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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벌새효과 흥미롭지만 캐스팅은 아쉬워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인 인물을 뮤지컬로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그 인물이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면 외국 관객이 감정이입하도록 만들고자 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비극의 강화’다.      


예를 들어 보겠다. 오스트리아의 왕비 ‘엘리자벳’처럼 비록 외형적으로는 왕비라는 완벽한 입지를 구축했음에도 간섭을 좋아하는 시어머니와의 불화, 남편에게 몹쓸 성병까지 옮고 마는 비극적인 결혼 생활로 말미암아 죽음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실존 인물을 뮤지컬로 되살리되 비극성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황태자 루돌프’ 역시 애정 없는 결혼과 ‘아버지의 법’ 앞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죽음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비극이 한국 관객을 사로잡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황태자 루돌프’에는 비극만 담겨 있지 않다. 비록 어긋난 사랑일지언정 ‘사랑’이 비극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부재한 사랑 혹은 미처 이루지 못한 사랑 등의 형식으로 사랑이 비극을 강화하고 숭고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오늘 소개하는 ‘나폴레옹’ 역시 ‘황태자 루돌프’처럼 에스파냐에서 폴란드까지 넓은 유럽을 호령했지만 조세핀과의 ‘사랑’ 앞에서는 유난히 작아지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연대기를 세 시간 가까이 압축해서 표현한다. 뮤지컬 ‘나폴레옹’은 프랑스 버전 ‘사랑과 야망’이다. 흙수저 출신 촌뜨기 군인이 가장 영광스러운 황제의 자리까지 등극하는 1막이 흙수저의 출세담이라면 2막은 황제라는 영광이 기울어지는 늘그막의 황제를 묘사한다.      


‘나폴레옹’이 흥미로운 건 2막이다. 2막이 흥미로운 건 하나의 사건이 전혀 다른 사건으로 파급되는 ‘벌새효과(hummingbird Effect)’를 관찰할 수 있기에 그렇다. 나폴레옹이 몰락하는 계기를 뮤지컬은 나폴레옹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인 조세핀으로부터 기인하여 묘사한다. 어떻게 황제의 여자가 러시아 원정을 실패로 이끄는 도화선이 될 수 있을까. 조세핀이 나폴레옹의 몰락과 맞닿는 벌새효과와 관련된다고 언급한다면 의아할 독자가 많을 터.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를 집필한 스티브 존슨은 6가지 발견 가운데 하나로 종교개혁이 렌즈 산업의 발달을 불러 일으켰다고 언급한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성경이 독일어로 보급되자 성경을 읽을 때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독자는 안경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안경을 찾는 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다양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렌즈 산업은 발달할 수밖에 없는 법. 종교개혁과 렌즈의 발달이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변혁은 벌새효과 안에서 긴밀히 연결된다.     


다시 ‘나폴레옹’으로 돌아와 보면 우리가 아는 나폴레옹의 몰락은 러시아 원정의 실패 때문이다. 뮤지컬은 2막 이후 조세핀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조세핀이 불임이 된 원인 제공자를 나폴레옹이 쫓아내고, 나폴레옹이 쫓아낸 인물은 나폴레옹에게 원한을 품고 프랑스의 적국인 러시아의 밀정 역할을 함으로 나폴레옹이 질 수밖에 없었음을 벌새효과로 관객에게 설득시킨다.      


러시아 패배와 조세핀이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벌새효과로 보면 긴밀하게 맞물리고 있음을 뮤지컬은 2막에서 흥미롭게 제시하고 있다. 책이 아닌 무대 위에서 벌새효과를 체험하고픈 관객이라면 ‘나폴레옹’의 2막을 유심히 관찰해 보라.    

 

강홍석은 ‘킹키부츠’에서 보여준 무대 장악 능력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넘버와 하나 되어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하는 걸 보고 있으면 절로 찬사를 보내게 된다. 반면 같은 소속사인 홍서영은 아직은 대극장 히로인으로 무대에 오르기엔 상당히 버거워 보였다.      


트리플 캐스팅 가운데 한 명인 박혜나처럼 차근차근 배역을 밟고 난 다음에 대극장 주연 배우로 섰으면 좋았겠지만 홍서영은 상대 배우와의 연기와 넘버 처리를 맞추는 합을 맞추는 노력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했다. 같은 소속사 선배인 정선아에게 한창 배워야 할 정도로 밸런스도 불안정하다. 대극장 여주인공의 불완전한 연기와 노래를 감상하기 위해 14만원이라는 거금을 관객이 지불해야 할 필요는 없다.     


미디어스

사진: 쇼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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