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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중 May 14. 2020

이층 집 소녀와 복학생

입대 전 학점이 선동열 방어율인 복학생에게는 '연애는 사치요, 공부만이 가치' 있는 일이었다. 방종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제대하자마자 학교 앞 영어학원에서 AFKN 강의를 등록했다. 그러나 막혔던 귀는 쉽게 트이지 않고, 대신 입만 쩍 벌어질 뿐이었으니, 그것은 '어떻게 저런 게 들리지?' 할 정도의 긴 문장을 바로 직청 직해해내는 앞자리 여학생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군대밥을 먹으면 얼굴이 두꺼워지나보다. 하루는 그 여학생의 어깨를 톡톡 치며 "무슨 과길래 그리 영어를 잘하세요?" 하고 물었더니 웃으며 영문과라고 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 뒤로도 괜히 친한 척을 하며 연음법칙이니 쉐도잉이니 하는 것들을 묻다 보니 그녀의 고향이 강릉이라는 것과 남자 친구가 몇 달 전 입대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학원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그녀가 "여기가 제 하숙집이에요" 하며 언덕길에 있는 이층 집을 가리켰다. "나도 이 근처에서 자취하는데 그럼 이웃사촌인 건가? 앞으론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하게 생각하세요 "라고 아재 농담을 하는데도 빙그레 웃어주었다.   


여름이 다가오자 방학 동안 고향 집에 내려갈 예정이라는 그녀에게 가기 전에 영화나 한편 같이 볼 수 있겠느냐고 지나가듯 물었다. "마침 제 생일인데 혼자 보려니 영 심심해서요... 바쁘면 안 와도 됩니다. 하하"    


주말 아침, 극장 앞에는 평소와 달리 립스틱을 바른 그녀가 수줍은 듯 서 있었다.  "요즘 얼굴이 창백하다고 하숙집 친구가 억지로 발라준 거예요" 라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었다. 


꼭 그 이유만은 아닐 거라고 영화 보는 내내 속으로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밥을 먹으며 그녀가 건네 준 카드에는  '오빠 생일 축하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오빠라는 말이 낯설어도 왠지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2학기가 시작되었지만 그녀는 학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을이 되니 저녁이 일찍 내려앉게 되면서  골목길에서도 그녀의 이층 집 불빛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학원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어쩌다 창문에 불이 켜져 있으면 반갑고, 혹시라도 꺼져 있으면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남자 친구도 있다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  '늙어서 주책'이라고 스스로를 나무랐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자꾸만 마음이 복잡해져 갔다. 복학 후 6개월이 지나 약발이 떨어져서인가?  당초 품었던 연애는 사치요 공부만이 가치라는 말이 과연 현재도 유효한건지 모르겠다. 아저씨로 남느냐,  오빠가 되느냐의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간단한 문제인데 그녀의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어느 늦은 가을, 술에 취해 걷다 보니 낯익은 공중전화 부스 안이었다. 건너편 가로등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벌레들을 바라보면서 결국 다이얼을 돌렸다. "미안한 줄 알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라고 했다. 오랜 정적 뒤에 "저 남자 친구 있잖아요... "라고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부스를 나오니 가로등 밑에는 작은 불나방들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그날 이후, 이젠 정말 '연애는 사치, 토익만이 가치'라는 다짐으로 하루 종일 영어 테이프만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처럼, 그녀의 마지막 말은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하여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남자 친구 있잖아요'라는 그 짧은 문장은 어떤 날은 부정문으로, 또 어떤 날은 긍정문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  


그렇게 어지러운 마음은 무심코 그 집 앞을 지나치게 되면 더 소란스러워졌다. 만약 그녀가 일층이나 반지하에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층은 보지 않으려 해도 자꾸 눈에 들어오니 말이다. 그 이층 집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 겨울 방학 내내 자취방에서 나오지 않기로 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이제 정신 좀 차리라는 친구 말에 머리를 짧게 깎고는 설악산 종주 길에 올랐다. 2박 3일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땀만 흘리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대청봉 정상에서 강릉 시내가 시야에 들어오자 강릉이 고향이 라는 그녀 말이 떠올라 이 산만 내려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와르르 무릅이 꺽이고 말았다. 


올해 봄, 오랜만에 대학 동창회로 모교에 들렸다가 혹시나 하고 예전 그녀가 하숙하던 곳을 찾아가 보았다. 시간은 가도 공간은 남는 것. 전체적인 골목길의 구성은 변했지만 그 이층 집은 아직도 담쟁이넝쿨 그대로다.


그때의 26살 복학생 아저씨는 이제 진짜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대청봉에서 식별가능한 가시 거리는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속초를 강릉으로 착각하던 얼치기 시절을 생각하면 쓴웃음만 나온다. 돌이켜보면 자기가 그어 놓은 경계 사이에서 배회하던 어설픈 복학생은 스스로의 바람을 담아 바라보던 대상에 투영하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노을에 비치던 그 이층 집 창문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이지 않았을까? 


여전히 학교 앞 그 집에는 새로운 누군가가 하숙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노래처럼 저녁 종소리 울려 퍼지면 또 다른 누군가가 이층 집 소녀를 위해 휘파람을 연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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