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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흥부’ 故 김주혁도 살리지 못한 설익은 고전

영화 <흥부>는 故 김주혁의 유작이면서 동시에 정진영과 김주혁이 기존에 연기해 오던 캐릭터와 180도 상반된 연기를 이번 영화에서 선보인다. 기존 영화에서 정진영은 많은 경우 선한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반면 김주혁은 <석조저택 살인사건>과 <공조>를 통해 악역을 연기해 왔다.      


이번에는 선한 역을 연기해 오던 정진영이 놀부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는 악역인 ‘조항리’, 악역을 맡던 김주혁이 흥부의 모티브가 되는 굿가이 캐릭터 ‘조혁’을 연기함으로 ‘반전 캐스팅’을 보여준다. ‘바른 생활’의 아이콘은 악역이 되고, 반대로 ‘배드 가이’는 모범생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반전 묘미 말이다.     

<흥부>는 ‘흥부’라는 고전이 어떤 방식으로 태동하게 되었나를 되짚는 영화다. 헌종 당시 가공의 인물인 조혁과 조항리를 토대로 흥부와 놀부의 서사를 완성해 간다는 주인공 연흥부(정우 분)의 이야기는, 고전 ‘흥부’ 서사의 태동을 묘사한다.      


문제는, 이토록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가지고도 영화가 맛깔나게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첫 번째 문제는 주인공 흥부가 친형을 찾아야 하는 모티브와 친형을 찾는 과정을 고전의 토대가 되는 조혁과 조항리의 서사보다 빈약하게, 그것도 매우 초라하게 다뤘다는 점이다.      


흥부가 조혁을 설득해서 그토록 간절히 상봉하기를 바랐던 친형의 상봉에 대한 서사는 영화에서 초라하고도 빈약하게 묘사된다. 그에 비해 고전의 모티브가 되는 두 형제의 이야기가 흥부와 놀부라는 형제의 사연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형을 간절히 찾아야만 한다는 간절함은 있지만 정작 형을 만난 다음 이야기의 진전은 늪에 빠지고 만다.     

두 번째 문제는 조항리가 의뢰한 ‘정감록’의 추가본을 작성하는 걸 주인공 흥부가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정감록이 어떤 책인가. 새로운 왕조가 도래한다는 역성혁명를 기치로 삼는 예언서 아닌가. 조항리는 정감록에 예언된 주인공이 조항리 자신임을 정감록을 읽는 독자가 알 수 있게끔 흥부에게 집필을 의뢰한다.     


정감록의 주인공이 조항리라는 사실을 집권자인 헌종이 알게 되면 정감록에서 실세로 묘사되는 조항리는 물론이고, 정감록의 추가본을 저술한 흥부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이 영화의 문제는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집필 의뢰 건을 진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조항리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흥부의 안일한 처신이다.     


세 번째는 헌종(정해인 분)의 묘사 방식이다. 대비(김완선 분)의 말 한 마디면 주눅이 드는 이가 헌종인데, 헌종이 어떻게 해서 대비에게 기를 펴지 못하는가에 대한 묘사가 영화에서는 배제되다시피 했다. 영화의 후반부를 보면 헌종이 아버지를 매우 그리워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역시 헌종이 왜 아버지를 그리워해야 하는가에 대한 묘사가 없기에 관객은 헌종의 행동에 의구심을 표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아쉬운 점은 하이라이트 장면인 ‘마당극’ 장면이다. 천 만 영화 <왕의 남자>를 보면 놀이패들의 마당극에서 연산군의 트라우마가 폭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애절함이 마당극 한 편을 통해 폭발하고, 이어 연산군의 분노가 어떤 방식으로 도미노처럼 이어져 갔는지가 <왕의 남자>에서는 잘 짜인 씨줄과 날줄처럼 직조돼 있었다.     


하지만 <흥부>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궁중에서의 마당극이 <왕의 남자>처럼 극적인 터닝 포인트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약점을 갖는다. 초등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일차원적인 방식’의 이야기 흐름으로만 다루지 <왕의 남자> 속 연희처럼 극적인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큰 한 방’을 제시할 줄 모른다. 아니, 큰 한 방을 제시할 줄조차 모른다고 하는 게 적절한 표현이다.      


이번 설 연휴 한국영화 빅 3인 <골든슬럼버>와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중 <흥부>는 작품성과 완성도 둘 다 가장 뒤처지는 영화다.     


이 영화의 별점: ★★ (5개 만점)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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