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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스’ 타인의 사연에 귀기울이게 만드는 공포

한국과 서양의 공포물의 차이 중 가장 큰 특징을 짚으라고 한다면 타자, 초자연적 현상의 대상이나 살인마를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점이다. 서양의 공포물에서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기는 살인마나 영적인 존재는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타자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퇴치’해야 할 타자다.     


‘사탄의 인형’ 속 처키, ‘그것’에서 무섭게 등장하는 피에로, ‘엑소시스트’ 가운데서 소녀 몸속에 깃든 악령 모두 퇴치하고 적극적으로 멀리 해야 할 대상이다. 이들 악령이나 살인마에게 관객이 감정이입해서 들어줘야 할 사연은 서양의 공포물 가운데선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동양 공포, 그 가운데서도 한국 공포영화는 서양의 공포영화완 결이 다르다. 한국 공포영화 속에서 공포를 안겨주는 대상이 적극적으로 물리쳐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많다.     


‘여고괴담’의 최강희가 대표적인 사례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을 단순히 괴롭히는 게 아니라 유령에게도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을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가에 포커스를 맞춘다. 태국의 공포영화 ‘셔터’도 마찬가지다. 유령이 되어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유가 명확하다.      


이런 타입의 영화에선 ‘해원’, 귀신을 퇴치하는 게 다가 아니라 유령의 한에 귀를 기울이고 한을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 서양 공포영화에선 주인공에게 해를 가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나 살인마를 ‘퇴치’하는 게 목적이지만, 한국영화에선 ‘해원’, 원한을 들어주고 그 한을 풀어줌으로 초자연적인 존재가 물러나는 걸 넘어서서 그 원인이 된 원한을 풀어준다는 차이가 있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어스’는 서양영화임에도 그 결이 기존의 서양 공포영화완 다른 점이 있다. 주인공과 마주하는 도플갱어는 법적으론 ‘주거 침입죄’를 저지른다. 주인공이 머무르는 장소에 주인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들어오는 도플갱어의 행위는 분명 주거 침입에 해당하고, 이는 기존 서양 공포영화의 관습대로 퇴치하거나 사살하는 게 정당하다.     


그러나 ‘어스’는 통상적인 서양 공포영화의 문법을 넘어서는 특징을 갖는다. 주인공의 거주지에 무단으로 침입한 도플갱어가 공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그의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철학으로 치면 레비나스가 강조하는 ‘타자 철학’과 영화 ‘어스’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화이트헤드가 설파한 ‘과정철학’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     


가해자를 물리치거나 사살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도플갱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사연에 관객이 이목을 집중해야 하는 영화다. 가해자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는 영화 문법은 한국 공포영화에나 적용되는 문법이지 서양 공포영화에선 거의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스’는 이런 서양 공포영화의 관습에서 벗어나 참신한 공포를 이끌어낸다. 관객이 그 어떤 예상을 하고 상영관에 들어가도 그 예측을 무참하게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어스’의 참신함은 돋보인다.      


‘어스’를 100% 즐기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리뷰도 읽지 말고 극장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심지어 이 리뷰조차도 읽지 않고 해당 영화에 대한 정보 하나 없이 관람하는 것이 가장 좋은 관람 방법이다.


미디어스 (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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