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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에서 삼십대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나는 여전히 감정이 어렵다

by 휴지


2024 가을


회사 동기들과 위키드를 보러 갔다.

이 구성으로 영화를 같이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는데도 전과 달랐다. 일전에 내가 보고 싶다고 말했던 영화를 그가 기억했다가 먼저 제시했다는 사소함이 마음에 불씨를 지핀 걸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픈 사람 및 사람들과, 내가 편한 홈그라운드에서 보는 감회가 남달랐기 때문일까.

함께 본 영화는 즐거웠고, 영화를 보러가기 전에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나서 싱숭생숭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넘버에 대한 이야기, 영국에 위키드 연극을 보러갔다던 이야기,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된 계기, 영화에 깜짝 까메오가 나온다는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본 영화는 이미 나 혼자만의 감상이 아니었다. 남들 모르게 비밀 일기장을 공유하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느낌이었다고 하면 약간 과장인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조용히 일어나 홀로 내용을 곱씹으며 귀가하던 평소와 달리, 영화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운드가 조금 아쉬웠다던가, 어떤 부분에서 눈물이 조금 났다던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어디였다던가.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한편으론 너무 요란한 것 같아 꺼내지 못했던 말도 있었다.

그러고는 단체 모임이었다. 별로 큰 사건은 없었고 잔잔하게 이런저런 시간을 공유했는데 기억에 남았던 일이라면 바닥에서 자고 있는 다른 동기에게 침대에 올라와서 자라하고는 태연히 내 옆 바닥에 눕던 얼굴정도.

생각해보면 내가 이 만남을 의식하게 된 것도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갔을 때 선잠에 깨어 보았던 옆 얼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런 별것도 아닌 사건 하나하나를 생생히 기억하고 유난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너무나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한 전조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그 친구를 포함한 여럿 동기들과 함께 우리 집, 십대 시절 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고향에 놀러 갔다. 가기 전까지 여러번 상상으로 그린 그림 속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많이 했는데, 다른 동기의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들, 유년시절에 인간관계로 어려웠던 일들, 약간의 푸념과 투정어린 이야기들을 하며 마음을 나눴다.


아 우리는, 혹은 나는 정말 지리멸렬한 이야기를 나눌 때에야 비로소 마음이 섞이는 듯한 착각을 경험하는구나. 이런 시간들이 정말로 지리멸렬해지면 어떡하지, 그러면 조금 많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애는 고등학생 때,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의 이야기를 짧게 했다. 깊이있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그냥 그랬으며 그 결과 지금의 나는 이렇게 되었다는 인생의 짧은 단상들. 그것에 나는 목마른 개미가 이슬을 받아마시는 것처럼 꿀꺽꿀꺽 갈증을 해소했고, 더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나의 크고 작은 상처를 내보였다.


왜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을 때 상처를 공유할까. 그 이유를 모른 채로 착실하게 이행하는 건 왜일까.

감기를 핑계로 추워보이는 손에 핫팩을 쥐어주고, 소화가 안된다는 말에 소화제를 쥐어주고, 말 한마디 나누지 않더라도 나란히 걷고 싶어서 걸음을 늦추는 것은 정녕 애정일까 아니면 그냥 순간의 짧은 호기심일까.

피로에 모두가 잠든 밤, 아쉬움에 tv를 틀어놓고 단 둘이 박정현의 버스킹 영상을 보며 시간을 공유했던 그 때, 그 애의 표정을 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

내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내가 너의 표정을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차마 고개 돌리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안다.

어둑어둑하고 조용한 밤 속에서 함께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감상을 이야기하던 순간은 아주 짧았고 그만큼 강렬했기에 이 기록을 남긴다.







2025 겨울


요즘 들어 깨닫는 것은 그날의 감정이 나 혼자만의 것이었으며, 감정이 전이된다는 생각은 지극히 외로운 착각에 불과하단 사실.

나의 마음에서 내 존재는 그, 그들에게 너무 가볍고, 반대로 그들의 존재는 내게 너무 무거운, 이런 불균형을 다루는 법을 모른다. 아직, 그리고 평생 모를 것 같다.

늘 그랬듯이 나는 내가 무얼 하고 싶은 지조차 모른채로 단지 질투만...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시기와 질투로 마음을 태운다. 이 마음이 나를 극도로 소모시킬 것을 알면서도...

고백을 할 것인가. 아니오.

그렇다면 솔직하게 부딪혀 마음을 끌어보려 노력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오.

아무렇지 않은 척 이대로 계속 친구로 지낼 것인가. 예.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질투는 없어야할텐데.


어느 날 갑자기 툭툭 들어오는 연락에 기뻐하고, 어느 날 갑자기 끊기는 연락에 서러워하고. 좋았던 기억만 곱씹으며 하루하루 새로이 갱신될 기억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가 안쓰럽고, 한편으론 미련하다.

결국 나는 또 한계에 부딪히고 마는가. 나는 한없이 조심스러운 걸까, 아니면 감정의 충돌 앞에서 그저 물러날 수 있을 때까지 물러나 뒷걸음치는 겁쟁이일까.

수많은 두려움을 깨고 드디어 서른이 되었는데 아직도 넘지 못한 감정이란 두려움이 나를 좀먹는다.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습니다.

약 5-6년 전 가졌던 고민들을 지금도 여전히 짊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며 묘한 위로를 받는 것 같습니다.

십대 이십대 삼십대 내 모든 시간들에서 나는 같은 이유로 힘들어하며 슬퍼하는군요.


감정이 조금만 더 쉬웠으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론 이 어려움이 있기에 즐거움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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