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탈핵운동을 해 온 이규봉 핵안사 대표
대게, 금강소나무 숲, 왕피천으로 유명하며 해안도로인 동해안 7번 국도가 지나가는 지역으로 울진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7번 국도는 동해안의 아름다운 바닷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핵발전소가 있는 고리-월성-울진을 지나간다. 2013년 5월 그마저도 핵발전소 이름을 ‘울진’에서 ‘한울’로 바꿔, 핵발전소가 울진에 있는지조차 직관적으로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울진에 핵발전소가 있다. 핵발전소가 있는 다른 지역(고리, 영광, 월성)에 비해 ‘핵발전소에 대한 의존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거나, ‘지역에서 싸우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도 불린다. 이번에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이규봉의 말마따나 “지리적, 사회적 오지”라서 그런 걸까. 울진 핵발전소 관련 인문·사회학적 연구나 기사의 수도 다른 핵발전소에 비하면 현저히 적다. 그래서, 그런 만큼 다른 곳보다도 울진에서 묵묵히 싸우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울진에도 탈핵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2023년 6월 24일 무더웠던 여름, 그가 농사를 짓는 곳에서 3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30년 넘게 탈핵하는 이규봉 핵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울진사람들(이하 핵안사) 대표를 소개한다.
줄탁동시(啐啄同時).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서로 합심하여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야말로 이규봉이 지역에서 해왔던 지난 30년간의 탈핵운동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이 아닐까.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반핵운동의 성과도 있었고, 지역의 다양한 조직, 사람들과 함께 싸우기도 했지만, 이제 그는 “외부의 환경단체, 시민단체로부터의 연대와 지원이 없으면, 안에서만 싸우고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처음엔 오랜 시간 외롭게 싸워온 활동가의 자포자기로 들리기도 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난 40년간 단단해지는 핵발전소의 영향력을 밖에서 함께 깨고 부술 누군가를 향한 고백처럼 들렸다. “여기 울진에도 탈핵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소수의 힘과 의지만으로 오랜 시간 두텁게 자리 잡은 겹겹의 핵발전소 영향력을, 주민들이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온 역사를, 종속와 의존의 구조들을 깨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밖에서 우리와 함께 싸워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86학번으로 89년에 총 부학생회장을 맡았고, 집시법 위반 등으로 감옥에 2년간 다녀왔어요. 1986년에 체르노빌 사고가 나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89년부터는 울진에서도 농민회, 초기 전교조와 울진이 고향인 대학생들이 반핵활동을 조금씩 했어요. 그때 총학생회에서 연대차원으로 스티커랑 유인물을 만드는 등 울진 반핵운동을 지원했죠. 출소한 뒤에는 아무런 미련 없이 고향인 울진에 돌아왔고요. 울진에 온 게 93년이니 30년간 반핵운동을 해 온 셈이네요. 30년 넘게 울진에서 사무국장, 대표, 또 사무국장, 대표를 반복하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지난 30년간 이규봉은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해왔을까? 이규봉은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했는데, 대표적으로 울진반투위, 울진반핵연대, 울진참여자치연대, 울진생태문화연구소 그리고 핵안사 등이 있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울진 군민이나 다양한 단체들이 반핵을 지지하고 특히 ‘고향’을 지키자는 명분으로 핵발전소를 반대했어요. 사실 지방에서 반핵운동에 성공하거나 어떤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데, 우린 그래도 승리의 기억들이 있어요. 2000년대 초반에는 울진 7,8,9,10기 핵발전소가 추가로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군청 앞에서 철야농성과 서명운동, 수요집회 등을 했고, 울진 핵발전소 앞과 서울 명동성당 등에서도 반대운동을 했고요.
울진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에 핵폐기장 4개 후보지 중 하나로 포함되었고, 2005년 주민투표로 결정된 중저준위 방폐장이 들어설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였다. 2005년 7월 전력신문은 다음과 같이 울진을 ‘방폐장을 유치할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설명했다.
