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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톨레레게 Apr 12. 2021

Zeze를 제재할까?

‘생각하는데이ThinkingDAY’ 수업

2016년 3월 2일 톨레레게 공식 티스토리 블로그에 게시되었던 글입니다. 
Dear. 생각하기를 갈망하는 청소년들에게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잎사귀에 입을 맞춰. 장난치면 못써. 나무를 아프게 하면 못써 못써.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여기서 제일 어린 잎을 가져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수 아이유의 <Zeze> 노랫말 중 일부입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제제는 1968년 포르투갈어로 처음 발간된 J.M. 데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 등장하는 다섯 살 소년을 모티브로 한 인물입니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나쁜 짓에 연루되고 학대를 당하면서 자라는 소년 제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아이유는 <Zeze>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소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제라는 캐릭터는 많은 모순점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제제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참 섹시하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노랫말에서도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더러워." 처럼 소년의 모순적인 특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하고 있는 '동녘' 출판사는 이 발언과 노랫말이 상당히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동녘' 출판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라는 제목으로 공식 성명을 내면서 "학대로 인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다섯 살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으니까요. <Zeze>를 둘러싼 논란은 이를 기점으로 음악계, 더 나아가 문화계 큰 화두로 자리하면서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평론가가 이 논쟁에 참여했고, 아마도 이 초대장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한 번쯤 이 논란에 대해 한 두 마디 친구들과 의견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르죠. 

2016년의 첫번째 <생각하는데이>에서는 바로 이 <Zeze>를 둘러싼 논란을 다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된 뿌리 깊은 논쟁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생각하는데이>가 진행되는 송석복지재단 혜화 교육실 입구에 붙은 환영 인사말

2016년 2월 20일, 새해 첫 번째 <생각하는데이>가 송석복지재단에서 진행되었습니다. ‘Zeze를 제재할까?’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번 모임에서는 중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청소년들이 참가하여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생각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요즘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인 <슈가맨>처럼, 연령대별(!) 반응을 살펴볼 수 있었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자신의 견해만을 강요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충분히 귀 기울일 줄 아는 모습은 <생데>(저희는 줄여서 이렇게 부릅니다!)가 지향하는 ‘경쟁하지 않는’ 토론의 가치를 잘 보여준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이유의 <Zeze>를 함께 들어볼까요?

Zeze를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쟁점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쟁점을 두부 자르듯 서로 완전히 분리해서 다룰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서로 다른 맥락의 쟁점들을 하나의 맥락에서 논의하는 혼란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모적인 논쟁이 되고 마니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학대받은 아이를 망사스타킹과 핀업걸로 표현한 발상은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소재원 / 소설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2015.11.9.)
“이런 종류의 얘기가 있을 때 늘 금기 얘기가 나온다. 누군가가 자기 역량이나 상상력 안에서 그걸 재해석하고 창조하고 이런 데 있어서 금기가 있다고 설정하는 사람들은 보통 늘 논의를 자기네들이 설정해 놓은 윤리적인 틀 위로 가져가려는 경향이 있다.” (허지웅 / 영화평론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2015.11.9.)

위 두 사람이 같은 맥락에서 발언하고 있을까요?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전자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발언이고, 후자는 ‘해석의 자유’에 관한 발언이니까요. ‘내가 무엇을 해석했다’는 문장과 ‘내가 무엇을 표현했다’는 문장이 지시하는 바는 서로 다릅니다. 지나가던 어떤 사람의 옷차림을 보고 ‘융통성이 없는 성격이겠네!’라고 속으로 생각(해석)한 것과 그 사람을 향해 “융통성이 없는 성격이군요!”라고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서로 다른 행위인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위 두 발언은 엄격한 잣대로 보자면 동일한 쟁점에 관한 발언이 아닙니다.

"재해석의 자유는 존중해야 하나 반드시 재해석을 할 때, 자신의 재해석이나 표현의 자유가 트라우마를 겪는 일부 집단이나 상대에게 또 다시 폭력성을 발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세심히 고려해야 한다. 모든 문학이 해석하는 자의 자유와 역량에만 절대적으로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또한, 누군가의 글이나 음악을 듣고 이에 대해 좋다, 나쁘다 식의 평가를 내리는 건 언제나 쉽다. 그러나 좋다, 나쁘다 등의 간단한 평론을 바탕으로 소위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삼류 평론가들이 창작자의 고통을 얼마나 헤아릴지 모르겠다. 표현의 다양성 이전에, 글 같지도 않은 글 팔아먹는 글장사들이 창작자의 입장도 모르면서 나불대는 것이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다." (권상집 / 동국대 경영계열 경영학부 교수.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2015.11.9.)

이 글은 ‘해석의 자유’를 다루고 있을까요,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다루고 있을까요? 첫 문장에서는 해석의 자유를 다루는 듯싶지만, 곧이어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고, 다시 “해석하는 자의 자유와 역량”을 이야기하다가 “표현의 다양성”으로 글을 끝맺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해석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글쓴이는 ‘해석’ 행위에 ‘표현’ 행위를 전제하고 있기에 이처럼 표현했을 겁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해석’과 ‘표현’은 엄밀히 말해 다른 개념입니다.

아이유의 를 둘러싼 쟁점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쟁점 지도'

그러므로 맥락적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처럼 논란이 되는 이슈를 다룰 때, 이슈를 둘러싼 쟁점을 분류하는 게 첫째로 해야 할 일인 겁니다. 그 결과, 이번에 참여한 학생들은 <Zeze>와 관련해 무려 여섯 가지의 쟁점을 차례대로 다뤘습니다.

연구원은 학생들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합니다.

뒤로 갈수록 무겁고 도전적인 질문에 답하느라 고생한 학생들. 그래도 끝까지 견뎌줘서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이날 이룬 작은 성취와 보람이 여러분의 생각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게요. 3월의 <생각하는데이>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이정주 연구원

jeongjoolee@tollelege.org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톨레레게 

tollele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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