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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Sep 05. 2019

한우 부부가 싸움을 할 때

다문화가정에서 필요한 싸움의 기술

연애 10개월 만에 결혼한 우리 부부.

결혼 후 내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볼 때면 문득 이 외국인은 누구지? 하는 낯선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뭐가 씌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후다닥 결혼을 한 나였다

어쩌면 주위에서  말려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빨리 결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 종교를 가지고 위험한?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연애기간이 짧아 싸울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사랑하기에도 아까운 시간들이라고 생각했기에 외국인과의 결혼이 남들이 말하는 여러 문제들을 극복하기 힘들 것이란 말에 수긍하지 않았다

하루도 안 싸우고 평생 행복할 것 같던우리였지만 남편은 결국 남이란 걸 느끼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먼저 한국에서 소규모 결혼식을 올렸다

평생 한번 볼까 하는 친정부모님의 지인들과 멀리서 오신 친가 외가 어른들이 모두 와계신데

남편은 계속 시댁 식구들 옆에서 시댁 어르신들만 챙겨주고 있었다

나는 그때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는 건 알았지만 그날만큼은 서운함이 크게 느껴졌고 저 사람은 남이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시댁 식구들이 멀리서 오긴 했지만 먼저 우리 식구들을 챙겨줬음 내 기분도 나빠지지 않았을 테고 나고 시댁에 더 잘하려고 했을 텐데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구나 싶었다

결혼식 끝나고 나는 계속 툴툴거리며 신혼여행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결혼식 직후 꿈에서 깬 것처럼 갑자기 현실이 두려워졌다

혼인신고는 이미 했는데 괜히 했나? 초조함에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어쩔 거야 혼인신고 다했는데."

라는 말만 해댔다

이제 엎질러진 물이구나 ;생각하니 더 우울했고

내가 했던 그 확신과 믿음은 현실 속에 온데간데없어 사라졌다


그런데 막상 신혼여행 가기 위해 집을 나서니 데이트하는 것 같아 그저 철없는

아이처럼 다시 내 기분은 좋아졌다

신혼여행은 강원도로 정하였는데 나야 국내여행이지만 남편에게는 한국이 해외여행이었고 우즈베키스탄에 없는 예쁜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그렇게 강원도의 2박 3일 신혼여행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나는 여행하는 동안 방에서 늦게까지도 자보고 나가서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바다도 보고 카페에서 음료도 마시면서 수다도 떨었다

데이트가 끝난 후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 좋았다

언제 누가 왜 싸우고 후회했냐는 듯이 다시 소소하지만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다음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음식에 베이컨이 들어가 있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남편이기에 나도 먹지 않겠다 약속하였지만

아까우니까 베이컨만 빼고 먹음 안 되냐 물으니 절대 안 된다며 다른 데 가자고 돈만내고 나왔다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주문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그놈의 종교가 원망스러웠다

(이슬람교 사람들은  하루 5번 기도를 하는데 종교를 믿는 사람들. 참 대단한 것 같다

밖에 외출 중에도 기도시간이 되면 핸드폰 알람이 울리는데 밥 먹다가도 놀이공원에 가서도 기도시간이 되면 기도할 곳을 찾는다

연애할 때 추운 겨울 샤로프를 기다리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짜증도 냈지만 절이 시름 중이 떠나라고 남편을 떠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저렇게 믿는걸 내가 무슨 수로 막나

싶어 그러려니 하다 이제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어딜가면 마땅한 한적한 자리를 찾아 돗자리 같은 양탄자를 내민다)


시집가기 전

우리 엄만 배운것 하나 없이 시집가면 욕먹는다며

와서 음식 하는 것 좀 배우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일부러 일 시키려고 하는 줄 알고 더 뺀질거리고 도망 다녔다

결혼하기 직전까지  엄마가 방청소를 해줬던 나이기에 시어머님과 사는 것이 곤욕이었다

물론 내가 아니라 시어머님이 그럴 것이다


남편은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개라고 하는데 이제 나는 곧잘 침대 정리를 하는데 남편이 늦게 일어나도 나보고 이불 정리를 하라는 것이다


샤로프 나는 이불 개고 싶은데  나는 애기랑 지금 놀아주고 있는데 자기는 지금 심심하잖아?

알겠어!!


매번 남편이 늦게 일어날 땐 절대 이불을 개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는 이불 개라는 말은 더 안 하는 것 같다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게 불편하지 않냐고 하는데 눈치가 없어서인지 오히려 시엄마가 더 내 눈치를 본다

나는 소파에서도 대자로 누어 핸드폰을 하기도 하는데 남편은 엄마도 있는데 다리 좀 오므려 라고 말하면


우리 집인데 뭐~가족끼리 어때 시엄마가 뭐라고 해?