투표율에 따라 방폐장 유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지역주민수가 비교적 적은 울진군의 성공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한수원 한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이러한 분석이 나오면서 인구가 20~30만 명에 가까운, 군산, 경주, 포항 등보다는 인구가 6만 명에 불과한 울진이 성공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규봉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당시 군수와 군의회를 설득해 유치동의안 자체를 부결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때 내가 울진반핵연대 대표였는데,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동의안을 제출하기 전날 출장중이었던 울진군수를 관사 앞에서 밤 11시까지 기다렸다가 2시간 동안 설득했어요. 핵안사 회원들은 군의원들을 1:1로 만나 설득했구요. 정말 겨우 막았지. 당시 군수님이 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를 유치한 분이고,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을 만드는데 협조를 해줬어요. 무엇보다 군수가 사업가 출신이었는데, 당시 한나라당이 중앙 차원에서 지금보다는 소극적인 친원전 상황이라, 지금보다는 군수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새벽 1시까지, 울진의 미래만 얘기했어요. 중저준위 방폐장이 들어오면, 300년이 아니라 영원히 울진에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절대로 받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원전이 아닌 생태, 청정, 자연자원을 활용한 관광으로 가야한다고 말했죠. 그렇게 군수를 설득하고 군의원들을 설득했어요. 결국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이 들어섰지만, 시민단체도 미약한 울진에서 주민투표 자체를 부결시켰으니 그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였죠.
이규봉이 울진에서 참여한 활동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핵안사 대표로서 울진 핵발전소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성명서를 쓰고 마이크를 잡았다. 또한, 그는 울진생태문화연구소를 만들어 왕피천 유역에 사는 2천 종이 넘는 동식물을 기록했다. 왕피천은 녹지 자연이 8등급 이상으로 우수한 식생과 빼어난 자연경관을 보유한 낙동정맥의 중앙부에 위치한 녹지 축으로 멸종위기종과 희귀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왕피천을 보존해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만들었고 금강소나무 숲길도 만들었어요. 특히 10여 년간 생태조사를 해서 약 2천 종이 넘는 동물과 식물을 기록하고 데이터로 남긴 것은 울진을 ‘생태관광의 수도’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여기는 바다, 금강소나무 숲과 산 등 아름다운 자연이 많은데, 우리도 제주도나 남해안의 도시들처럼 자연을 바탕으로 한 관광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죠. 원전이 더 안 들어와도 이곳은 생태관광으로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그것만이 이 지역의 모든 경제가 핵발전소에 종속된 역사를 막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가는 대안이라고 생각했어요.
반핵운동을 수십 년 동안 지속하기도 어렵지만, 지역 사람들에게 핵발전소가 아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연구자나 활동가, 주민들 역시 보통은 핵발전소를 비판하는 것에 집중할 뿐, 어떻게 전환이나 변화를 이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거나 답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규봉은 왜, 어떻게 대안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반핵운동 초기에는 납치도 당했어요. 같이 활동했던 후배는 깡패들에게 많이 맞았고. 울진 들어와서 가장 먼저 서점을 열었는데, 당시 군수 후보가 원전을 유치하겠다고 해서, 우리가 그거 비판하는 유인물을 만들어서 배포했거든. 근데 선거기간에 깡패들을 고용해서 나를 납치한 거야. 아내도 당시 10년 넘게 울진에서 살았는데 무섭데, 지금은 애들이랑 대구에서 일하면서 따로 살고 있어요. 와이프가 여기서 사는 거 싫어해. 반핵운동 한다고 납치당하고, 동네 주민들한테 욕먹고. 게다가 지금 주민들이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하지 못한 것을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요? ‘금덩어리’ 빼앗겼대, 금덩어리...
