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가 아닌 빌런, 안티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 ‘조커’가 개봉 전부터 한국 관객의 호기심을 잔뜩 부추기고 있다. 왜일까. 서구 평단에서 호평을 받은 것도 모자라 코믹스 영화로는 처음으로 제 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히어로 영화에 열광하는 대중이 반기는 영화는 DC보단 마블에서 제공하는 히어로물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DC는 ‘저스티스 리그’ 같은 수많은 파울을 양산해도 ‘다크 나이트’ 같은 걸출한 홈런을 날리는 경우가 가뭄에 콩나듯 발생한다.
이번 ‘조커’도 다르지 않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같은 몇 편의 망작 끝에 피어난 홈런이 ‘조커’다. 본 리뷰는 선한 사람이던 아서가 어떻게 악의 화신 조커로 탈바꿈하게 됐는가 하는 점을 집중적으로 조망하겠다. 단, 스포일러가 될만한 사안은 최대한 애매하게 표현하거나, 분석 자체를 피했음을 밝힌다.
1.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할 때의 역설
‘조커’는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택했을 때 따르는 비극을 묘사한다. 대다수의 자기계발서는 많은 경우에 있어 직업을 선택할 때 ‘하고 싶은 일’을 택하라는 조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조커로 변하기 전의 아서(호아킨 피닉스 분)는 코미디언이란 직업으로 남을 웃기고 즐겁게 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런데 코미디언의 꿈을 가진 아서에겐 문제가 있었다. 웃음의 언밸런스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웃는 것도 모자라 남들이 어떤 타이밍에서 어떤 말을 들을 때 웃는가를 알아채는 공감 능력이 아서에겐 없다. 그렇다고 아서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잘 나가는 코미디언의 개그를 메모하는 방식으로 본인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아서는 결정적으로 타인의 웃음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결국은 조커라는 악의 화신으로 돌변하고 만다. 만일 아서가 하고 싶은 일보다 ‘잘 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다면 아서가 조커로 변할 확률은 낮아졌을지도 모른다.
2. 홍길동 컴플렉스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흔히 갖는 몽상 가운데 하나는, 나의 아버지는 부유하거나 잘 나가는 재력가이지만 병원에서 간호사의 실수로 진짜 부모가 바뀌는 바람에 지금의 처지가 됐다고 착각하는 경우다.
여기서 아서의 ‘홍길동 콤플렉스’가 태동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상황을 ‘홍길동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아서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가 아닐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홍길동 콤플렉스’를 갖는다. 여기에서 형성된 자의식은 진실을 왜곡한다. 비뚤어진 ‘홍길동 콤플렉스’ 역시 아서가 조커로 변모하는 데 있어 한몫한다.
3. ‘기울어진 운동장’ 피해 심리, 범죄자를 영웅으로 숭앙해
아서가 조커로 변모할 수 있는 점 가운데서 주목할 점은 선한 사람이던 아서가 악인으로 변모한다는 ‘개인적인 층위’로서의 돌변이 다가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고담시에 사는 시민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다면 지하철에서 일어난 비운의 사건에 애도를 표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사건은 애도를 표하기보단 경제적 빈자의 분노를 촉발하는 방아쇠로 작용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없었다면 아서의 일탈은 한 개인의 일탈에만 그치고, 아서를 향한 법 집행이라는 사회적 응징을 통해 아서가 조커로 변할 확률은 극히 낮았을 것이다. 아서가 조커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아서라는 개인의 일탈이 고담시의 경제적 빈자들과 어떤 방식으로 순환을 이루는가 하는 점에 있다.
아서가 조커로 변신할 수 있었던 중요한 사실 가운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점은 고담의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 덕에 ‘가이 포크스’와 같은 안티 히어로적인 아이콘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 개인의 일탈이 사회적 분노의 방아쇠가 되고,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처벌받아야 마땅한 지하철의 범죄자는 ‘가이 포크스’처럼 추앙받는다. 영화 ‘조커’의 피에로라는 아이콘은 ‘가이 포크스’를 형상화한 마스크처럼 경제적 빈자의 아이콘으로 격상된다.
사회적으로 징벌받아 마땅한 범죄자가 경제적 빈자의 아이콘이 되는 역설은, 고담시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횡횡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역설이다. 개인의 일탈이 경제적 빈자를 통해 사회 전반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조커의 영웅화는 불가능하다.
경제적 빈자라는 고담시의 대중은 지하철에서 일어난 비극을 통해 고담시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을 환기한다. 이들이 폭동이라는 분노의 방아쇠를 당기고, 영화 ‘조커’ 속 경제적 빈자의 폭동은 21세기 현대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경제적 불평등을 환기할 수 있는 우로보로스(자기 꼬리를 물고 원형을 이루는 뱀의 모양)적 영화 속 순환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 P.S: 영화 ‘조커’ 이후 이후의 영화를 DC가 추가로 제작한다면, 선인에서 악인으로 탈바꿈한 조커가 어떻게 사회적 ‘아노미’를 부추길 수 있게 됐나 하는 ‘모티브’, ‘동기’를 갖게 되는가를 워너브러더스의 대본가들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거대한 돈뭉치에 불을 붙이는 식으로 경제적 이득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사회적 불안정을 촉발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영화 ‘조커’를 통해선 히스 레저가 연기한 ‘다크 나이트’ 속 조커처럼 조커가 사회적 아노미에 관심을 기울일 만한 심리적 동인은 아직까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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