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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속 의인의 목소리에 주목해야 할 이유

* 해당 기사는 드라마의 일부 내용이 있습니다.     


작년 연말, 왓챠는 이용자 기준으로 가장 많은 별점을 받은 드라마 1위가 ‘체르노빌’이라고 밝혔다. 왓챠 이용자들이 ‘체르노빌’에 부여한 별점은 4.7. ‘체르노빌’의 기록은 왓챠에서 세운 기록이 다가 아니다. 에미상 시상식에선 미니시리즈 부문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등 10개 부문,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HBO 드라마가 ‘체르노빌’이다.     


‘체르노빌’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아님에도 이를 수습하기 위해 위험한 현장에 뛰어드는 광부들, 방사능에 피폭당하는 바람에 사람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육체가 망가져가는 소방관 남편의 곁을 지키는 아내의 순애보, 자신이 내린 잘못된 결정 때문에 수많은 사상자를 냈음에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원자력 발전소 수석 기술자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들 가운데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아우렐리우스 황제 역할을 맡았던 영국 배우 자레드 해리스가 연기하는 발레리 레가소프다. 드라마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를 관통하는 인물인 레가소프는 구 소련의 숨막히는 관료주의 가운데서 과학자로서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드라마 속 주인공 격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체르노빌’에서 관객이 감정이입해 보기 좋은 인물은 세 명으로 압축된다. 레가소프 외에도 스웨덴 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연기하는 소련 연료동력부 장관 보리스 셰르비나, 핵 물리학자 호뮤크 세 명이다.      


이 셋 중 레가소프를 주인공으로 볼 법한 이유는 무얼까. 셰르비나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초창기 때 관료회의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레가소프가 아니었다면 셰르비나 역시 소련의 관료주의에 함몰될 뻔한 인물이고, 호뮤크는 드라마에서 레가소프나 셰르비나와 달리 실존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폭발 사고가 일어난 당시는 지금과 같은 우크라이나가 아닌 소비에트 연합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적국인 미국과 경쟁하고 있던 소련으로서는 자국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가 적국인 미국을 비롯하여 자유주의 세계에 퍼지는 걸 매우 경계하고 있던 때였다.      

적극적인 재난 대처보단 통제를 통해 서방 세계에 체르노빌의 참상이 알려지는 것을, 소련의 원자력 기술에 결함이 있다는 치부가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런 소련의 사회적인 분위기 앞에서 호뮤크를 비롯한 레가노프 같은 소신 있는 과학자가 소련 관료들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소신 있게 펼친다는 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레가노프가 갖고 있던 사회적 지위와 평판, 가족과 친구들의 안위가 레가노프의 말 한 마디에 따라 180도 뒤집어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배하던 소련이란 배경을 참작하면, 6회에서 레가노프가 숙청될 수도 있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과학적 신념을 피력한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를 수도 있는 위험 가운데서도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소련 원자로에 내재한 결함을 지적하는 레가노프의 실화는, ‘체르노빌’이라는 드라마가 원전 참사가 일어나고 이를 극복하는 면만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서서 소련 체제의 겁박과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원전 시스템의 결함을 지적할 줄 아는 의인의 소신도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일 내가 레가노프라면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소련 당국에 바른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를 관객에게 던지면서 말이다.     

하나 더, 많은 대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선 불합리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주인공이나 의인에겐 특진과 같은 보상이 따라왔다. 하지만 가상의 세계가 아닌 진짜 현실에서 레가노프처럼 바른 말을 하면 어떤 부당한 조치가 내려지는가를 드라마 ‘체르노빌’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진짜 세상에선 체르노빌과 같은 참사가 재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련 원전의 시스템적 결함을 지적한 의인에게 보상 대신 냉혹한 징계가 따랐단 사실을 가감 없이 전달한 드라마 속 연출은, 불합리한 시스템을 바꾸고자 하는 정의가 현실에서 구현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시청자에게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체르노빌’이 다른 드라마와 영화완 달리 리얼리티를 얼마나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체르노빌’의 유일한 단점은 6회 마지막에서 보여주는 해설이다. ‘체르노빌’ 해설은 실존 인물이 극 이후 어떤 인생 여정을 겪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실존 인물의 영상과 이를 연기한 배우를 동시에 보여줬다면 드라마 속 인물이 어느 실존인물이었는가를 이해하는데 있어 좀 더 친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스 (사진: 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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