고향을 지키기 위해 핵발전소를 비판하고 핵폐기장을 거부해왔던 승리의 역사가 20년이 지난 후에는 고향을 지키기 위해 핵발전소를 유치하는 사회로 극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규봉의 설명처럼, 일부 주민들은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신청서를 제출하지 못하도록 군수를 설득한 그를 향해, ‘너 때문에 황금덩어리를 경주에 빼앗긴 것’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많은 울진 군민과 지역단체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핵발전소를 비판하고 막아왔던 것에서, 왜 현재는 다수가 ‘고향을 지킨다’라는 명분으로 핵발전소를 유치하게 되었을까? 이규봉은 “지금의 울진은 핵발전소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 종속되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위험과 편익을 거래, 교환”한다. 핵발전소 최인접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원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유치운동을 벌이는 것에 대해 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주민들은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원전의 위험과 편익을 맞바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규봉은 ‘거래와 교환’이라는 경제(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일부만 옳은 설명일 뿐 복합적이고 누적된 이곳에서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규봉은 지난 30년간 탈핵운동을 하면서 지역과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었고, 바뀔 수밖에 없었는지를 경제-사회-심리 그리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설명하였다.
핵발전소는 오히려 지역 농업과 어업, 관광업을 망치는 길이에요, 그것을 부정할 순 없죠. 그런데 원전에서 지난 40년 간 지역에 푼 돈이 2조 원이 넘어요. 일반지원금, 특별지원금 등 80년대 후반부터 40년이 넘도록 지역에 뿌린 돈이... 사업자지원사업은 2000년대 이후에 만들어졌는데, 그것만 해도 울진에서는 매년 300억 원이 되어요. 울진군민의 돈인데 한수원은 핵발전소 홍보를 위해 절반인 약 150억 원을 한수원 사장이 쓰도록 해놨어요. 이 돈 때문에 읍면별로 한수원에 줄 서고, 사회단체는 크고 작은 행사 있을 때마다 100만 원, 200만 원 받으려고 손을 내밀고. 그러다 보니까 원전에 대해서 울진사람들 누구나가 위험하고 안 좋다는 것을 알지만,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돈과 영향력이 지난 40년 동안 울진을 야금야금 지배해 왔어요.
나아가 그는 경제적인 종속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사회, 심리적인 종속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원전에서 나오는 돈이 지역경제를 지배하다 보니, 사회관계도 지배당한 거예요. 여기 울진군이 좁고,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니 네트워크나 사회관계, 인맥이 너무 촘촘한 거야. 원전이 위험하고 안 좋고 혐오시설인 걸 알면서도, 돈이 뿌려지고, 이 좁은 울진군에서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이 원전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아니면 내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지요. 결국에는 심리적으로도 “나 하나가 반대한다고 해서, 뭐가 되겠나.”,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지금까지 8개 들어왔는데, 2개 더 들어온다고 특별히 달라질 게 있겠나.”라며, 자포자기하게 되는 거죠.
울진에는 큰 기업이 없다 보니까, 여기서 먹고살려면 크게 ‘농업이나 어업, 장사, 한수원이나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거 아니면 공무원’ 딱 네 가지가 있어요. 공무원도 사실 군수부터 시작해서 원전에 우호적이고 유치운동을 하니, 자기 뜻을 펼칠 수가 없는 거고. 농사지으면 일이 바빠서 참여가 힘들고, 한수원 협력업체 근무자는 압력을 받고, 장사하면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손님의 대부분이니 반핵 운동이라도 하면 손님이 끊기고. 그러니까 여기는 구조적으로 반핵운동 자체가 열악하고 어려운 지역이에요.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성명서도 냈는데, ‘지금은 그것도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원전을 비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부산이나 경주, 영광도 탈핵운동 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지역에 환경단체가 있고 대학도 있어서 연대하고 협력할 네트워크가 충분히 있죠. 아니면,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교통편도 괜찮으니, 결합하기도 쉽고. 여기는 유치론자들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사회단체들을 좌지우지하고 있어서, 소수가 반대 목소리를 내는 정도인데... 그것도 전업활동가가 있는 게 아니니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30년을 해온 제 입장에서는 좀 지쳐있는 거죠.
