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차분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곡면을 가졌다는 사실 말고는 그다지, 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사람
그 애매함을 난 사랑했지
사실 잘 알지 못해서 구체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촘촘한 너의 단면들 속에서도 눈에 띄게 번쩍이는 것들만을 보고 사랑에 빠졌으니까.
이걸 사랑이라 명명해도 된다면, 기꺼이 그리할 것이고
어떠한 말들이 너를 정의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저 모호한 사람이길 바랬다. 마치 나처럼
하나의 단어로 라벨을 붙이기엔 너무나도 시꺼멓고 불투명한 나처럼.
한편으론 내가 보는 투명하고 새하얀 네가 이질적으로만 느껴져서. 너도 나처럼 사실은 거멓고 어둑한 사람이지? 묻고 싶었다
자석은 원래 반대잖아. 엔극과 에스극. 너와 나는 그렇게 서로에게 이끌릴 것이다, 되뇌었고 나는 그러한 가설로 내 새까만 마음을 겨우 다독이며 살았다.
여름은 축축하고 고약한 계절.
엉켜뒀던 감정들을 애써 꺼내기엔 안성맞춤이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나와 다른 이를 동경하고, 때론 사랑했다. '나 같은' 사람은 끔찍이도 멀리하고 싶었다.
나는 이미 진득할 정도로 나를 잘 알았고, 내 불투명한 심연 속에 어떤 마음들이 들어 있는지도 잘 알아서 나 같은 사람을 함부로 사랑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이에게서 나를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갖지 못한, 닮고 싶은 모습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을 때
사실 너도 끊임없는 고통을 살아냈고 여전히 살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을 때
사실 너와 나는 평행선 같은 존재들이구나, 함께 걷는 고통이 역설적이게도 너와 나를 함께 살고, 숨 쉬게 하는구나
내가 이뤄낸 시간과 네가 이뤄낸 시간이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도 나는, 이젠 너와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고통을 느낄 때 찡그리던 그 표정이, 아픔을 애써 억누를 때 차오르던 눈물의 흔적들이 나와 몹시 닮아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