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없는 행동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인과론을 신봉하는 이들에게 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 ‘독전’에서 캐릭터들은 움직이지만 그런 행동이 있게끔 만드는 ‘원인’이 없다. 인과론이 무시된다. 조진웅이 연기하는 원호는 아시아 최대 마약 조직의 핵심인 ‘이선생’을 악착같이 추적하지만 왜 그토록 이선생에 집착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배재되어 있다.
‘독전’을 만든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이유’를 간과하고 만든 게 아니다. 이유보다는 행동에 포커스를 맞추고 일부러 이유를 배제하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런 감독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이유가 없다 보니 행동을 있게 만든 원인 제공에 대한 의문부호가 영화의 빈 공간을 확장시키는 부작용이 생긴다.
사연의 부재를 배우의 연기력으로 대체하고자 했지만, 이 배우가 왜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당위성의 연결고리가 처음부터 부재하니 서사의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캐릭터의 행동을 부추길 만한 방아쇠인 ‘원인’ 자체가 배제되었을 때 서사의 몰입에 있어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부작용을 감독이 간과한 결과물이다.
이 영화의 더욱 큰 문제점은 ‘이미지 과잉’이다. 작년 여름 ‘신세계’로 이름을 날린 박훈정 감독은 ‘브이아이피’를 내놓았을 때 개봉 전부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젠더 감수성을 배려하지 못한 감독의 이미지 과잉이 아주 불편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스크린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독전’은 폭력으로 점철된 이미지 과잉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영화는 ‘잔혹 강박증’에 경도된 것처럼 과잉된 이미지가 서사를 점령하는 지경에 다다른다.
‘독전’의 이미지 과잉과 대비되는 영화는 ‘양들의 침묵’이다. 영화는 사람 고기를 먹는 식인 박사라는 무시무시한 캐릭터를 영화의 주연으로 내세웠음에도 잔혹함에 치를 떠는 영화가 아니다.
‘양들의 침묵’을 만든 조나단 드미 감독은 시각이 다가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아우라, 그리고 소리 등으로도 얼마든지 관객의 긴장감을 높이는 서스펜스를 높일 줄 아는 기량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전’은 그러질 못했다. 과한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시각적 이미지 과잉이라는 한 가지 전략에만 전력투구할 줄만 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아님에도 관객은 조진웅과 김주혁이 눈알이 담긴 술을 마시는 것을 보는 것도 모자라 눈알을 입 안에 넣고 씹어대는 그로테스크함을 굳이 시각적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보아야만 할까.
김주혁을 악인으로 묘사하되, 그가 마약에 쩔어 사는 잔인한 악당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게 다가 아니라 아우라가 느껴지는 악당으로 만들었다면 영화는 보기가 덜 불편했을 텐데 말이다.
만일 ‘양들의 침묵’을 만들 때 서스펜스를 조성함에 있어 청각과 아우라가 아니라 시각이라는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우리는 안소니 홉킨스가 교도관의 육체를 해체하는 시각적 고문에 시달렸을 텐데 ‘양들의 침묵’을 만든 조나단 드미 감독은 이런 이미지 과잉을 요령 있게 피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전’의 이해영 감독은 그러하질 못했다.
‘독전’은 여성 캐릭터를 다룸에 있어서도 젠더 감수성으로 볼 때 불편한 영화다. 예고편으로 보면 그럴 듯한 역할을 할 법한 캐릭터는 잠깐 등장한다. 마약중독자의 불안정한 정신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는 건 이해하겠지만 여성 캐릭터의 쓸데없는 가슴 노출은 의아할 뿐이다. 이 영화의 여성 캐릭터는 제 가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모되는 역할이 많다.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영화다. 조진웅과 류준열, 김주혁의 연기 재능이 아까운 영화다.
이 영화의 별점: ★★ (5개 만점)
미디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