이규봉은 “경제적인 종속과 의존은 지역의 촘촘한 네트워크, 인간-사회관계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40년을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온 울진에서 탈핵운동을 하는 것은 왕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특별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 돼버린 거지. 저쪽이 워낙 거대해지고 비대해져서 작은 돌멩이 하나로는 막을 방법이 없는 거예요. 포기는 아닌데, 막막하거나 방법이 잘 안 보이는 거죠. 핵발전을 추진하려는 중앙정부와도 싸워야 하지만, 한목소리를 내는 지방정치와 또 싸워야 하죠. 이것만이 아니에요, 원전에서 돈을 받는 100개가 넘는 단체나 조직과도 싸워야 하고, 원전에 혜택을 보거나 그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과 그 가족들, 원자력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싸워야 하니... 울진에서 탈핵운동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인간관계나 사회관계를 그냥 다 ‘끊고 포기해야한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같이 싸워온 사람과 조직들이 이렇게 하나둘씩, 대부분 침묵이나 찬성으로 가버린 상황이라. 관조하거나 찬성하거나. 노인회, 청년회, 이장단 등 대다수의 지역단체가 원전지원금이나 사업에 넘어간거죠.
이규봉은 경제적-사회적-심리적으로 의존 및 종속되어 가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시민/환경단체의 부재와 함께 하나의 문제를 더 지적했다. 그것은 바로 중앙에서 지역으로 연결되어 수직적으로 종속된 정치이다.
울진은 지역적으로 국민의 힘 당이 지역에서 80% 이상을 차지해요, 선거 결과도 그렇고요. 특히 현재 ‘원전 최강국’을 목표로 하는 대통령에서 시작해 도지사-국회의원-군수-도의원-군의원 모든 정치인이 다 국힘당 쪽이라. 대통령이 9호기와 10호기의 건설을 강하게 밀어붙이니까, 지역 모든 정치인들이 ‘조기 착공’을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내는 거지. 울진에 사회단체가 100여 개 있는데, 사실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죠. 이장들 일부도 개인적으로는 반대해도 나서서 얘기를 못하는 거죠. 원전이 가동되면 도나 군에서는 원전지원금을 받기도 하지만, 이건 또 공천 문제와도 엮여있어요. 여기서 당선되어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사실 국민의 힘에서 공천을 받으면 거의 확실해지죠. 그렇다보니 대통령이나 중앙정부에서 핵발전소를 강행하니, 여기에서 선거에 나가고 정치하려는 사람들은 당연히 탈원전을 강하게 비판하는 거지.
이규봉은 핵발전소는 지역문제나 환경문제만이 아니라 결국엔 정치의 문제로도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원전이 가동되면 도나 군에서는 원전지원금을 받기도 하지만, 이건 또 공천 문제와도 엮여있어요. 여기서 당선되어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사실 국민의 힘에서 공천을 받으면 거의 확실해지죠. 그렇다 보니 대통령이나 중앙정부에서 핵발전소를 강행하니, 여기에서 선거에 나가고 정치하려는 사람들은 당연히 탈원전을 강하게 비판하는 거지.
이규봉은 한수원에 경제-사회-심리적으로 종속된 이곳에서는 탈핵운동을 하는 본인도 힘들지만, 이곳에서 먹고살아야 하는 울진 군민들도 힘들 거라고 말했다.
사실 반핵운동하는 저희도 힘들지만, 울진 군민들도 힘든 거죠, 그런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데 누가 쉽게 반대하고 쓴소리를 하겠어요. 구조적으로 경제에서부터 의존하고, 사회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있어서 저항을 점차 못하게 되고, 그러면서 심리적으로는 무관심 혹은 자포자기에 이어 원전을 찬성하는 쪽으로 가게 되는 거고. 정치인들은 그걸 활용해서 당선되고, 재선되고, 공천도 받고. 이렇게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단순히 산업이나 환경문제를 넘어, ‘정치-사회-경제-심리’ 등 모든 삶의 문제들과 연결되어있다고 봐야 하는 거죠. 초기에는 반핵운동에서 대중을 흡수할 가능성이라도 있는데, 지금은 정치-사회-경제-심리적으로 완전히 의존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걸 깨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지역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겠지’, ‘지역이 먼저 움직여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가깝죠.
