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지 Apr 11. 2019

추석, 집

향수(鄕愁)


2018. 9. 24.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도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또 항상 그랬던 것마냥 익숙하고, 아늑하고, 그리운 정경이다. 똑같은 방 한 칸 크기에 있으면서도 언젠가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집은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다.


사람이 있고 없음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 집에서 있었을 여러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배어 스며들었기에 그런게 아닐까. 이야기가 없는 집은 항상 쓸쓸하기 마련이고, 한철따라 스쳐지나가는 객인 나는 기어이 이 집에 와서야 이야기를 만든다.


이번에는 추석이라는 대명절을 맞은 전국민 귀향길에 나또한 발길을 맞추었다. 추석 때마다 빚고 속을 넣어 푹 쪄냈던 송편은 점차 떡집에서 사온 꿀떡으로 대체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떡이 아닌 필라델피아 치즈케이크라던가 크로와상같은 소위 "서양식" 디저트가 상을 대신하고 있지만. 바닥에 크게 신문지 깔아내며 계란물 입히고 밀가루 입혀 부쳤던 전 잔치도 이제는 옛문물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추석은 추석이라고, 지나가는 곳마다 추석 내음이 난다. 재잘대는 시골 시내 거리의 소음과 싸늘한 바람을 타고 나려오는 은행냄새, 젊은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노인 인구만 남은 성북구의 옛스러운 복작함 뭐 그러한 것들이 한데 뒤섞여 새로운 추석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향수라는 건 다름이 아닌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집과, 집에 얽힌 이야기와, 그 집에 사는 사람들과 냄새와 소리와 풍경들이 종래에는 한 편의 필름이 되어 삶의 모습을 담아낸다. 단순한 집이 아니라 집을 둘러싼 주변을 총칭하는 무언가의 덩어리를 그리워하는 것. 그런 게 향수라면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병명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함과 새로운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