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의 연속이다. 분명 한국에서 만든 블록버스터임에도 독창적으로 보이기보단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나 설정이 연이어 나타난다. 내가 한국 블록버스터를 본 건지, 아니면 과거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다시 본 건가 헷갈릴 정도다.
첫 번째로 기시감이 든 영환 존 쿠삭이 주연한 ‘2012’다. 북한에서 촉발한 백두산 화산 폭발은 북한의 재앙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북한만 초토화되는 게 아니라 남한의 중심인 서울 한복판도 백두산 화산 폭발의 영향권에 든다.
백두산 화산이 처음으로 폭발할 때 서울의 강남역이라고 무사하지 않았다. 조인창(하정우 분) 대위가 도로에서 필사적으로 드라이브를 펼칠 때 그의 뒤로는 백두산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강남역 주변 대로가 주저앉는다.
바로 이 장면, 조인창이 강남역에서 질주하는 장면은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와 오버랩한다. 존 쿠삭이 도로를 질주할 때 그가 지나간 길이 모두 가라앉는 것과, 조인창이 질주하자마자 그가 지난 모든 길이 가라앉는 장면은 국적과 주인공만 바뀌었을 뿐 설정 자체가 똑같이 느껴질 정도로 진부하다.
두 번째로,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창(이변헌 분)은 조인창 및 한국 부대원에게 고분고분한 인물이 아니다. 아군인가 아니면 이중 스파이인가를 헷갈리게 만드는 인물이다. 이 설정 역시 새로운 설정이 아니다.
숀 코네리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더 록’은 FBI 생화학 무기 전문가를 연기한 니콜라스 케이지와 영국 SAS 정보장교 숀 코네리가, 작전을 수행하는 FBI와 포로라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호적 관계가 아닌 적대적 관계자와 동반관계를 맺는다는 ‘백두산’ 속 하정우와 이병헌의 관계는 ‘더 록’의 손 코네리와 니콜라스 케이지와의 동반관계를 연상하게 만든다.
백두산 화산 폭발이 무서운 건 한반도를 초토화한 폭발이 1차 폭발이 다가 아니란 점이다. 4차 폭발까지 일어나면 북한은 물론 남한도 잿더미로 변할 상황. 백두산의 4차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해 기폭장치를 들고 백두산에 인접한 갱도에 접근한다는 설정 또한 새롭지 않다.
밀레니엄이 다가오기 전, 할리우드는 지구로 다가오는 소행성을 막기 위해 이를 파괴하는 임무를 갖고 소행성에 접근한다는 설정을 가진 영화를 두 개나 쏟아냈다.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다.
백두산 화산 폭발을 저지하기 위해 기폭장치를 갖고 찾아간다는 설정 역시 이미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의 설정에 빚진다. ‘백두산’을 보노라면 한국 블록버스터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10년도 더 된 옛 할리우드 영화를 다시 감상하는 것인가를 헷갈리게 할 정도로 ‘백두산’은 온갖 판박이 설정으로 뒤범벅이 된 ‘클리셰 비빔밥’ 블록버스터다.
더불어 이 영화는 정재균과 신하균이 주연한 '웰컴 투 동막골'의 연장선에 서있다. '웰컴 투 동막골'이 가졌던 미국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라는 패턴이 '백두산'에서도 전작권을 행사하는 장면에서 반복돼 나타난다. '스윙키즈'를 비롯한 일련의 한국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은 대체 언제쯤이 되어서야 미국에 대한 적대적 태도 혹은 악마화를 배제할수 있을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