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가 개봉하기 전에 필자는 리뷰를 통해 황정민의 뇌물이 왜 꼭 ‘춘화’였나를 언급한 바 있다. 대개의 영화에서라면 술이나 담배, 군인이 필요한 물품으로 뇌물을 묘사했겠지만 왜 하필 <군함도>는 조선인 노역자가 손수 그린 춘화가 뇌물로 작용했을까.
그냥 스쳐 지나갈 법한 시퀀스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이는 <군함도>의 각본을 집필한 두 사람 중 한 명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여성의 나신이 남성과 결합할 때의 성적 판타지가 술 담배 이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남성 우월주의적 시각을 보여주는 고약한 관점으로서의 뇌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여성을 눈요깃거리로 전락시키는 전략이 <군함도> 하나였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최근 개봉했거나 개봉 예정인 한국영화 가운데서 이런 문제점이 동시다발적으로 야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한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이전에도 여성의 신체 훼손이 눈요깃거리가 되는 사례는 <악마를 보았다> 등 많은 한국영화 가운데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한 시즌에 세 편 이상의 한국영화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여성의 신체가 훼손된 적은 드문 사례에 속한다.
맨 처음 지적할 영화는 23일 개봉예정작인 <브이아이피>다. 여성의 육체에 대한 사디즘적 가학이 최근 한국영화 가운데서 가장 고약한 사례에 속하기에 맨 처음 지적하는 거다. 이 영화에서 이종석이 연기한 광일은 기획 납북자이면서 동시에 연쇄살인마다. 광일은 그가 손발처럼 부리는 하수인들과 함께 북한에서 ‘아가씨 사냥’을 즐긴다.
길을 걷는 아가씨를 차로 납치해서 몹쓸 짓을 하다가 살려주면 다행이겠지만 광일은 몹쓸 일을 당한 여성 피해자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피투성이가 된 채 상반신을 고스란히 노출한 피해자는 광일의 손에 감긴 낚싯줄에 생을 마감하고 만다. <브이아이피>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악마를 보았다> 속 최민식이 이병헌의 약혼녀에게 저지른 사지 절단을 떠올릴 수 있는 건 <악마를 보았다>와 <브이아이피>의 각본가가 모두 박훈정 감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잔혹 스펙터클일까? 남성 관객을 위한 눈요깃거리? 아니면 남성 우월주의의 시각적인 현시를 위한 여성 신체의 과다 노출과 사디즘? 여성 육체 훼손에 대한 강도의 수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이종석이 연기하는 광일의 악마성이 극대화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런 불온한 시각이 <브이아이피> 하나면 다행이지만 이런 현상은 현재 4백만 관객동원 중인 강하늘, 박서준 주연의 <청년경찰> 속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청년경찰>은 장르가 <브이아이피> 같은 스릴러가 아닌 코미디다. 코미디라면 잔혹 코미디가 아닌 이상 소재를 묘사함에 있어 잔혹한 소재가 있다 할지라도 이를 은유적으로 처리하거나 또는 암시로만 처리 가능하다.
하지만 <청년경찰>은 그렇지 않았다. 코미디를 표명하면서 왜 여성의 배에 뚫린 구멍을 직접적으로 묘사해야만 했을까? 불법 난자 채취를 굳이 시각적으로 노골화했어야만 속이 시원했을까? 인육 고기를 소재로 삼되 사람 고기를 썰고 다지는 푸줏간 공포, 시각적 사디즘 대신에 블랙코미디로 승화한 <델리카트슨 사람들>과 같은 은유적인 묘사로 불법 난자 채취를 묘사했다면 조선족의 범죄성이 반감될 것을 우려한 김주환 감독의 계산이었을까?
마지막으로 비판할 영화는 <군함도>다. <청년경찰>이나 <브이아이피>의 사디즘보다 약한 강도지만 <군함도>는 조선인 위안부를 촘촘히 박힌 못 위에 일본 군인이 손발을 붙잡고 굴려 처형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성의 신체가 남성의 판타지가 되는 춘화라는 뇌물도 모자라 위안부를 처형함에 있어서 사디즘적 묘사가 강조되는 시퀀스다.
<군함도>에서 과다출혈로 죽어간 위안부, <청년경찰> 속 구멍 난 여성의 복부, 그리고 <브이아이피> 가운데서 유혈이 낭자한 여성의 나신과 목 졸림은 대체 누구를 위한 폭력적 현시일까? 여성의 연약한 육체에 대한 가학의 물리적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악인의 잔혹함이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다는 한국 시나리오 작가들의 사디즘적 강박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필자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정서적인 피곤함만 가중되는 한국영화 속 영상 잔혹사는 언제쯤 자기정화될 수 있을까?
참고로 한니발 렉터는 시리즈 중 최악의 졸작인 <한니발>을 제외하고는 시각적 사디즘을 즐기는 대신에 심리적 묘사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한니발의 카니발리즘을 관객에게 공감시키는데 성공했다. 항생제 처방이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바이러스는 항생제에 살아남기 위해 자기 면역력이 극대화된, 기존의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 바이러스로 변이함으로 인간의 항생제 남용을 극복한다.
한국영화 가운데서 여성의 육체에 대한 사디즘적 경향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여성 육체에 대한 과도한 경시에 대한 영화계의 반성, 이를 바라보는 대중적인 경계감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리얼리즘을 추구한답시고 뼈와 살이 끔찍하게 해체되는 카니발리즘을 한국영화에서 진짜로 목도할 수 있는 시각적인 고문을 관객이 감당해야 하는 날이 도래할지 모른다. 가뜩이나 현실도 복잡다단한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 시각적 사디즘이라는 스트레스를 추가로 덧입히는 각본가와 감독은 대체 무슨 심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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