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야기ZIP

당신을 무너뜨리는 사랑

<팬텀스레드>

by Comma



외적으로 완벽하리만치 성공한 의상 디자이너의 삶을 사는 레이놀즈는 자신만의 완벽주의적인 루틴 속에서 살아간다. 그 영역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감히 그의 영역과 루틴에 변주를 주려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레이놀즈의 인생에 우연히 끼어들게 된 알마는그의 뮤즈이자 애인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영역을 확장하면서, 마침내 그의 삶의 루틴에 변주를 주려 한다.


조용한 아침에 소음을 더하고,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자신의 삶의 방식을 굳이 포기하지 않는 그녀는 마침내 레이놀즈의 분노를 유발하고야 만다.




그러니 이 사랑은, 관계에 변곡점을 만들어낸 알마 장본인의 시선으로 풀어보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시골마을의 평범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알마는 처음으로 자신을 긍정하는 사랑을 만났다는 사실을 만끽한다.


자신을 처음으로 긍정하고 인정해주는, 그것도 아주 유명하고 인기까지 많은 디자이너가 자신에게 “꽂혔다”는 사실이 그녀를 얼마나 자신감 넘치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불안정하게 만들었는지.


그녀의 사랑은 젊은이 특유의 출렁임으로 가득했다.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결핍된 자존감, 레이놀즈에게 특별한 단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욕망,

그러니 자신의 손끝에서 자꾸만 빠져나가는 듯해 보이는 레이놀즈를 그녀는 얼마나 붙잡고 싶었을까.


말다툼이 극단으로 치닫던 날, 떠나겠다 선포하고 나서도 그녀는 정말로 그를 떠나는 선택을 하는 대신, 독버섯을 탄 차를 그에게 먹여 그를 아프게 만들고, 자신에게 온전히 의존하게 만들었다.






어릴때부터 유독 미디어 속 “뒤틀린 사랑”의 서사를 좋아했는데, 상대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집착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그를 파멸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손에 쥐고야 마는 형태의 사랑들이 좋았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형태와는 정반대다. 그러나 그만큼 서로의 영역과 선을 침범하고, “서로가 아니면 안되는” 구간까지 도달하고야 마는 관계인 것이다.





팬텀스레드는 불건강한 사랑의 정석이자, 동시에 판타지 속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사랑의 정석을 이야기한다.


서로간의 건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서로의 삶과 경계를 존중하는 어른스러운 사랑이 아닌, 서로를 누구보다 아이처럼 대하는 사랑. 내 말이, 내 행동이 상대를 상처입힐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행하는 사랑.


그 상처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쓴 것들을 삼키고, 그가 내 안에 낸 생채기까지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마음인가.






누군가를 좋아했던 마음들을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두려웠던 것 같다.


좋아함으로써, 그리고 사랑이 이뤄짐으로서 필연적으로 내가 겪어야 할 변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의 말과 행동들로부터 나는 필연적으로 상처를 받고야 말겠지.


마음을 쓰고 또 쓰다 보면 나는 마모되어 없어지지 않을까, 남는 건 나도, 너도 아닌 무형의 증오뿐이 되진 않을까 하는 막연한 공포가 시작도 전부터 나를 짓누르곤 했다.


그러니 나는 아마도, 감히 알마와 레이놀즈가 했던 형태의 사랑은 평생 하지 못할 것 같다.


상처를 입는 내 모습을 그려보기만 해도 그 자체로 이미 상처여서 시작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침대맡에 빼곡히 쌓여 있다.


그런 이유로, 작품 속 사랑들을 동경하고,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내가 감히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던 형태의 사랑들을 그들은 매서운 용기로 실천해나가기 때문에



덧붙여,


사랑의 형태의 이상향을 찾는 일은 결국 주관에 그칠 무의미한 행위에 가까울 것이다.


너무 먼 사랑은 그것대로, 또 너무 가까운 사랑은 그것대로 나 자신과 타인에게 제각기 다른 형태의 상처로 다가올 테니.


그런 이유로 <팬텀 스레드> 속 파괴적인 사랑을 비판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옹호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사랑의 형태도 상처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우린 끝내 자신을 찾아낼 것이라는 사실도.


그러니 그저 상처받음을 회피하기 위해 사랑을 회피해왔던 스스로가 가끔은 부끄러워짐은 내가 감내해야 할 또다른 고통의 영역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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