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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팔이’배해선  “몇천 번 대사 연습"

지금처럼 황 간호사가 화제를 일으킬 줄 알았다면 출연 망설였을 것

“황 간호사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겁도 나고, 자신도 없었다” 이 말을 한 이가 다른 배우도 아닌, <용팔이>에서 ‘신 스틸러’로 실시간 검색어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배해선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대중에게는 낯선 얼굴일지 모르지만, 1995년부터 20년 동안 뮤지컬과 연극을 넘나들며 활동한 ‘뮤지컬계 뮤즈’가 바로 배해선. 무대 경력이 20년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없었다’는 멘트는 지나친 겸손이 아닌가 해서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가 TV에서 신 스틸러로 단번에 주목받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사례에 속한다. 지금은 TV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배우도 데뷔 초창기 때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배우들이 수두룩하기에 그렇다.


배해선은 달랐다. 나오자마자 신데렐라로 등극한 아주 이례적인 배우라서 그렇다. 하지만 그가 실시간 검색어로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기까지에는, 이십 대 당시 하루에 잠을 두세 시간 자며 연기에 몰입한 연기 경력 이십 년의 내공이 뒷받침된 것이라는 걸 이번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제작진이 황 간호사 역을 물색할 때, 왜 낯익은 배우가 아닌 새로운 얼굴의 배우를 찾으려고 했을까?                                                                                    

“제작진 중 한 분이 제가 출연한 연극 <그을린 사랑>을 보았다고 한다. 제가 하는 연기를 보고는 ‘저 배우를 나중에 자신이 하는 작품에서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배역이 생기면 제안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용팔이> 배우를 캐스팅할 때 황 간호사 배역을 누구에게 맡기면 좋을까 하고 고민해 보니, 잠깐밖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극의 분위기를 잡아줄 줄 아는 배우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여배우가 황 간호사 역을 탐냈다고 하더라. 무대에서 활동한 배우 중 브라운관이나 영화에 나오지 않은 신선한 배우를 물색하던 중에 제 이름이 거론되었다.”


- 황 간호사가 센 역할이라 제의가 들어왔을 때 고사할 생각은 없었는가.

“처음에는 황 간호사 배역이 그렇게까지 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황 간호사가 센세이션을 일으킬 줄 알았다면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더 많이 망설였을 것이다. 황 간호사가 사이코패스라는 것, 가늠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수위가 셀 줄은 몰랐다.(웃음)


기존 했던 연기를 드라마에서 하면 좋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촬영했다. 하지만 황 간호사 역할을 연기하는 걸 ‘기회’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친구는 물론 가족에게조차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촬영했다.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건 처음이라 주위 사람들이 제가 <용팔이>에 출연한다는 걸 모르고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황 간호사라는 캐릭터의 밀도를 많이 살려주신 것 같다.”

- 수백 번 인터뷰를 진행해보았지만, 드라마에 첫 출연했을 때 뮤지컬 배우가 이토록 강렬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배해선 씨가 유일무이하다.

         

“한창 촬영 중이라 2회 방송을 못 보았다. 대중의 반응이 어떤지조차 모르고 촬영하고 있었을 때 지인들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로 제 이름이 순위에 떠오르는 걸 보고 캡처해 보내주었다. ‘배해선 누구야?’ ‘황 간호사 신 스틸러’ 식으로  궁금해하는 반응이 많이 올라왔다.


누가 저를 극단적으로 칭찬하는 걸 잘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이렇게 연기를 바꿔 볼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게 배역에만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그동안 무대에서 여주인공 역을 많이 연기해왔다. 황 간호사를 할 때는 여주인공이었던 스타일을 놓고 싶었다.


김태희 씨 옆에 있으면 아름다운 건 포기해야 한다. 겉모습으로만 보아서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람이지만, 김태희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자신의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날 수 있는 양날의 칼 같은 캐릭터로 접근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캐릭터에 접근했다.                                                                                                                                                                                                                                              

고상하고 냉정한 여자지만 어글리 한 내면을 가진 황 간호사를 연기할 때, 지인들은 ‘너무 안 예쁘게 나왔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분은 ‘연기도 기분 나쁘지만 생긴 것도 기분 나쁘게 생겼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욕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도 생각해주는구나’하고 반색했다.


황 간호사로 몰입해서 보여드렸기 때문에 시청자가 섬뜩하다고 느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서다. 첫 드라마라 제가 바라는 만큼 연기를 할 수 없었음에도 촬영하는 매 순간 집중했던 게 시청자들에게 와 닿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 드라마 이후 거리에서 사람들이 배해선 씨를 알아보는가?

