 고양이가 아니에요. 고양이가 핵발전소에 돌아다닌다는 것은 먹을 것이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고양이 먹이가 될만한 새나 쥐가 있을 것이고, 동물이나 곤충들이 핵발전소에 산다는 것은 전선이나 기계의 결함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전선을 제작할 때 살충 성분들을 넣어서 피복을 하긴 하지만 기계가 오래되면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런 질문도 처음 받아보고,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일이에요.”


노병남 위원은 “음식이 발전소 내로 들어가는지?”도 질문을 했단다.

“배달도시락 이라든지 이런 음식이 발전소 내에 들어간다는 것은 관리상태에 따라 벌레가 꼬일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작업자들의 간식도 문제가 될 수도 있고요. 또 화분 같은 식물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도 중요하다고 봐요. 축하 화분이 들어갈 수도 있고 작업자들이 사무공간에서 식물을 키울 수도 있잖아요. 식물 재배 과정에서 곤충이나 벌레가 생기고 이차적으로 그걸 먹이로 삼은 또 다른 곤충이 날아다니다가 기계적 결함을 일으킬 수 있는 소지도 있어서 저는 그게 걱정이 되는데 답을 안 해주네요. 다음 회의 때 고양이와 음식, 식물 재배 문제는 본부장에게 다시 물어봐서 답을 들을 예정이에요.”     


종사자들의 안정적인 노동권은 핵발전소 안전의 핵심  

   

 “핵발전소 안전의 핵심 중의 핵심은 종사자들의 고용 문제예요. 핵발전소 건설 당시 지역 사람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선전했어요. 그런데 지금의 일자리는 양질하고 거리가 멀죠. 원청·하청문제가 핵발전소에도 그대로 적용되잖아요. 핵발전소 대부분의 일을 협력업체에 하청을 주고 있어요. 원청과 하청업체 노무비는 절반도 안 돼요.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씨도 원청에서 책정된 노무비가 530만 원이었어요. 그런데 김용균 씨가 수령한 금액은 220만 원 밖에 안됐어요. 협력업체 하청노동자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핵발전소에서 일하는데 임금 착취인 거죠.

그리고 고용도 불안하니 노동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불합리한 임금체계와 고용의 불안정은 핵발전소 위험을 가중하는 주요 요인이에요. 아무리 기계화되었다 하더라도 핵심적인 일은 사람이 하잖아요.”     

'핵 없는 안전한 세상'을 꿈꾸며 10년이 넘도록 생명평화탈핵순례를 이어가고 있다. 한빛 핵발전소 6기의 돔은 보기만해도 숨막히고 아찔하다. 

한빛핵발전소 앞에는 고용불안을 호소하는 비정규직들의 집회가 장기간 열리기도 했다. 핵발전폐쇄를 주장하는 입장과 핵발전소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 간의 연대가 필요한 대목이다.

얼마 전 ‘석탄의 일생’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시사회에 참석했던 발전비정규직 이태성 간사의 “긍지로 알고 일했던 석탄화력발전소가 기후 위기의 주범이라고 하니 자존감이 떨어졌어요. 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75%가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온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고용승계도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라는 이야기는 핵발전소에서 저임금으로 불안정한 노동을 이어가는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노병남 회장은 작업자들에 대한 소양 교육과 정기적인 정신건강 체크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감사원은 2011년 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으로 경찰에 적발된 21명을 대상으로 발전소 운전업무 종사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이 중 3명이 짧게는 11분에서 8시간 이내에 발전소에 출근해 업무에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7월 15일 자 대경일보 ‘한수원 직원 도덕적 해이 심각’이라는 보도에 따르면 월성핵발전소 소속 J씨의 경우 사고 이후 출근해 안전차장의 음주 측정에서 근무부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터빈현장 운전원으로 근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울진 한울핵발전소 터빈차장 K씨는 운전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혈중농도 0.086%로 적발됐지만 같은 날 업무차장의 음주 측정 없이 근무했다. 정비원도 경찰청 음주단속에 적발된 40명 가운데 3명이 음주 상태에서 발전소 정비업무에 종사한 것으로 드러났고. 세 사람 모두 한수원의 음주 측정 등 통제를 거치지 않았다.

