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ben in die kleine Stadt
내가 반년을 살았던 곳은 독일 북쪽의 니더작센주 중에서 다시 남서쪽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도시였다. 독일어로는 이런 소도시를 die kleine Stadt 라고 부른다. 단어 그대로 작은 도시라는 뜻이다.
내 고향은 지방이지만 학교 때문에 나는 서울에 3년 정도 자리를 잡고 살았다. 서울의 번잡스러움은 익숙하다 못해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 나에게 조용한 독일의 소도시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장소였다. 그 때의 나는 한적함을 원하면서도 또 원치 않았다. 그저 지친 마음에 얼른 한국을 뜨고 싶었고 그렇게 고른 도시와 학교였다.
떠나오기 전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스타벅스도 있었고 아이스 커피 Eis Kaffee (유럽에는 아이스 커피를 취급하지 않는 곳이 많죠)도 있었다. Netto, Aldi(무려 다진 마늘을 팔았다!), EDEKA 등 유명한 프랜차이즈 마트도 종류별로 있었고 한국의 ABC마트처럼 여러 브랜드 신발을 들여다 놓는 신발 가게도 있었다. H&M, ZARA와 같은 옷 가게, 젤라또 집과 맥주집, 영화관, 약국 Apotheke, 독일의 파리바게트 Wellmann, 제일 중요한 Asian shop까지 (이곳에 나는 김치와 고춧가루, 라면, 간장 등등 많은 빚을 졌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전부 다 있었다.
편의상 내가 머물렀던 소도시의 명칭을 B시라고 칭하겠다. B시는 한적하고 여유로웠지만 젊은 사람들보다 노인 거주자가 더 많은 편이었다. 20~30대의 대부분은 Universität나 Hochschule, B시에 위치한 두 곳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 아니면 직원이었다. 노동자들 대부분은 독일인이었고 외국인은 거의 없었다. 나이대도 4-50대로 비교적 높았다. 대도시에 인구가 흡수되며 젊은이들이 떠나가는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이었다. 그 점은 한국과 비슷했다.
다만 B시는 한국의 시골처럼 적막하지는 않았다. 도로에는 차만큼이나 많은 자전거가 지나다녔고, 시내에 나가보면 나처럼 학교를 다니기 위해 자국을 떠나온 외국 학생들도 많았다. 아파트 대신 늘어선 플랫 앞에는 정원이 조성돼 있었으며, 개인 사유의 정원에는 항상 스프링쿨러와 자전거가 있었다.
독일을 떠나기 전 평소 가보지 않았던 동네 길을 산책한 적이 있다. 도로 한 블록을 건널 때마다 다른 공원이 나왔다. 벤치나 농구 골대가 설치된 곳도 있었고 잔디가 다리 높이까지 자라있는 공원도 있었다. 해가 길어진 6월 말 즈음에는 너도나도 공원 잔디밭에 나와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소소하면서도 자유로운 광경이었다. 내가 독일인이었다면, 하다못해 독일어를 잘하는 외국인만 되었더라도 그곳에 오래도록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독일에서 독어를 처음 배웠다. 당연히 실력은 좋지 않았다. 기껏해야 가게에 가서 메뉴판을 더듬더듬 읽는 정도였다. 만국 공통어인 영어에도 아주 능숙한 편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준비 없이 갔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독일 생활에서 필수적인 비자 및 은행, 보험 업무의 대부분은 독어가 필요했고 나와 같은 외국인들이 업무를 보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하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독일에 나가 살며 느낀 것은 내가 완벽한 이방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서글프지는 않았다. 한국을 떠나오면서부터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다만 각오했음에도 어려운 것들이 있긴 했다. 독일의 빵집이나 카페에 가면 많은 사람들은 동행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다. 혼자온 이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 나는 혼자있는 것을 잘하고 또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독일에서 혼자있는 동양인은 존재 그 자체로 많은 시선을 끌기 마련이다. 하물며 내가 있던 B시는 동양인이 많지 않은 시골이었다. 혼자 외출을 하면 나는 빵을 씹으며 핸드폰을 하거나,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홀로 고독을 씹어야 했다. 한국에선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독일을 나오니 힘들어졌다. 오로지 외부환경 때문에.
외국인에게 있어 언어란 그 나라의 내지인으로 받아들여지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중요 척도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독어를 잘 하지 못했고, 내가 읽을 수 있는 수준은 아이들 동화책만도 못했다. 독일은 동화 Märchen로 유명한 나라지만 나는 독일에서 단 한 권의 동화책도 읽지 못했다. 서점에 갔을 때도 Englisch 코너만을 잠깐 들러볼 뿐이었다.
대신 나는 전자책을 많이 읽었다. 무게와 부피 때문에 미처 들고오지 못한 종이책 대신 오직 핸드폰만 있으면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특히 다양한 유럽 국가들을 여행 중일 때는 기차나 버스 안에서 데이터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럴 때면 미리 다운 받아둔 전자책을 켜고 읽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독일에 있는 동안 나는 내 한국어 실력이 퇴화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꼈다. 한국 친구들과도 자주 만났고, 같은 플랫에 사는 한국 친구와 한국어로 대화도 종종 나눴다. 그랬음에도 그곳에서의 기본 생활 언어는 영어 또는 독일어였기에 나는 한국에서만큼 한글을 접할 수 없었고 점점 빈약해지는 어휘력에 글쓰기를 멈췄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겠다던 다짐은 그렇게 또 수포로 날아갔다. 그 와중에 내게 전자책까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없었을 것이다.
+) 궁금해서 찾아보던 중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전자책을 eBook(electronic book)이라고 부르듯이 독일에서는 전자책을 eBuch라고 부른단다. 독어로 Buch는 책, e는 elektronisch. 영어의 elctronic과 같은 뜻이다. 독어를 배우다 보면 영어와 비슷한 단어가 많이 나와 내심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