“유심히 저를 보기는 하는데 ‘설마...’하는 반응이다. 평소에는 잘 웃는 스타일이다. 싸늘한 드라마 속 이미지와는 달라서 대놓고 ‘황 간호사 맞죠?’하는 분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알아보는 분들이 있다.


머리를 풀면 저를 못 알아본다. 그런데 공연 연습을 위해서는 머리를 묶을 때가 많다. 머리를 묶고 다니면 ‘야, (황 간호사가) 맞는 거 같아’하는 반응이 나온다. 공연을 위해 경주 불국사로 내려간 적이 있다. 불국사에는 단체 관광객이 많다. 그때 저를 알아보시는 분도 많았다.”


- 20대와 30대, 40대를 관통하며 십 년 단위로 연기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나?

“젊을 때에는 스스로를 치열하게 몰아붙였다. 저 자신은 몰랐는데 완벽주의자처럼 연기했다고 주변 사람들이 그러더라. 저 자신이 한창 부족하다는 걸 아니까 무대에서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되고, 연습할 때에도 완벽해야 하고, 주변 사람을 만날 때에도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하려고 노력했다.”                                                                        

                                                                                                                                                                   -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추구한 나이대가 이십 대였나?                                                                                    

“삼십 대 초반까지 그랬다. 이십 대에는 부모님이, 특히 아버지가 배우를 하는 걸 무척 반대했다.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잠자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보냈다. 연기를 반대하는 아버지 몰래 집에 들어가 도둑잠을 자며, 아버지가 일어나기 전에 깨서 도망 나오다시피 하며 연기했다.


당시에는 연기 외의 다른 직업을 바꾸고 싶어도 겁이 났다. 거꾸러져서 못할 때까지 연기를 해보자는 신념으로 독기를 품고 연기했다. 다른 배우들은 저보다 재능이 많아 보이는 반면에, 저는 연기에 대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연기한 것도 있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남보다 덜 자고, 연습장에 일찍 나와서 늦게 들어갔다.

연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연기에 몰두하고 노력한 점도 있다. 만약 연습실에서 음 하나, 대사 하나가 풀리지 않으면 집에 가서 잠을 줄여가며 몇 천 번을 연습했다. 피곤하지만 지치는 줄 몰랐다. 절박했고 제가 하는 연기가 너무 좋았다. 남들과 똑같이 하면서 연기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다, 그러면 안 된다고 저를 몰아붙이며 지낸 게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초반까지다. 마지막 순간에 무대에서 쓰러져 하늘나라로 가고 싶었던 게 제 꿈이었다.


연기의 정상을 향해 달린 게 아니라, 저 자신이 달릴 수 있는 연기라는 평지의 끝까지 달리고 싶었던 거다. 열심히 연기하다 보니 좋은 작품이란 기회가 찾아오고, 연기의 전환점이 될 때마다 신시컴퍼니 박명성, 돌꽃컴퍼니 윤석화, 에이콤인터내셔널 윤호진, 박정자 선생님 등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났다.


뮤지컬 배우로 각인될 수 있는 시기를 선물해주신 분들이다. <맘마미아>를 통해 사랑받고 <아이다>를 통해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될 수 있었다. 사실 뮤지컬로 데뷔한 게 아니다. 연극으로 무대 데뷔를 했다. 연극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연극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복이다.”

            

- 연기 전환점을 삼십 대 초반으로 구분했다면, 삼십 대 중반부터는 다른 연기 철학을 가졌다는 이야기인데.

“삼십 대 초반까지는 주변 사람들이 ‘제발 쉬어라’라고 권유할 정도였다. 하루도 쉬지 않았고, 심지어는 연습실에서 다른 배우들이 쉬는 시간에도 계속 연습했으니까. ‘지치는 게 뭐야?’ 할 정도로 저를 지나치게 밀어붙였다.

그러다가 삼십 대 초반을 넘기면서 ‘연기라는 꿈을 충분히 누려왔지만 내가 갖고 있는 카드가 내 카드가 아니라 다른 카드가 내 카드면 어떡할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십 대까지만 해도 내가 가져야 할 카드가 연기가 아니라 다른 카드라고 한다면, 제 인생이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 것 같다.


이십 대에는 일 년 계획과 5년 계획, 십 년 계획 등 앞으로 해나갈 일들을 빼곡하게 계획하고 살아왔다면 삼십 대 초반을 넘어서서부터는 빼곡한 계획과 타이트한 연습에서 벗어나서 저 자신을 많이 풀어주었다. 삼십 대 중반에서 지금까지는 제 인생도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도 재미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이 제 눈에 보이기 시작해서 가능했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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