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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과 ‘범죄도시’의 추석 흥행, 과연 우연일까?

<물괴>가 먼저 포문을 연 추석 한국영화 4파전의 승자는 <안시성>의 몫이 됐다. 관객이 안방에서 IPTV로 시청해도 무방할 ‘토크 대전’ 수준의 영화보다는 스펙터클한 장관이 담긴 <안시성>의 손을 들어준 결과다.      


그럼에도 <안시성>을 조금만 복기하면 이 영화가 그리 독창적이지 않다는 걸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300>에게 빚지는 설정이 일정 부분 있다.      


<매트릭스> 이후 널리 퍼진 ‘불릿 타임’의 남발이 <300>만의 독창적인 연출이 아니라고 해도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의 뺨이 상처를 입는 장면이 <안시성>에서 같은 방식으로 재연되는 연출, 혹은 당 태종의 호위무사들이 쓴 가면이 영화 <300> 속 페르시아 병사가 쓴 가면과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300>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하나 더, 요즘 들어 민감한 화두 가운데 하나인 PC(정치적 올바름)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안시성>은 정치적 올바름과도 거리가 있다. 설현이 연기하는 백하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인물로 묘사된다. 정은채가 연기하는 신녀(神女) 시미 또한 기능적인 역할을 하기보다는 소모적인 역할에 그친다.     


영화 속 이런 방식의 묘사는 <베이비 드라이버> 속 젠더 감수성의 결여와 맥락을 같이 하기 쉽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주인공 베이비가 부모를 잃는 과정을 복기하자. 어린 베이비가 탄 승용차의 운전대는 그의 엄마가 잡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조수석에 앉은 아빠와 말다툼을 하면서 시야를 앞이 아닌 남편을 바라보면서 말다툼을 하는 바람에 트럭과 충돌을 일으키고 그 여파로 목숨을 잃는다.     


다른 사례를 끄집어본다면 <월드워Z>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하는 레인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좀비에게 발각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정적이 필요한 타이밍에 하필 레인의 아내가 위성폰으로 전화를 하는 통에 레인은 좀비에게 발각될 위기에 직면하고 만다. <안시성>과 <베이비 드라이버>,<월드워Z>는 PC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단점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안시성>은 이런 단점, 혹은 <300>과의 기시감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안시성>이 2018년 추석 흥행의 선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쉴 틈 없는 전투 장면의 물량 공세적인 공이 크다.      


하지만 하나 더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이를 작년 추석 흥행 1위 영화인 <범죄도시>와 맞물려 고려해 보자.     


<안시성>과 <범죄도시>에서 한국인 주인공이 대하는 적은 당나라와 조선족으로 대변되는 ‘중국’이라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그간의 한국영화에서 중국이 대적해야 하는 적으로 부상한 흥행 영화는 <명량>,<아바타> 및 <인터스텔라> 등의 천만 영화 가운데서 단 한 편도 없다.      


그러다가 작년 추석을 기점으로 한국영화의 흥행 추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선족이 흉악범으로 등장하는 <범죄도시>가 추석 흥행 왕좌를 차지한 다음해인 올해는 당시 세계 제국이던 당나라 태종을 무안하게 만드는 <안시성>이 <명당>과 <협상>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기 위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중이다.     

<범죄도시>와 <안시성>의 흥행 성공 뒤에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한국 대중의 반감이 투사되고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사드 보복 이전에도 동북공정으로 한국인에게 반감을 사온 중국이지만, 중국은 이번 사드 보복을 통해 그 옛날 동북아의 ‘조공 질서’를 되살리고자 하는 민낯을 한국으로 하여금 다시금 상기하게 만들었다.     


이런 중국의 힘의 폭압은 스크린에서 중국을 대적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게 만들었고, 관객은 이에 동조함으로 중국에 대한 반감을 스크린으로나마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안시성>과 <범죄도시>의 연이은 흥행 성공 뒤에는 사드 보복을 감행한 중국에 대한 적개심이 극장을 찾는 대중에게 내재하고 있음을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사진: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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