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찾기’, 혹은 ‘빨래’처럼 소극장 뮤지컬임에도 흥행성과 작품성 둘 다 인정받아 롱런을 하는 창작뮤지컬 장르는 이상하게도 소극장에서만 가능했다. 중극장 이상의 규모만 들어가기만 하면 잘 빠진 창작뮤지컬은 고사 상태에 직면하기 일쑤였다. 설앤컴퍼니가 야심차게 기획했던 JYJ 김준수 주연의 ‘천국의 눈물’, 영화감독 장진을 기용해 야심차게 기획한 ‘디셈버’의 뼈아픈 실패는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대극장 창작뮤지컬이라고 해서 죽어지낼 수만은 없는 법. ‘그날들’을 필두로 창작뮤지컬의 ‘결’은 이전의 대극장 창작뮤지컬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어 대극장용 창작뮤지컬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끼게 만들어준 두 작품이 등장했다.
하나는 ‘프랑켄슈타인’이다. 왕용범 연출가는 뻔히 아는 고전을 뻔하지 않게 만들 줄 아는 연출로 대극장 창작뮤지컬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객석에 보여주었다. ‘프랑켄슈타인’이 무대에 오른 게 초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 평일에도 1층 객석은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잘 빠진 창작뮤지컬은 관객이 알아서 찾아본다는 걸 방증한다.
두 번째는 ‘마타하리’다. 관람 전에 창작뮤지컬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보게 만들어도 라이선스 뮤지컬로 깜빡 속게 만든다는 창작뮤지컬로, 창작뮤지컬의 무대도 얼마든지 ‘물량 공세’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초연 당시 서사가 길다는 지적에 재연에는 본래의 서사에 집중할 줄 아는 연출의 변화도 감지됐다.
대극장 창작뮤지컬의 진화를 알려주는 세 번째 뮤지컬은 올 여름 최대 화제작인 ‘웃는 남자’다. 무대의 스케일을 보면 라이선스 뮤지컬 찜 쪄 먹는 수준으로 그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한다.
1막 초반부에 주인공인 ‘웃는 남자’ 그윈플렌을 버리고 간 콤프라치코스 일당이 바다에 수장되는 긴박감, 2막 후반부에서 영국 상원위원회의 웅장한 장광은 ‘웃는 남자’에서만 찾을 수 있는 무대 세트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무대만 화려하다고 뮤지컬의 모양새가 잘 빠지는 건 아니다. 넘버를 소화하는 배우의 넘버 처리 능력이 뒷받침돼야 뮤지컬 넘버는 맛깔스럽게 살아날 수 있다. 그윈글렌을 연기하는 박효신은 가요계에서는 알아주는 자타 공인 발라더다.
박효신은 그 이름값을 뮤지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2막 후반부의 넘버 ‘눈을 떠요’, ‘웃는 남자’ 두 넘버를 부를 때 일시에 객석은 ‘숨멎주의보’가 발령된다. 숨이 멎게 만들 정도로 황홀한 가창력을 구가하는 박효신의 넘버를 듣고 있으면 박효신이야말로 ‘남자 세이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다만 서사 진행에 있어서는 ‘마타하리’ 초연처럼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필요해 보인다. 이 뮤지컬을 보면 발레의 ‘디베르티스망’처럼 주요한 서사와는 상관없는 곁가지 서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뮤지컬의 서사 진행은 길다고 중요한 게 아니다. 주인공의 흐름 가운데서 개연성을 일관성 있게 찾을 수 있을 때 사서의 몰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웃는 남자’를 만든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는 ‘엘리자벳’ 등 일련의 라이선스 뮤지컬 제작에서 성공한 전례를 바탕으로 ‘마타하리’에 이어 ‘웃는 남자’ 역시 대극장용 창작뮤지컬의 블록버스터를 2연속 제작에 성공했다.
창작뮤지컬의 블록버스터 ‘웃는 남자’가 스케일도 대작이면서 작품성도 대작이었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 급이 되길 바란다면 서사의 선택과 집중에 신경써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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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MK뮤지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