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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중 May 06. 2020

반백살에 채워보는 장래희망란

마음 버스 드라이버

작년 여름, 조금만 걸어도 가슴이 쥐어짜듯이 아파 결국 심장 시술을 받게 되었다. 위암 수술에 이어 또다시 대학병원 신세를 지게 되니 '이제 인생의 반을 지났을 뿐인데...'라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아수라 같은 응급실을 거쳐 차가운 수술대에 눕혀지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술이 끝나고 병실 창밖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의사는 취미를 가져보라고 하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내가 답답할 따름이다. 다만 이런 일을 겪다 보니, 나중에 볼 수 있도록  나와 가족에 대한 글을 써두면 좋겠다는 계획을 갖게 되었다.


퇴원 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시민대학에 등록했는데, '치유의 글쓰기, 자기 성찰과 관계 발견'이라는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강의 첫날, 저녁을 때우러 들어간 와플대학이란 가게에는 주문 카운터에 '입학처'라고 쓰여 있었고 캠퍼스의 생동하는 분위기에 왠지 설레면서 다시 학생으로 돌아 간 기분이다.


그러나 쉬엄쉬엄 하리라던 시민대학의 예상치 못한 긴장감에 입학 한 시간 만에 자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노교수님의 아우라는 수업 내내 강의실을 지배했는데 수강생들의 글을 스크린에 띄우고 조목조목 지적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닙니다. 아직 제 질문을 이해 못하셨군요. 다시 묻겠습니다" 라며 만족스러운 답변이 나올 때까지 자리에 앉히지 않았다.


또 각자에게 본인 글이 몇 점 정도 되는지 묻고는 "70점이라고요? 제가 보기엔 50점도 아깝네요" 라며 점수를 객관화시킨다. 점점 순서가 다가오자 난 몇 점을 줘야 할지 머릿속은 하얘지고 가슴은 어찌나 뛰는지 지난번 시술했던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결국 발가벗겨진 채 너덜너덜 해진 글을 끌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의 무모한 도전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날 밤, 많은 고민 끝에 와플 먹으러 가는 셈 치고 일단 한 번 더 해보기로 했다. 다음 주 역시 혹독한 합평은 계속되었고, 무엇보다 바쁜 일과 속에서 매주 주어진 주제로 글을 제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회가 거듭 될수록 중압감으로 그만두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나도 수업만 끝나면 허기가 아니라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와플을 찾게 되었다. 과연 내가 글 쓰러 시민대학에 오는 것인지, 먹으러 와플대학에 오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하지만 와플 맛에 익숙해진 것처럼 어느새 교수님 카리스마에 길들여졌는지, 언젠가부터 종일 글감을 생각하고 밤새 글을 수정하는 것이 힘들지 않게 되었고, 평소 너무 예민해서 불만이었던 성격도 글 쓸 때에는 높은 민감도로 작용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렇게 과정을 마치는 동안  '어떻게 쓸까? '라는 기술보다는 '왜 쓰는가?'라는 본질에 대해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산 하나만 넘으면 저절로 글이 써질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산이 버티고 있을 줄이야... 그동안은 자의 반 타의 반 매주 글을 쓸 수 있었지만, 이젠 외적 통제가 없으니 스스로 쓰고자 하는 동기가 좀처럼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나 홀로 일기장에 쓰는 글은 여간해서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두 번째 도전으로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작가라는 목표도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글로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점차 많은 사람에게 평가받고 싶다는 인정 욕구로 변해가면서 조회 수 그래프에 일희일비하며 낙담과 위무 사이에서 배회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1년 전 나를 위한 치유의 방법으로 시작한 글쓰기가 어느새 남을 위한 만족의 방편이 되어버린 것이다.


목표에 대한 도전은 한편으로는 조바심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절망감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자괴감에 한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고향집처럼 다시 찾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혹시 나는 초보자의 오류에 빠진 것이 아닐까?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는 남을 위한 글쓰기라는 이분법에서 하나만 취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양쪽의 조화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도전이 거듭 되면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서 출발점과는 멀어져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중심을 지키면서 적절히 파장을 확대해 가는, 초심과 추동력 사이의 균형 조합이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 동네 마을버스는 노선이 좋지 않은 탓에 배차 간격도 길고 승객도 거의 없지만 꾸준히 운행을 하고 있다. 텅 빈 버스를 타면서 문득, 지금 내게는 초심이라는 목적지와 브런치라는 변속기어로 구동하는 마을버스 같은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명이라도 타면 좋겠지만, 아무도 없더라도 매일 정해진 길을 달리는 우리 동네 마을버스와 같은 글.   


초등학교 시절, 새 학년으로 진급할 때마다 장래희망은 뭘 써야 할지 몰라 빈칸으로 남겨두곤 했는데, 나이 반백살이 다되어 작은 반딧불이를 발견한 듯하다. 이제  인생의 반환점, 새로운 출발에 앞서 그동안 비워두었던 장래희망란을 조심스레 채워본다.                                                               


                                                        마음 버스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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