이렇게 한수원과 핵발전소가 중심이 되어버린 울진에서, 30년 동안 탈핵운동을 해 온 이규봉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나 어려움은 없었을까? 고향에 돌아온 직후 탈핵운동을 하다 납치를 당한 적이 있다고 말했기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나는 아예 한수원 직원들이랑 커피도 안 마시고, 사업자지원사업도 신청을 안 해요. 예전에 금강소나무 숲길을 만들었던 단체에서 이사장을 맡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사장을 바꾸지 않으면 한수원에 납품하기 어렵다는 거야. 내가 그래서 아는 이장님한테 대표 자리를 넘기고, 지금은 그냥 이사만 맡고 있어요. 그땐 사회적기업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그게 곧 끝나니까, 직원들이 한수원에 도마라도 몇 개 팔려고 했는데, 내 이름이 있으면 팔아줄 수 없대요. 이러니, 누가 여기서 드러내놓고 반대운동을 계속 할 수 있겠어요, 정말 극소수지. 속으로 하거나, 방관하거나 그런 거지요. 나서는 순간,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니까요.
이규봉의 말처럼 핵발전소는 30~40년간 울진이라는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기업이자 산업이 되었고, 주민들에게 핵발전소 없는 삶을 꿈꾸는 것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핵발전소를 비판하거나 반대하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기도 하며, 핵발전소가 주민들 경제-사회-심리-정치적으로 촘촘하게 얽혀있기에 울진은 핵발전소에 종속당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싸우고 반대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이지만, 이규봉에게 한 가지 더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핵발전소 없는 삶을, 핵발전소가 아닌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것마저 불가능해 보이는 지역주민들에게 어떻게 탈핵을 설득할 수 있을까?
여기는 일자리가 정말 없어요, 그래서 원전에 대한 의존은 계속해서 심해지고, 정치인들은 대표적인 공약으로 원전 추가 유치를 내거는 거죠. 내가 고민했던 대안은 ‘원전의존경제’가 아니라 ‘생태자원을 활용한 관광’으로 자립경제를 이루는 거예요. 직전 군수도 ‘원전대안경제’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요. 대안경제의 핵심은 자연을 바탕으로 한 관광인데, 여기 울진은 바다, 산, 숲까지 다 있어요. 순천도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순천만 공원 이후로 관광객이 많이 가잖아요. 여수, 남해로 관광객이 가는 것처럼. 사실 전국에 220여 개의 시군구가 있는데 원전이 없는 대다수 지역은 한수원에서 1원 한 푼 지원 안 받지만, 지역의 발전을 위해 투자도 하면서 자립경제를 만들어가잖아요. 근데, 여기는 오랫동안 원전에 기대고, 수조 원을 받아온 ‘원전의존경제’가 심해진 게 너무 큰 문제죠. 그리고 돈이 이상한데 쓰이면서 교육이나 교통 인프라를 비롯해서 정작 필요한 곳에 쓰이질 않다보니, 지역이 나아진 것도 아니고요.
이규봉은 여타의 활동가, 주민이나 전문가에 비해 핵발전에서 탈피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까지 고민했지만,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울진에도 민간환경감시기구가 있어요, 우리가 싸워서 원전을 감시하기 위해 얻어낸 거죠. 임기는 2년간 20명이 활동하는데, 군수가 위원장인데 전체의 50%를 추천하고, 나머지 절반은 군의회에서 추천해요. 그래서 말이 감시기구지, 친원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추천하는 거예요. 감시기구가 아니라 유치기구야 사실은. 장시원 씨가 군의장으로 있을 때 추천해줘서 내가 2년간 활동했어요. 다른 곳도 온배수 문제나 농수산물 피폭 문제가 좀 있을 텐데, 여기도 그래요. 핵발전소 1기당 8도나 데워진 물이 초당 60톤이 나오니, 죽변 앞바다도 1도가 높게 나왔어요. 게다가 일부 해조류에서는 인공방사능이 조금 검출되고 있었구요. 물론, 한수원에서는 미량이고 허용범위 안이라고 설명하지. 근데 문제는 지역의 생태관광을 추진해야 하는데, 대대적으로 홍보하기가 힘들어요. 원전을 가동하면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기체와 액체, 고체상태로 상태로 방사능이 계속 나와요. 사고도 자잘하게 나지, 해조류 일부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지. 그렇다 보니, 우리가 대놓고 문제제기를 못해요. 이걸 대대적으로 말하면, 울진지역 농수산물도 그렇고 생태관광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니까요. 농수산물이나 지역 피폭문제가 탈핵운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이자 카드인데, 반대로 이걸 공개하는 순간 지역경제나 제가 생각하는 대안인 생태, 관광에도 또 타격이 될 수도 있는 주홍글씨같은 거예요. 참 어려워요.
