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박찬욱 영화는 <박쥐> 였다.
파괴적 사랑과 그로테스크한 미장센의 결정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렇고,
박찬욱 감독의 수많은 미장센들은 제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 하기 때문에
하나 하나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분해해보면 수려하지만, 가끔은 미장센이 몰아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박찬욱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대중이 감상하기에 "편안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라는 것
곳곳에 숨어있는 메타포들은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은 시작됐어요.
서래로 인해 해준은 완전히 붕괴됐지만,
그 붕괴는 역설적이게도 서래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끔 했다.
그리고 서래는 사랑을 자각함으로써 스스로를 붕괴의 과정으로 이끈다.
사랑을 자각한 후 서래의 모든 동기는 오직 해준 뿐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결국 파멸인가, 아니 자멸인가.
사랑으로 인한 실수였다. 그리고 그 실수는 끝내 둘을 자멸시킨다.
해준은 경찰이기에 늘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지만,
서래로 인해 자신의 신념을 잊는다.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신념도, 매 순간 이성과 의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도 모두
바다에 던져지듯, 그렇게 사라진다.
서래는 해준에게 미결로 남고 싶었다.
스스로를 해준의 마음 속에 영원히 가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서래는, 울부짖는 해준을 뒤로 하고 바다 속에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미결로 남는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미제"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라면, 더군다나 사랑이라면,
미제를 넘어선 "영원"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서래는 늘 한 치 앞을 내다보고, 상대의 행동과 감정을 예측하며 신중하게 행동한다.
그녀는 죽음 앞에서조차 계획적이었다.
해준의 미결로, 해준의 영원으로 남기 위해 스스로의 죽음조차 계획하는 치밀함.
그로써 그녀의 사랑은 완성됐고, 해준의 사랑은 미결로 남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목이 왜 "헤어질 결심" 인가 에 대해 고민했다
실제로 탕웨이의 대사 중 딱 한번 "헤어질 결심" 이란 표현이 등장하고,
두 인물이 적극적으로 서로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기에 더더욱 납득이 되지 않았다.
실은 둘은 내내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랑이었지만, 그래서 내내 암묵적으로 헤어질 결심을 한 사랑이었지만 서래의 죽음으로 인해 그 결심이 실패해버린 사랑,
그래서 "헤어짐" 과 같은 완료형 표현이 아니라 "헤어질 결심" 이란 진행형 표현이 제목으로 쓰인 건 아닐까
좋은 영화다.
그렇지만 모든 미장센과 메타포를 한번에 소화하기엔 너무나도 섬세한 영화이기도 하다.
좋은 작품들은 관점을 더욱 풍요롭고 정교하게 만들어준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좋은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게 해준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