아니 그런 거 아니야(시엄마 뭐라 할까 철통방어다)


말은 안 해도 한국 여자는 다 저러나 싶으실 거다

남편은 슬프지만 이미 알았버렸다

한국 여자가 문제가 아니고 와이프만 그런다는 사실을


남편은 나에게 롱치마에 긴 티셔츠를 입으라고 한다 남들이 보는 게 질투 나고 싫다고 했다

통통한 아줌마를 걱정하며 예쁘게도 말하는데 이슬람에 우즈베키스탄 스타일대로 입으라는 것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절대 있을 수 없다 하였지만 아기를 갖고부터 이놈의 몸뚱이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다리를 쩍 발리고 앉아도 부담 없고 어떤 자세도 불편함이 없었다 어느새 늘어진 롱티에 레깅스 사랑하게 되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어쨌는 남편이 원하는 스타일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되어 슬프지만 좋다


나는 소화가 잘되는지 방귀가 참 잘 나온다

자연분만을 할 때 뭔가 잘못됐건 꺼야 라고 생각해봤지만 결혼 전에도 아빠 닮아서 그런지 아빠 옆에서 피리를 불어댔다

샤로프는 항상 여자는 조신해야 되며 집안일도 척척 잘하고 말수도 적고 이런 여성을 이야기하지만

어째 나랑 결혼했는지  샤로프도 결혼 당시 뭐에 씌었던 게 분명하다

나만 피해자는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시엄마와 남편과 아이와 같이 거실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뿍! 하고 방귀가 놔왔는데 나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생리현상인데 그냥 웃어넘기면 될 것을 샤로프는 정색을 하고 어머님은 말이 없으셨다

불편해진 그 상황에서 나는


아이고 우리 아기 방귀 뀌었어요?

자기. 화장실 가서 해!!

화장실 가는 새 방귀가 들어간단 말이야!


순간 분위기가 싸했다

방귀로 정말 인정사정없었다

방귀 한 번으로 기분 나빠 이틀을 말을 안 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 나는 일부러 방귀를 더 뀌어대고 있다


3년간 우리는 참 별 볼 일 없는 싸움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하고 시간이 지나 이 시점이 되니

우리가 그때 왜 싸웠지? 하며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이런 게 부부인 건가?


남편과 알게 된 지 4년 정도 되니 우리는 서로 어떤 의도로 이야기하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언어 차이로 인한 오해는 예전처럼 많지는 않다

이 사람이 열 받아서 이렇게 말하는 건가 라는 생각보다 한국말이 서툴러서 나한테 이런 단어 선택밖에 못하는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기도 하지만 사소한 것으로 너무 많이 다퉈서 더 빨리 상대방을 알게 된 것 같다


싸우면서 깨달은 것은 깨달아도 싸운다는 것이다

에너지 소모도 많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그만 싸우자 싶어도 어느새 싸우고 있다

그래도 전에는 남편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게 한 사람의 잘못으로 시작된 싸움일까?

서로 달라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갖었고

솔직히 완벽한 사람이 세상에 어딨다고 누가 누굴 가르치고 상대방을 고치려 하고 그러는가 싶다

욱하는 성격에 고집스러움이 있는 나인걸 잘 알기에 먼저 사과하는 게 이기는 거야 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다

결혼했으니 넌 내꺼. 이렇게 생각하면 상대방을 나와 맞추려고 하게 되는데

서로를 맞추려고 하지 않고 다름을 그냥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신경을 남이 아닌 나에게 쏟는 것이다

나와 맞춰주길 원한다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하기에  그땐 오히려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정말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말이라도 신경 써서 말하는게  필요하다

모국어가 다르기 때문에 내 나라 한국말을 사용할 때는 내가 더 조심하는게 좋을것이라 느꼈다 그래야 다문화가정이 덜 싸우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산다는 게 뭐가 그리 다를까

먹고. 자고.  놀고. 싸우고. 좋았다가 싫었다가

그렇지만 다른 멀리 있는 나라에서 온 사람과 만났기에 나는 그 먼 나라가 나의 두 번째 나라가 되었고

새로운 문화와 종교 언어 속에서 좋은 점만  흡수시키려 노력 중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싸우기보다 각자의 나라에 좋은 점만 보고 서로에게 배운다면 편견 속에서도 얼마든지 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말은 쉽지. 생각보다 실천하기 힘들어 항상 의식해야만 한다)

이렇듯 서로가 노력이 중요하다


결혼 5년 차가 되고 10년 차가 되고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나는 지금이 참 좋다


 P.S.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린 가부장적이고  고지식 한 면을 가진 우즈베크에서 태어난 남편 톰이 잡으려 하지만 절대 잡히지 않은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제리와 비슷한 것 같다.

상황에 따라 톰이 됐다가 제리가 됐다가 하는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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