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쫓는 우리는
사실 아름다움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인생에 정말 아주 작디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은 아주 쉽게 외적인 아름다움에 휩쓸린다.
화려한 외모를 지닌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주변의 호감을 쉽게 살 수 있다.
누군가의 호감을 얻는 것이 수치화되는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외모 조차도 수치화된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소개팅 어플에서 내 얼굴만으로 별점을 매기고, 이성으로서 만나고 싶은지 아닌지의 여부를 점수화한다.
성형외과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얼굴을 고치는 것은 더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외모가 다가 아니야! 네 내면의 아름다움을 믿어!" 라고 한 마디 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네온 데몬>
개인적으로 예술은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고 망측할 자유가 있다고 믿는다. 실제와 예술은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하는 말이다. 예술은 인간 생의 단면을 보여준다. 어떤 영화는 잔잔하고 평화롭게, 어떻게 하면 인간을 좀 더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가 하면 어떤 영화는 인간의 비극적인 단면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물론 이 영화의 경우는 후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영화가 단지 고어하고 기괴하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인 비평을 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찾는 게 아니라, '불편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숨기고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외모가 뛰어난 이들과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차별한다. 이 영화는 외모 차별이 겉으로 드러나 사회적 계급의 형태로 발현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주인공이 단지 특출나게 예쁘다는 이유로 모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모습은 확실히 불편하다. 그녀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 섞인, 혹은 질투 가득한 시선들 또한 무척이나 불편하다. 우리는 왜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낄까. 단순히 옳지 못해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과의 괴리 때문에? 물론 옳지 못한 것도 맞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무언가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때로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교훈으로 삼고, 불의를 통쾌하게 응징하는 것보다도 불편한 사실을 그대로 적시하는 것이 더 큰 울림을 주곤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외모의 화려함만을 쫓는 인간이 극단으로 치닫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이고 두려운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는 그런.
사실을 적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고? 잘못된 것을 아는 것과 이를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건 확실히 다르니까. 무엇을 고쳐야 할 지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다. 우리는 알기 때문에, 이를 내 입장이 아닌 다른 이의 입장에서 볼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나아가야 한다. 지금의 내가 아닌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