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그맘>에서 ‘인생 캐릭터’를 만난 배우는 단연 박한별이다. 하나 ‘인생 캐’가 있기 위해서는 주연의 연기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이 있어야 가능하다. 박수는 ‘양 손’이 있어야 소리가 나지 한 손만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박한별의 인생 캐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배우는 누가 뭐라 해도 양동근이다. 양동근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극 중 감정 조절은 그가 연기했던 최고봉이 다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만난 양동근은 <보그맘>에 출연한 계기에 대해 “<보그맘>이 다루는 소재가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처럼 신선하고 좋았다. 넓은 스펙트럼까지 함축하는 드라마라 출연하게 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로봇(박한별)과의 사랑은 어땠나.
“드라마는 로봇과 사랑해야 하는 플롯이었지만 처음엔 그 플롯으로 갈 지 몰랐다. 예전 같았으면 심각하게 고민했을 거다. 왜냐하면 극 중 역할과 저라는 본인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그래서 소화하기 어려운 작품은 그동안 하지 않았다.
하나 로봇이나 인형을 좋아하는 분들을 생각해서 연기해 보자 생각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최고봉의 사랑은 미래 지향적인 사랑이다. 제 생각을 지우고 감독과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을 충실히 보여주고자 했다.”
-1987년에 데뷔했으니 올해로 연기 인생 30년차를 맞이했다.
“최고봉은 부자이면서 머리가 좋고, 아버지다. 이런 역할을 맡았다는 게 큰 의미를 갖는다. 이런 역할이 처음이다. 그동안 나이대에 맞는 연기를 해왔다. 처음 연기할 때는 6.25나 일제 강점기 때 난민 어린이 연기를 해왔다.
아역 배우를 하다가 성인 연기, 이어 중년 연기를 했다. 배우로서 전에 좋은 반응을 얻었던 캐릭터를 맡고 싶은 마음도 강했지만 ‘나는 배우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30대 초반부터 해왔다. 이번에 중년 연기자의 신호탄을 날리는 최고봉 같은 아버지 역할을 오랜 기다림 끝에 하게 됐다.
노주현 선생님의 연기를 보면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이번 연기할 때 (노주현 선생님처럼) 연기 톤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보그맘>에는 많은 카메오가 출연했다. 기억에 남는 카메오 배우가 있다면.
“<SNL 코리아>의 정성호 씨다. 그분의 모든 걸 한자리에서 보는 게 힘든데 바로 옆에서 개인기를 총망라하는 걸 다 보았다. 이덕화, 임재범 모사 등 거의 모든 걸 다 봤다. 경외감을 느낄 만큼 즐거웠다.”
-대중은 ‘양동근’ 하면 <네 멋대로 해라>를 떠올린다.
“여기 가도 <네 멋대로 해라>, 저기 가도 <네 멋대로 해라>라고 할 정도로 평생 꼬리표다. 더 좋은 작품은 이 작품 하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 좋은 작품은 나올 수 없다고 본다.
-음악 활동은 언제 재개할 예정인가.
“현재는 음악을 내려놓은 상태다. 음악 작업을 하려면 음악에 빠져 살아야 한다. 음악 작업은 혼자 집중해야 하는 일인데 지금처럼 아이들을 돌보면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음악적으로는)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구나 생각할 정도로 음악에 신경 쓸 자리가 없다.
시간과 공을 들이기에는 음악을 못할 것 같다. 요즘은 음악에 대한 재정비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힙합 무대는 <쇼미더머니>가 장악하는 시대다. 제가 설 자리가 어딘지 찾아갈 때다.”
-정점에 있다가 내려오는 중이라는 느낌이 든다.
“20대 때 드라마나 시트콤, 앨범으로 정점을 찍었다. 30대를 지나면서 내려온다는 게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시리도록 보냈다. 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게 낫다. 잘 살 준비, 잘 죽을 준비를 하며 사는 중이다.”
-장차 2세가 배우의 길을 간다고 하면 뭐라고 할 건가.
“닥쳐보아야 알겠지만 진로에 있어 이쪽 일을 하겠다고 하면 부자간에 진지한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일을 지지하겠다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유대감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해 주는 게 낫다.
한국에서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많은 무게를 지고 가는 직업이다. 제가 걸었던 길을 아이가 답습하기보다 더 좋은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박한별 씨가 임신했다는 건 언제 알았나.
“막바지가 돼서야 알았다. 보그맘이 연기하는 장면은 뛰는 장면도 있어서 박한별 씨도 조심스러웠을 거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본인 때문에 피해되면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막바지에 임신 사실을) 공개했다.”
-박한별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
“몸이 힘들었을 텐데도 캐릭터 준비를 많이 하고 왔다. 박한별 씨가 성격이 좋다. 저는 대사하는 거 외에는 말이 많지 않다. 하지만 박한별 씨는 (배우와 스태프를)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이다.
박한별 씨는 임신 중이었음에도 티를 내지 않고 현장에서 열심히 연기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박한별 씨를 다시 보게 됐다. 남자배우가 먼저 이야기를 안 하면 대개의 여배우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나 박한별 씨는 농담을 안 하는 듯하면서 농담하는 식으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 줄 안다.
다른 배우와는 현장에서 (공통된 소재로) 이야깃거리를 나눌 게 많지 않다. 임신 덕에 박한별 씨도 제게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미디어스 (사진: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