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김용림 씨와 아들의 2인극 도전은 '모전자전'
드라마 대사를 빨리 외우기로 소문이 난 배우 가운데 하나가 연기자 남성진이다. 그런데도 그로 하여금 대본 암기에 있어 큰 좌절을 안겨주는 공연이 있다. 바로 그가 출연하는 <웃음의 대학>이다. 전화번호부 반 권 가까이 되는 ‘어마무시한’ 대본 분량 때문에 전작에 출연한 서현철에게 조언을 구하니 “시험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구겨 넣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웃음의 대학>에서 남성진이 연기하는 검열관은 웃음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모든 공연에서 웃음기를 없애려고 혈안이 되어 검열을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다. 어느 작가의 연극 대본 가운데서 웃음기를 없애려고 작정하다가 도리어 뜯어고치기 전보다 대본이 더욱 재미있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니 말이다. 못 말리는 검열관을 연기하는 남성진을 비가 질척하게 내리는 대학로에서 만났다.
-얼굴만 보면 정극에만 출연할 것 같은데, 숨겨진 코미디 DNA를 찾기 위해 <웃음의 대학>에 출연했나.
“제가 연기하는 검열관이라는 역할은 코미디를 전문적으로 연기한 분이 하면 재미가 덜할 수도 있다. 얼굴은 진지해 보이는데 의외의 상황에서 웃길 때 재미가 더해진다. 초중반까지는 검열관이 어이없는 부분에서 웃기는 장면이 많다. ‘남성진이 얼마나 웃길까’를 기대하며 오는 분도 있을 거다. 정극에 어울리는 마스크와는 걸맞지 않게 망가지는 장면도 많아서 의외의 웃음을 안겨 드릴 것이다.”
-검열관이 틀니를 끼고 연기하는 장면은 검열관만의 ‘코믹 전매 특허’나 다름없어 보이는데.
“틀니를 끼면 침이 많이 고인다. 그러다가 틀니를 빼면 본의 아니게 침이 무대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침이 뚝뚝 떨어질 때 상대 배우도 짜증 날 것이다.(웃음) 틀니뿐만 아니라 대머리 가발도 중요한 웃음 포인트다. 그동안 웃기는 연기를 해오지 않다가 무대에서 웃기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이 큰 재미를 안겨줄 것이다. 만일 틀니를 끼는 등 망가지는 역할을 두려워했다면 코미디에 도전하지도 않았을 거다.”
-작년에 연극 <이바노프>로 5년 만에 무대로 복귀했다.
“매년 연극 무대에 서지 못할 뿐이지 연극에 대한 갈망이 항상 있다. 드라마를 하느라 스케줄을 핑계로 무대에 서지 못한 탓도 있다. 무대는 드라마와 달리 즉각 반응이 온다. 그럴 때 배우는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이런 쾌감은 카메라 앞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쾌감이다.
작년에 공연한 <이바노프>는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가 초창기에 저술한 작품이다. 저 역시 러시아에 잠깐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유학 생활에서 배웠던 체호프에 대한 아련함이 작년에 무대로 돌아오게 만드는 ‘회귀 본능’으로 작용하게 만들었다.
정극을 할 때는 ‘왜 연극을 한다고 했을까’ 하는 잠시 동안의 후회가 있지만, 정극을 소화하면 플러스가 되면 됐지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 연기자는 꾸준히 연기하는 게 중요하다. 드라마는 실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을 연기할 때가 많다.
하지만 연극은 카메라에서 보여주지 못한 캐릭터를 연기로 만들어서 보여드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대 작업은 연기 내공을 쌓는 데 있어 큰 도움을 제공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할 때 연극을 하면 큰 각성을 받는다.”
- 아들만 5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 김용림 씨도 연극 <잘자요, 엄마>로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잘자요, 엄마>는 어머니가 젊었을 때 했던 공연이다. 당시는 <나이트 마더>라는 제목으로 윤석화 선배님이 공연하던 연극이었다. 어머니가 연세가 많은데다가 2인극이라 어머니가 체력적으로 무리하는 게 아닐까 염려했다. 하지만 연령대로만 보면 윤석화 선배님과 공연하던 때보다는 지금이 더 잘 맞았다. 예전 초연보다 원숙한 엄마의 모습이 묻어나는 걸 올 여름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무대에서 연기하는 걸 보며 연기자는 연기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에 맞게 연기하는 것도 중요하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달았다. 무대에서 열연하는 걸 보면서 자식 입장에서 짠했다. 마침 어머니 공연이 끝날 무렵에 <웃음의 대학> 섭외가 들어왔다. 분장실에서 어머니에게 ‘연극 또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또 무슨 연극을 하니’ 하며 깜짝 놀라셨다.
어머니가 2인극을 하셔서 2인극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데 아들이 2인극을 한다니 깜짝 놀라신 거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기로 왕성하게 활동하시니 부모님에게 누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연기하는 가운데서 힘을 얻는다. ‘아들의 잘하는 모습을 부모님에게 보여드려야겠구나’ 하는 욕심이 절로 생긴다.”
-“연기자에게 있어 연기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업”이라는 이야기를 아버지 남일우 씨가 한 적이 있다.
“아버지의 말씀에 100% 공감한다. 배우는 작품을 분석하고 사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생각을 하며 산다. 배우는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이게 연기의 정답이라는 해답이 없다. 죽기 전까지 연기를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가 중요하다.
만일 ‘이 역할은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 하고 막연하게 접근했다가는 낭패를 당한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걸 끄집어낼 줄 알아야 한다. 관객이 볼 때 ‘이 인물은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걸 납득시키고 공감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그러려면 수많은 인간 군상을 공부해야 한다. 연기자는 책도 많이 읽고 작품도 많이 보고, 다른 분야의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길거리에서 무심코 지나가는 말 한 마디도 유심히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연기하면서 언제 그 상황을 대입할지 모르니까.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재미가 없으면 못한다. 사람을 관찰하는 가운데서 재미를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채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 연기자는 잘 비울 줄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