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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Aug 29. 2019

우즈베키스탄 남편과 성장하는 중입니다

남편을 위한 자존감 수업

내가 벌써 삼십 대야??!!!

눈 깜짝할 사이 철없는 고등학생에서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나는 서른 살이 돼서야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공부의 중요성이다


임신을 하고 나니 아기가 태어날 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걱정에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아기가 태어났을 때 어떤 음식을 먹어야 좋은지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은 무엇이고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등을 공부하기 위해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티브이 시청에만 빠져있던 내가 책이라면 울렁증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책이랑 친해져 가고 있었고

아이를 낳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철학과 성공을 담은 자기 계발서를 많이 읽었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고 책 읽는 것을 취미로 만든 나 자신에게 고마워졌다 그리고 이런 책 읽기의 재미를 남편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평소에 책과 안 친한 남편이었고 한국생활을 하다 보니 모국어로 된 책도 구할 수 없었다

포기하기에 아쉬워 남편이 읽을 수 있는 쉬운 책을 고르다 보니 이솝이야기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책을 어찌나 남편과 공유하고 싶던지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서평을 쓰기에 앞서 어느새 나는 책을 다 읽으면 남편에게 출력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성공해서 돈 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 이용해서 공부하는 거야? 리며 웃었고

또 돈 이야기!  책만 읽으면 뭐하냐며 흥미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새 남편도 나의 이야기에 중독이 되었는지 오늘은 책 이야기 안 하냐며 먼저 묻기도 했고

그때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서 내 생각을 작가가 한 이야기인 양 덧붙여  풍성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던 요즘

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겨 책과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바로 자존감에 관한 것


어느 날 엄마가 샤로프를 보고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냐며 걱정을 하셨는데 그때도 난 아무것도 몰랐다

평소 내색을 잘 안 하는 남편이기에 그냥 컨디션이 안 좋구나 싶었다


오늘은 뭐했어? 점심은 뭐먹엇어? 짹짹거리는 수다스러운 우리 부부지만 남편은 일 이야기에는 좀 과묵한 편이었다

지난 토요일 남편은  퇴근 후 집에서 보니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놀자고 했을 테지만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평일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하니 주말은 가족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달라는 내 요청에 피곤해도 항상 가족과 함께 하려고 한 남편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너무 피곤해 보이길래 들어가서 쉬라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자기 벌써 자? 정말 피곤했나 보네..


나는 아쉬운 대로 딸과 둘이 집 앞에 공원도 가고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놀다가 들어왔다


그렇게 잠든 남편은 다음날인 일요일

한국어 수업 들으러 가기 위해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수업 끝나고 집으로 온 남편은 아이와 동화책을 읽고 있던 내 옆에 누워 나에게 말했다


자기 나 일 다른 곳으로 갈까?

왜? 무슨 일 있어??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나빠서..


평소 자존심이 강해서 이런 말을 잘 안 하는 남편이기에 내심 걱정이 들었다

소심하긴 하지만 잘 웃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남편인데

이렇게 말할 정도면 무슨 일이 있긴 있었구나 싶었다

요즘 한국생활이 부쩍 힘든지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가족들 이야기를 많이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편은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어 보였다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와 달리 어깨가 많이 처져 보였다

그때의 밝고 생기 있던 모습을 어느 순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 매일 보는 얼굴은 데..

일다니며 딸아이 크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남편을

신경 못썼던 것 같다


한국은 급속도로 경쟁성장을 하여 경쟁사회와 비교 사회로

사람들은 자신보다 뒤처지는 사람을 배려하고 돕는 것을 뒤로 미루게 되어

힘든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인 나도 사람들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와 힘에 부칠 때가 많은데

샤로프의 타지 생활이 얼마나 힘들지. 나는 또 잊고 있었다

사회를 바꿀 수 없다면 스스로를 지켜낼 힘을 기르도록 돕고  싶었고

그때부터 난 자존감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현실을 알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

등 많은 글들을 읽었지만 가장 와 닿았던 말이 있었다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그것을 듣고 문제를 해결해줄 솔루션만 찾지 말고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그 과정의 힘든 것을 공감해주고 그것을 알아주는 것

그게 바로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일자리를 옮긴다고 하였을 때  내 생각엔 옮겨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전과 같았으면 나는 한국인이니까 더 잘 알아라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내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항상 남편에게 솔루션을 말해주려고 했었고 남편의 의견은 항상 틀린 것처럼 이야기했던 것 같

하지만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감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남편이 퇴근하면 항상 기분 좋은 이야기기들만 하려고 했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애주기로 했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서

남편에 대한 배려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에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날인 주말을 남편에게 휴식시간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일에도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것 같았고

집에서는 이제는 죄책 감 없이 참 잘 ~쉬는 남편이 되었다

놀러 가자고 말하고 싶어 입이근질거리긴 하지만

남편에게 휴식시간을 주기로 했으니 참아보는 중이고

대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부모님과 같이 이곳저곳 놀러 다니고 있어 또 다른 행복을 맛보는 중이다


요즘 나는 각자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가 어디에서 살아야 좀 더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이가 있기에 쉽게 결정할 수가 없는 문제다

남편과 나 둘 중 한 사람은 타지 생활을 해야 하는 건 확실한 일이지만..


한국에서 돈을 번다고 꼭 부자가 되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때 각자의 자리에서도 돈을 잘 벌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계란 파는 남편 친구부터 원단사업하는 옆집 아저씨, 수입 화장품 판매하는 이모님까지

다들 작게 시작해서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보면 어디에서 살아야 돈을 잘 번다는 건 어떻게 보면 편견이고 현실 회피라 생각했다

(사업이 답인가?..)


지금 있는 곳에서 못 벌면 다른 곳을 가도 못 벌 것이라 생각하는 나이기에 어딜 가나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산다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보다도 다 행복하자고 돈을 버는 것인데

현재의 삶이 힘들고 자존감까지 잃게 한다면 한국에서만 생활하자고 하는 건 어쩌면 내 욕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족과 떨어져서 아는 사람도 많이 없는 낯선 곳에서 산다는 게 많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요즘 더 든다


나는 퇴근 후 자기 전 남편과 삼십 분 정도 이것저것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요즘 남편에게는 무한 긍정과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대화에 긍정의 말들만 오가며 싸울 일도 줄었고 남편이 수다스러운 나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나의 하루 30분 몰래한 자존감 수업이 끝나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샤로프!! 책에서 봤는데 성공하기 위해선 퇴로를 막아야 한대 배수의 진을 치면 물러설 곳이 없어진다 나?

자기가 벌어다 주는 생활비 덕에 내가 너무 삶에 안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방법이 있는데

자기가 잠시 쉬어도 될 것 같아

난 한국사람이잖아

까짓 거 내가 돈 벌지?


남편은 가부장적인 표정으로 풋하고 비웃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또 한 번 웃는 남편을 보고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난 진지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앞만 보며 사는 남편에게 휴식의 시간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자기!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공부도 하고 가끔 쉬기도 하면서 한국에서 한 번쯤은 욜로로  살아보는 거 어때?

남편이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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