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인 제작발표회 당시부터 일본 기자가 류승완 감독에게 예민하게 질문한 점, 이슈몰이, 소지섭과 송중기라는 톱스타의 출연이라는 화제성으로 천만 고지는 무난하게 달성할 줄 알았지만 개봉 2주차에 접어들면서부터 손익분기점(700만 관객)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린 영화가 있다. 어쩌다 ‘군함도’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첫 번째 원인은 고질적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다. 개봉 당일 ‘군함도’를 내건 스크린 수만 해도 이천 개가 넘었으니 ‘군함도’ 개봉 첫 주 당시 상영관의 둘 중 하나는 ‘군함도’를 내건 셈이 되어버렸다. 이 문제는 다른 매체에서 상당 부분 다뤘으니 이번 기사에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겠다.
두 번째는 일제에게 수탈당한 징용자의 비참한 실상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라 400여 명의 징용자가 집단 탈주하는 ‘액션 엑소더스’가 되고 만 류 감독의 연출 기획 의도다. 가상으로나마 징용자들이 한 맺힌 군함도를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고 류 감독은 이 영화의 기획 의도를 밝힌 적이 있다.
하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군함도의 억울한 징용자라는 소재는 배경일 뿐, 징용자에 대한 역사적인 한과 사연이 결여된 채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장르로 탈바꿈한 영화에 대한 관객의 성토가 이어지는 것이다.
군함도는 영화의 소재일 뿐, 징용자의 한 맺힌 사연이 영화를 이끌어갈 동력이 되는 테제로 긴밀하게 작용하지 못한 탓에 ‘군함도’는 일본 우익에게 비판거리를 제공한다. 일본의 우익 매체 가운데 하나인 산케이에게는 ‘군함도’에 대해 역사적 사실이 부재한 영화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영화가 아니라고 일축하기까지 한다.
만일 ‘군함도’를 묘사함에 있어 대규모 엑소더스 대신에 징용자의 사연이 역사적 팩트와 밀착되는 연출을 유기적으로 시도했다면 일본 우익으로부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영화가 아니라는 빈축을 우리가 당하는 대신에, 되레 우리가 일본이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재시킬 당시만 해도 강제 징용과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명기하라는 유네스코 준수 사항을 왜 일본은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는가 하는 ‘팩트 반격’을 일본 우익에게 정교하게 펼 수 있지 않았을까.
류 감독의 이런 방법론적 묘사가 대중에게 먹히지 않은 건 나란히 개봉한 ‘덩케르크’ 식 묘사와도 확연히 비교되는 것도 있다. ‘덩케르크’는 주체적인 실체가 묘사되지 않는 독일군 앞에서 연합군이 어떤 방식으로 탈출하고 목숨을 부지했는가 하는 역사적 ‘팩트’가 중요하지, 연합군의 ‘영웅적인 활약’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반면 ‘군함도’는 역사적인 팩트를 오로지 ‘배경’으로만 삼는다. 소지섭과 송중기라는 영웅적인 인물의 활약이라는 ‘가공’이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축소시켜 버리고 마는 ‘군함도’의 왝더독(Wag the Dog)적인, 가상이라는 꼬리가 역사라는 몸통과 뒤바뀐 접근 방식 때문에 ‘덩케르크’와 비교당하고, 관객이 거부감을 갖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엑소더스 같은 대규모 탈주 장면에 들인 공의 일부라도 징용자의 사연을 보다 강화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큰 이유다.
세 번째로 ‘군함도’는 국뽕 논란을 피하기 위해 필자의 개봉 전 리뷰에서 살펴본 것처럼 조선인 징용자와 일본인이라는 선과 악의 이분법을 피한다. 악을 묘사함에 있어 일본이 다가 아니라 친일 부역자라는 하나의 층위를 덧입힌다.
한데 류 감독의 이런 삼분법적인 접근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동의를 자아내는 게 아니라 도리어 관객의 비호감을 이끌어내는 악수로 작용하고 말았다. 대중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감독의 작품 세계를 고집하는 작가주의적인 영화를 제작하지 않는 이상 조선인 부역자라는 악의 층위를 하나 더 늘렸을 때 대중이 가질 만한 반감이 얼마만큼 증폭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어야 했다.
인물의 층위를 묘사함에 있어 삼분법적인 접근 방식을 ‘폭격’으로 묘사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폭격 대상이 일본이라는 A 하나면 좋으련만 조선인 부역자라는 B에도 폭격을 가해야 한다면 그 폭격 작전은 당연히 목표물이 단일화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국뽕 논란을 피하려다가 된서리를 단단히 맞는 이유 중 중요한 점은 악을 묘사함에 있어 단일화가 아니라 조선인 부역자라는, 악의 묘사에 있어 ‘다양화’를 모색했다는 점이다.
정리해 보자. ‘군함도’가 역사적인 사실과 픽션의 주종관계가 그토록 심하게 역전되지만 않았어도 이 영화는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극우에 일침을 가할 수 있음과 더불어 국제적으로도 픽션이 아닌 ‘팩트’라는 진정성으로 일본의 만행을 만천하에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군함도’가 처한 현실은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폭로하기에 앞서, 국내에서는 천만 관객 달성 이전에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처지로 전락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설사 이 영화가 다행히 손익분기점을 넘어 천만 고지에 입성한다 해도 류 감독과 CJ엔터테인먼트는 역사적인 사실보다 픽션이라는 ‘왝더독’이 지나치게 앞설 때 관객의 동의를 이끌어내기보다는 감독의 올바른 영화 기획 의도마저 의심받을 수 있음을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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