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연습
(단편 작문 연습 복기 글입니다)
주제: "혐오"
교실의 아이들은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오늘은 그들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은 “낙오자” 발표일이었다.
2050년의 대한민국은 ‘혐오'를 정식 교과과정으로 등재했다. 학생들은 매일같이 다양한 혐오의 기준을 배우고, 매달 치뤄지는 낙오자 발표일에서는 각종 혐오 기준에 부합하는 아이들이 선발되어 ‘보이지 않는 땅' 으로 이송되었다. 이번 달에 새로 추가된 기준은 ‘인스타 게시물 좋아요 갯수 100개 이상' 과 ‘상체 피부 잡티 유무' 였다.
전문직 부모님 밑에서 나고 자란 민주에게 이 정도 기준은 껌이었다. 돈 좀 쓰면 다 해결되는 일, 이게 어떻게 낙오자와 자신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는거지, 하고 민주는 생각했다. 그러나 민주는 자신의 친한 친구인 유진의 등에 큰 반점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반점을 없애는 데에는 1여년간의 레이저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유진은 곧바로 ‘보이지 않는 땅'으로 이송됐다. 유진은 그녀의 반점을 끝내 발견하고 낙오자 이름표를 붙인 선생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엄청나게 절망스러운 건 아니었다. 금방 이 곳을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낙오자 규율 제 2항에 따르면 낙오자는 모든 혐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순간 ‘정상인' 으로 분류되어 다시 사회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매달 추가되는 기준은 유진의 발목을 잡았다. 반점을 제거했더니 레이저 치료로 인한 흉터를 제거해야 했고, 정상인 범주였던 유진의 몸마저도 혐오기준의 지속된 수정으로 인해 갈수록 야위어 갔다.
그렇게 3년이 지났을까, 유진은 어느 날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변하기 위해, 규율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매달리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공허하게 느껴졌다. 이미 오랜 시간 낙오자로 살아온 이상, 다시 정상인으로 돌아갈 희망은 없어 보였다. 마지막 기회를 끝으로, ‘보이지 않는 땅' 에서 벗어나기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유진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는 ‘보이지 않는 땅' 에서 사회, 그러니까 ‘보이는 땅' 으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인 암벽 등반이었다. 누구나 이 기회에 도전할 수 있었지만, 주어진 기회는 한번뿐이었고 이에 실패해 떨어질 경우 죽음도 무릅써야 했다.
오늘도 암벽등반 줄은 어김없이 길었다. 긴장한 유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등반을 시도하는 이들을 지켜봤다. 대부분이 떨어져 다치거나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 그렇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유진은 뜻밖의 인물을 발견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옛 선생이었다. 유진은 그가 자신을 ‘보이지 않는 땅' 으로 보낼 때 이미 정년에 다다라 있던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었다. 낙오자 규율에 따르면, 정년에 이른 이들 중 실버타운에 입성할 경제 능력이 없는 이들은 낙오자로 분류된다. 그러니 이들에게 탈출의 가능성은 오직 이 기회 뿐이었다. 유진은 숨을 참고 자신의 옛 선생이 등반을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반은 실패했으면 좋겠는 마음, 반은 그래도 그가 다치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선생은 그 사이 어느새 꽤나 높이 올라가 있었다. 암벽 중반을 넘어, ‘보이는 땅' 이 코 앞이었다. 유진은 그가 부러운 한편, 화가 났다. 자신을 이 곳에 던져두고는 혼자 탈출하려는 그가 괘씸했다. 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려나, 하고 생각하던 찰나, 커다란 굉음과 함께 선생이 떨어졌다. 선생의 피는 대기하던 사람들의 신발을 적셨다. 바닥은 어느새 선생의 피로 흥건하게 물들어갔다.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유진은 생각했다.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낙오자"는 곧 사형선고를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