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갬빗>
인생을 하나의 게임처럼 대하는 이들은, 가끔 인생을 바둑을 두는 것처럼 산다, 혹은 체스를 두듯 산다고 일컫기도 한다.
인생을 하나의 체스판으로 두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체스말들을 나의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이라 가정한다면 과연 “체스 두듯 인생을 산다”는 가정은 성립하는 가정일 것일까
꽤 오래 전에 인기였던 <퀸즈갬빗> 을 최근에서야 보게 됐다.
체스 천재로 태어나 체스 챔피언으로 성장하는 주인공의 플롯이 당시엔 너무나도 뻔하고 슴슴하게 느껴져서 딱히 볼 생각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시작한 순간부터 과거의 편견은 곧바로 불식됐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베스는 입양된 고아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청소부 아저씨에게 처음 체스를 배우게 되는데, 그때 체스에게 매료된 베스는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을 빌어 “여자 최초” 지역 체스 챔피언, 그리고 나아가서는 글로벌 체스 챔피언이 되어 간다.
매 게임을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했고, 그녀를 둘러싼 모든 삶의 구성요소들은 오롯이 체스 게임을 이기기 위한 것들로만 구성돼 있었다.
모든 것을 승리에만 쏟아붓는 그녀의 삶의 방향이, 태도가 마침내 그녀를 무너뜨릴지도 모른 채로.
여전히 치열하게 사는 삶을 동경하고, 갈망한다. 쉬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을 들여 “나의 나아감”에 일조하는 무언가를 행해야 할 것만 같다.
토너먼트에서 승리하는 게 삶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베스처럼, 삶의 매순간 나에겐 달성해야만 하는 목표가 있었고, 대부분의 순간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나름대로 그 목표를 달성하며 다음 단계를 구상해왔다.
그러니 치열하게 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다. 목표가 없으면 삶의 의미가 상실되니,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내 삶의 전부였던 거다.
체스를 이긴다는 행위를 비유적으로 읽자면 내가 소속된 어떠한 세계를 완벽히 파악하고, 그 세계를 완벽히 통제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베스 또한 첫 패배를 경험했을 때, “패배”라는 경험에서 낙심하기보다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세계를 발견했다는 이유로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게임이든, 누군가의 세계든, 모든 변수를 계획하고 통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결국 모든 변수를 통제해가며 “나의 승리”에 도달하기 위해 계획하고 결국엔 승리하는 일 또한 내 통제 밖의 영역이란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당연한 이치를, 베스를 비롯한 우리는 비로소 패배를 경험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아, 내 갈망처럼 모든 게 내 뜻대로 이뤄지진 않는구나, 베스처럼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고 자랐으며 제 나이의 두배가 되는 사람들을 상대로 게임을 이겨온 승리자에게도 실패는 찾아오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각자의 실패는 응당 찾아온다.
나는 어떠한 분야의 신동도 아니고, 똑똑하다 듣고 자라온 경험과 학벌 정도가 전부인데
나를 향한 작고 하찮은 주변의 기대들이 날 과도할 정도로 오만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니 내가 겪는 실패들은 결코 어떠한 관점에서 봐도 이례적인 현상도 아닐 뿐더러, 말마따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의 수많은 변수들이 내 목적과 일관되지 않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내 치열함의 댓가가 당연히도 내 승리라고 믿는다.
사실 베스가 처음 체스를 시작하고, 오롯이 그것에만 집착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는데, 결국 “체스를 잘하는 나”의 모습은 베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주는 유일한 전제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가 갈망하는 무언가를 이뤄내야만, 승리해내야만 비로소 나 자신으로 바로 설 수 있다고 믿었고, 여전히 믿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믿음에서 간절히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의 매순간마다 좌절하고 내 자신을 잃어버릴 테니까. 뼛속깊이 느껴지는 좌절의 감정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베스가 깨달은 것처럼, 삶에는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가득하고, 승리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언젠가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왔으면,
승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 극히 일부가 될 수 있는 나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