그의 말처럼, 탈핵과 찬핵은 결코 무 자르듯 구분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미량이라고 할지라도 농수산물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어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지역주민들의 생계, 먹고사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이며, 나아가 그가 핵발전소의 대안으로 고민하고 준비해 왔던 ‘생태관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증거는 해마다 쌓이는데, 탈핵운동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지역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 그게 제일 걱정되죠. 게다가 내가 고민하는 대안경제의 핵심은 바로 ‘청정생태관광’인데, 원전과 청정이 양립할 수 있냐는 거지. 지역 이미지만 나빠질 거고요. 예전에 후쿠시마 사고 터졌을 때도, 여기 농수산물을 다 안 받는다고 해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이규봉은 지속적으로 “핵발전소는 환경문제도,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정치-경제 문제이자, 전 국민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울진에는 환경단체나 시민사회단체가 없기 때문에, 안에서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외부에서의 연대와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사실 큰 규모의 환경단체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전국적으로 연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또 거기선 ‘지역이 움직여야 뭘 하지 않겠나...’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근데 원전은 지역만의 문제도 아니잖아요. 울진은 안에서 움직일 역량도 거의 없기도 하고.
이규봉은 전국시민사회단체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만 일회성으로 방문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을 결합시켜 함께 핵발전소 문제를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알을 깨고 나올 때, 안에서 부리로 세게 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그 단단한 알에 조그마한 균열이라도 함께 내는 것이다. “왜 너희가 안 움직여, 왜 지역에서 아무것도 안 해?”라는 관점은 핵발전소와 그러한 핵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을 잘 못 이해하는 것이다. ‘한수원에서 나오는 지원금, 촘촘히 엮여있는 사회적 관계, 심리적인 의존과 자포자기 등으로 인하 지역에서는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핵발전 자체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고,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는 것이라 사실상 통제범위 밖에 있죠.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서도 확인했던 거고.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쓰는 전기를 지역에만 전가하고 영원히 관리해야 할 폐기물까지 지역에서 책임지라고 하는 건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걸 ‘지역주민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대한민국 수도권에서 전기를 쓰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욕망의 시대의 끝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지속적으로 한 지역을 희생시키는 정책을 확장하는 정부에 대해 ‘아니요’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죠.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굉장히 답답해요. 그렇다고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활동하는 핵안사조차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고 해서 해체할 수도 없어요. 명맥이라도 유지해야, 언젠가는 주민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끝으로 이규봉은 지난 30년 동안 해 온 탈핵운동이 지지부진하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특히, 9, 10호기는 꼭 막고 싶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5년 전부터 시작한 농사일과 함께 이규봉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삶’을 살아갈 거라고 말했다. 나를 잃지 않고 존재 자체를 지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변하지 않고, 이익을 얻으려고 그동안의 활동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땀 흘려 일하고 한결같이 살아가는 나의 삶, 나의 존재 자체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운동이 아닐까 싶어요. 그동안 같이 반핵운동했던 사람들과 단체들이 서서히 중립을 표방하고 결국에는 친원전을 주장하면서 자리를 얻고, 정치를 해왔거든. 울진에서 그거 아니면 살 수가 없어서 이해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아요. 사람들도 알아요, 한결같이, 그들 눈에는 제가 눈엣가시이자 독종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 사람은 운동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인정해 주는 거지. 그렇다고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활동이 돈을 벌려고 한 것도 아니니까. 사무장이나 대표를 맡은 것이나, 다양한 시민·사회·반핵운동을 해온 것들 모두가. 그래서 이제는 시민운동가답게 마무리도 잘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물론 지금은 원전에 대한 확대가 강력한 상황이다 보니 이 힘든 순간에도 자신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나를 잃지 않고, 또 쉽게 포기도 하지 않는 또 다른 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