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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 지리산 산군이 조선인보다 일본군을 징벌한 이유

아감벤과 오비디우스로 ‘대호’를 보니

영화나 공연 작품을 분석할 때 심오한 분석을 바라고자 한다면 분석하는 사람에게는 쉐마, 심리학으로 보면 도식의 틀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가령 <매트릭스> 같은 영화를 분석할 때엔 우리가 자각하는 것이 진짜 현실일까에 관한 관념적인 분석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대개의 상업영화를 보면 심오한 도식의 틀이 필요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시뮬라크르나 라캉의 정신분석 등으로 분석할 만한 상업영화는 가뭄에 콩 나듯 아주 가끔 보이기에 말이다.      

대개의 상업영화는 개봉 전 <도리화가>를 분석했을 때처럼 서사의 개연성을 보고 플롯의 미흡한 부분을 지적할 때가 많았지만 <대호> 같은 경우는 특별한 상업영화에 속한다. 상업영화임에도 조르조 아감벤, 혹은 오비디우스라는 쉐마로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기에 그렇다.      


<대호>에서 산군(山君), 인간에게 사냥당하지 않은 마지막 지리산 호랑이 ‘대호’는 잡기만 하면 집 한 채에 버금가는 상금을 받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동물이다. 하지만 조선 최고의 명포수인 천만덕(최민식 분)은 물질적인 가치로서는 대단한 대호를 사냥하려 들지 않는다. 왜일까. 대호는 덩치 큰 호랑이를 넘어서서 산군으로 추앙받는 존재다. 조선에서 마지막 남은 호랑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시튼 동물기>의 늑대왕 로보처럼 사람 못잖은 지능을 가진 ‘영물’이다.      


대호에게 ‘산의 군주’, 산군이라는 호칭이 붙는 건 지리산에서 가장 큰 육식동물이라는 존재를 넘어서서 영물, 인간에게 속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아감벤의 관점으로 본다면 대호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존재에 해당한다. 천만덕이 대호를 사냥하려 들지 않는 건 성스러운 존재를 인간의 영역으로 포획하려 들지 않는 ‘종교’적인 태도에 다름 아니다. 포수라는 인간의 영역과 대호라는 성스러운 영역이 철저하게 분리된다.      

하지만 천만덕과는 반대로 일본 군관 마에조노(오스기 렌 분)는 어떻게든 대호를 사냥하려고 든다. 대호를 지리산의 영물로 그냥 놓아두고 종교적인 태도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귀국하기 전에 대호를 전리품으로 삼으려고 든다. 만일 대호가 마에조노의 전리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면 대호는 성스러운 지위를 박탈당한 채 인간의 전리품으로 귀속되는. 성스러운 동물이 인간이라는 속세에 귀속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대호를 영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인간의 전리품으로 포획하기를 바라는 마에조노의 태도를 아감벤의 관점으로 본다면 ‘세속화’로 볼 수 있다. 거룩한 것을 거룩한 것으로 놓아두지 않고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들임으로 말미암아 성과 속이 ‘분리’된 것을 어떻게든 허물려고 드는 태도가 마에조노의 태도, 세속화의 태도인 셈이다. 대호를 사냥하려 들지 않는 천만덕의 ‘종교’적인 세계관은, 어떻게든 대호를 사냥하려고 달려드는 마에조노의 ‘세속화’라는 세계관과 정면으로 대조를 이룬다.     


마에조노의 이러한 태도를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대입한다면 ‘철의 시대’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변신 이야기>에서 가장 하등한 세계관으로 판정되는 철의 시대는 인간의 악덕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세상을 판치는 시대다. <대호>에서 마에조노가 추구하는 세계관은 조선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착취, 억압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대호를 사냥하기 위해 조선의 포수들을 도구화하는 인간 소외가 벌어지는 세상이기도 하다.      

영화 후반부에서 대호가 조선 사람보다 일본군을 물어뜯는 빈도가 많다는 건,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일제 식민지라는 타락의 세계관을 응징하는 자연의 심판으로 바라볼 수 있다. 동시에 인간에게 포획당하는 세속화에 맞서는 성스러운 동물 대호의 몸부림으로 해석 가능한 영화가 <대호>기에 <대호>는 상업영화로서는 독특하게 아감벤과 오비디우스로도 해석이 가능한 특별한 위치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영화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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