2018년 5월 직원 숙소 내에 주류를 버젓이 반입하다 적발되는 사례도 있었다. 적발 당사자는 이전에도 음주운전과 무단 주류 반입으로 적발돼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

2012년 9월 고리핵발전소 소속 소방대원 2명이 마약으로 적발돼 해임된 일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은 핵발전소 종사자에 대한 마약 검사를 해야 해요. 우리사회에 마약이 만연하다고 하는 데 안전이 목숨보다 중요한 핵발전소 시설 종사자들에 대한 정신건강은 나라의 명운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이에요. 마약 검사뿐 아니라 정기적인 정신건강 검사와 관리가 필요합니다.”     


제보자 보호하는 시스템 갖춰야     


"지금까지 밝혀진 핵발전소 사건·사고들은 거의 제보에 의한 것들이에요. 제보와 제보자들을 관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2022년 4월 11일, 광주·전남 탈핵단체 회원들이 영광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빛핵발전소의 수소제거기 안전성 검토를 촉구한 것도 2021년 7월 운영허가가 난 신한울 1기 가동을 앞두고 한 2차례 실험에서 화염과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원자력안전위원회 내부 공익제보자에 의해 알려지면서 가능했다.     

“한빛 5·6호기 헤드 관통로 용접문제도 내부 공익제보자에 의한 거였어요. 보도가 나기 전에 한빛원자력본부장에게 회의 때 물어봤어요. 한빛 5호기 문제없냐고. 본부장이 아무 문제 없다고 하데요. 회의 마치고 그날 바로 보도가 났었죠.”     


제보를 거르는 작업도 필요하고 공익제보자 보호와 지원도 시스템화되어야 한다.     


탈핵으로 정치지형을 바꿔야 해요.     


윤석열 정부의 핵진흥 정책에 기반한 고준위핵폐기물 임시건식 저장시설 건설과 한빛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문제로 영광을 비롯한 핵발전소 지역들이 들썩인다.

영광 탈핵운동 핵심 주체였던 천주교 영광성당도 최근 조직을 재정비하고 장영진 군의원과 홍경희 여성농민회활동가 등을 연대활동에 공식적으로 파견하기로 했다. 두 사람 모두 농민회와 여성농민회 소속이다.

지난 2012년 11월 26일 핵발전소 짝퉁비품과 비리로 핵발전소가 위험이 가중되자 매주 월요일 ‘생명·평화·탈핵 순례’를 10년째 이어온 원불교 영광교구도 양문수 교도를 연대 단위에 공식 파견하기로 하고 조직을 추스르고 있다. 불갑사 만당 스님도 영광 탈핵연대에 적극적이다. 농민회는 노병남 회장을 중심으로 지역 현안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공동행동(영광핵발전소안전성확보를위한공동행동)은 한빛핵발전소에 사고가 있을 때마다 원자력안전성검증단(2013~15년)과 민관합동조사단 활동(2017~2019)을 요구하고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탈핵운동의 전문성을 더해왔다.

올 초 공동행동 대표단 회의를 열고 노병남 회장을 중심으로 조직을 추스르기로 하고 각 참여단위가 논의와 실천에 들어갔다.

30년 베테랑 탈핵운동가 노병남 회장에게 40년 넘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얽혀있는 지역탈핵운동의 돌파구를 무엇으로 보냐고 물었다.   

농사꾼 노병남은 베테랑 탈핵운동가다. 운명은 앞에서 오지만, 숙명은 뒤에서 오기 때문에 도망갈 수 도, 거부할 수도 없단다. 숙명의 길을 종교인의 소명으로 30년 째 걷고 있다. 

  

“정치적 지형을 바꿔야 해요. 지역유지와 기존 정치인들은 이미 핵발전소와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어요. 탈핵 입장이 명확한 정치세력을 만들고 지원하며 지형을 바꿔 지지부진하게 끌려가지 않고 주도해야죠.”     


30년 전 청년이었던 이하영, 주경채, 노병남, 김용국, 홍경희, 이석하, 양문수 씨 등도 이제 육십이고 오십 줄이다. 지방해체, 지역소멸로 젊은이들의 유입이 어렵다 보니 여전히 이들은 영광 탈핵운동의 핵심 동력이다. 그리고 여전히 청년들이다.     


“우린 영광에서 평생 농사짓고 아이들 키우고 살아갈 사람들이에요. 물러설 곳도, 뺏길 것도 없으니 무서울 것도, 없어요. 핵발전소 없는 영광을 위해 열심히 싸울테니 너무 걱정 마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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