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강철비’ 북에 대한 순진한 온정주의, 언제까지?

* 이 글에는 영화의 몇 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글은 필자가 집필하는 네이버뉴스 노출 매체엔 실리지 않는 글이다. 매체 성향과 이번 글의 성향이 확연히 다르기에 그렇다. 14일 개봉하는 <강철비>는 개봉하는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해 달라고 국제사회에 생떼를 쓰는 상황에서 개봉하기에 그 어느 영화보다 시의성에 있어서 타이밍이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대한민국이 북한에게 ‘핵 인질’이 된 이런 타이밍에,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지만 군사적으로는 북한에 핵 인질이 되어버린 우리의 안보적인 불안을 굳이 극장에 와서까지 확인해야 하는가 하는 피로감이 스크린을 통해 엄습한다.     


이런 안보적 위기 가운데서 이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계보를 충실히 걷는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웰컴 투 동막골> 류의 영화를 살펴보면 북한을 징벌해야 할 타자가 아니라 따스한 온정주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시대가 변한 만큼 <똘이장군>처럼 극단적인 반공주의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어야겠지만, 스크린 속에서의 북한에 대한 온정주의적인 기조는 김정일-정은 정권이 핵을 개발함에도 불구하고 신기할만큼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의형제>부터 <공동경비구역 JSA>의 트렌드가 다른 모양으로 패턴화하면서 대중에게 북한에 대한 온정주의적인 시각이 먹히는 영화가 속속 양산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의형제>와 <공조>,<강철비>에 이르기까지 북한군이나 북한 공작원을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강동원과 현빈, 정우성처럼 한국영화의 당대를 대표하는 미남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북한 주인공에 대해 ‘이상적인 타자’라는 관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남 주인공을 캐스팅한 결과다.     


하지만 이들과 우정을 나누는 한국  인사를 보라. 송강호와 유해진, 곽도원이 연기한 남한의 주인공은 북한 요원에 비해 ‘아재’로 묘사되고 있다. 외모도 평범하고 교전 능력도 떨어지는 아저씨로 남한 요원을 묘사함으로 이들 세 영화는 북한 요원에 대해서라면 외모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전투력도 탁월한 ‘이상주의적인 타자’라는 시각을 관객에게 알게 모르게 주입한다.     


<강철비>의 캐릭터 묘사에 있어 <강철비>가 <공동경비구역 JSA>와 <의형제>의 연장선 안에 있음을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플롯의 몇몇 허점을 짚겠다. ‘강철비’라 불리는 ‘스틸 레인’은 공중에서 철제 파편이 흩뿌려지는 클러스터형 로켓 탄두다. 오죽하면 별명이 ‘사령관이 애용하는 산탄총’일까. 하늘에서 샷건 탄알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살상 범위가 너무 넓은 바람에 세계 140여 개국 이상이 쓰지 말자고 사용 금지 협약을 맺은 로켓이다.     

사용 금지 협약이 맺어진 무기를 다른 곳으로 수송할 때는 적에게 탈취당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호위가 엄중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북한군이 강철비를 탈취할 때 미군은 그 어느 호위도 없이 운반하다가 맥없이 탈취 당한다. 기존의 분단 영화에서 묘사해온 것처럼 북한을 ‘전투력이 우수한 타자’로 그리기 위해 미군의 호위를 현실과는 동떨어지게 맥없이 묘사한다.     


‘북한 1호’가 치료받는 병원을 경비하는 우리 군의 태세도 영화에서는 문제가 있다. 북한 1호 외에는 외부 환자의 침입이 엄격히 금지되는 병원에서 국군은 북한군이 위장한 앰뷸런스를 엄격히 통제하지 못해 북한군에게 위협 받는다.      


북한군이 유탄발사기를 갖고 있는데, 왜 우리 군은 그 흔한 유탄발사기 하나조차 갖고 있지 못할까? GNP에 있어서 북한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대한민국 군인은 이 영화에서 유탄발사기조차 갖지 않고 경비를 서는 ‘띄엄띄엄한 군인’이 되고 만다.     


정우성이 북한 1호를 응급 치료하기 위해 일산의 산부인과에서 김갑수와 통화한 직후 북한의 암살 요원이 밀려왔다면 당연히 김갑수를 의심해야 한다. 하나 정우성은 김갑수에 대해 의심하기보다 전화기가 도청 받지 않나 하고 도청을 의심하는 우를 저지른(이는 스포일러가 아니다. 영화 시작 30분 전후로 전개되는 상황이다).     

이 영화가 정성스레 쌓은 공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장면은 맨 마지막 곽도원의 대사다. 북한이 삼백 만 명의 국민이 굶어죽으면서까지 핵을 가지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그 중요한 핵을 곽도원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순순히 타협할 수 있을까?  


지금의 북한은 한국을 ‘패스 오버('패싱'은 콩글리시다)’하고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미국과 단독 대화를 꿈꾸는 나라다.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상주의적이자 순진한 발상 기인한 마지막 대사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북한이 십 년 이상 공들여 만든 핵이라는 조커를 그리 쉽게 '공유'할 것이라는, 북한에 대한 순진하리만치 현실 감각이 떨어진 온정주의는 <강철비>의 지독한 한계다. 


동시에 지금의 급박한 동북아 정세와는 매치되지 않는 <의형제> 방식의 패턴을 동어반복할 때  어떤 부작용이 초래하는가를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패착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별점:  ★★ (5개 만점)


(사진: NEW)

매거진의 이전글 ‘빌리 엘리어트’ 부성애와 연관된 개천에서 용 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