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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인랑’ 김지운 감독의  이상한 각색

오시이 마모루의 원작 애니메이션이 김지운이라는 외국 감독의 메가폰으로 실사 영화화됐다. 김지운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사화 하되 지금의 한국 상황에 맞는 각색을 시도한다. 원작의 배경이 1960년대 일본이라면 김지운은 메가톤을 잡으면서 2029년 미래의 한국을 그린다.     


김지운 감독이 묘사하는 미래의 한국은 통일 한국을 앞두고 있다. 남과 북이 통일 준비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이념을 초월하여 남과 북이 하나로 합치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동안 분단 한국으로 ‘재미’를 보던 한반도의 주변 열강들의 영향력은 덜하거나 사라지기 마련이다. 전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를 통해 강대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지만 한국이 통일이 되면 분단 당시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영화 속 강대국들은 통일을 목전에 둔 한국에 ‘경제 제재’라는 딴지를 건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반도가 수출에 지장이 생기면 당연히 먹고사니즘, 민생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에 통일을 반대하는 반정부 무장단체 ‘섹트’가 나타난다.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남한 정부의 입장에서는 대외적으로, 내부적으로 두 개의 적이 존재한다. 대외적인 적은 한국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라는 4대 열강이다. 다른 하나는 통일을 반대하는 극렬 조직 섹트다.      


영화 속 주인공인 강동원이 연기하는 임중경이라는 캐릭터는 내부의 적인 섹트와 맞서는 특수 조직인 ‘특기대’에 소속된 인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빅 트러블’, 4대 열강과 섹트라는 대내외적인 문제와 특기대를 맞닥뜨리는 걸 거부한다.     


특기대가 맞이하는 적은 누구인가. 그건 섹트도, 한반도의 4대 열강도 아닌 국가 정보기관 ‘공안부’다. 영화를 움직이는 갈등 요인이 통일 한국의 불안을 가속화하는 4대 열강의 경제 제재라는 만행이나, 남한 정국을 불안하게 교란하는 섹트와의 대립이 아니라 - 특기대와 공안부의 대립이라는 정부 기관과 다른 정부 기관의 갈등으로 묘사한다.     


영화의 문제점은 여기서 시작한다. 겨울에 영화 ‘염력’을 리뷰로 다루면서 철거민이 마주해야 하는 진정한 상대는 표면상의 용역업체가 아니라 몸통인 악덕 건설업체였어야 했다는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염력’의 문제점은 갈등의 원인이 되는 몸통인 악덕 건설업체와의 투쟁은 배제하다시피 하고 악덕 건설업체에게 고용된 용역업체라는 깃털과의 갈등에만 집착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     

영화 ‘인랑’을 한국적인 설정으로 각색하면서 ‘염력’이 저지른 과오는 ‘인랑’에서 평행이론처럼 드러난다. 한반도에 갈등을 조성하는 4대 열강이라는 갈등의 원인 제공자는 배제하다시피 하고 공안부와의 대립에만 초점을 맞추고 만다.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는 ‘진짜 원인 제공자’를 향한 갈등 완화의 노력이 배제되다시피 했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영화는 외부의 적은 방치된 채 국가 기관 대 국가 기관이라는 내부의 갈등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가 되고 말았다.      


외부의 적과 조우하지 않은 채 내부의 갈등에 초점을 두는 실사 영화의 문제점은 영화의 첫 단추를 ‘4대 열강의 경제 제재’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각색은 원작의 초반부 설정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원작은 어떤 설정이었을까. 일본 원작은 2차 대전의 승전국인 독일의 압제에서 벗어난 일본이 ‘압축 성장’을 하면서 일어난 경제적인 부작용으로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하고, 급기야는 섹트라는 반정부 세력이 등장한다는 설정이다. 이를 김지운 감독은 한반도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4대 열강과 통일 한국을 반대하는 반정부 세력으로 각색한 것이다.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진행했다면 국가 기관과 국가 기관의 갈등으로 서사를 진행해도 무방하다. 일본의 압축 성장이라는 ‘내재적인 원인’으로 섹트가 태동한다는 원작 설정은 갈등을 태동하게 한 원인이 외국이라는 일본 밖의 ‘외부자’가 아니라 압축 성장이라는 경제 정책의 부작용이기에 국가 기관 대 국가 기관의 대립으로 서사를 이끌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각색대로라면 원작과는 달리 갈등의 결이 달라진다. 한반도의 불안을 촉진시킨 강대국의 알력이라는 가장 큰 원인에 대한 투쟁은 배제하고 특기대와 공안부의 대립이라는 부차적인 갈등에 집착하는 영화로 모양새가 뒤바뀌기에 문제시되기에 충분하다.    


4대 열강이라는, 한반도에 궁극적인 갈등을 야기한 근원에 대한 고민이나 진지한 성찰이 실사 영화에서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인랑’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설정이다.     


이 영화의 별점: ★★1/2☆ (5개 만점)


미디어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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