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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 Dec 04. 2022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특별히 좀 더 강한 인간이 있을까 : 카타르 월드컵과 이태원 참사 그리고

2022년 12월 3일 자정,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결정짓는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있었다.


가나와 우루과이의 경기가 가나의 패배로 끝나면서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경기를 마치고 소감을 전하는 선수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마스크를 벗은 손흥민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부어있었지만 한껏 격앙된 목소리에서는 승리의 기쁨과 흥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단단한 마스크에 눌린 콧잔등, 부상으로 수술받았을 왼쪽 눈가와 뺨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눈물이 차오른 그의 눈동자를 보며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적을 믿고 응원해주신 국민들과 함께 뛴 동료 선수들에게 모든 공을 돌리면서 겸손히 감사인사를 전하는 손흥민의 인터뷰를 보며 이상하게도 이태원 참사 브리핑을 하던 최성범 서울 용산소방서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침착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은 차분하게 사고 상황을 전달했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을 덮은 마스크와 헝클어진 머리 위 주황색 안전모자, 때 묻은 형광 연두색 출동복이 아른거린다.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 앞에 서 있던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면서도 심하게 손을 떨었다. 베테랑 소방관이라고 처참한 사고 현장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처음 맞는 충격적인 상황 앞에서 특별히 더 의연하게 상황을 이끌어 가야 하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힘든 상황을 이끌어가는 대표라는 점에서 손흥민 국가대표와 최성범 서장은 공통점이 있다. 다른 점이라면 손흥민은 국가적인 응원을 받으며 다음 경기를 치르게 되었지만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심지어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긴급한 상황에 대응했음에 불구하고 아무도 지지 않으려는 책임을 떠안아 죄인처럼 손가락질받고 있다는 것이다.


포르투갈과 우루과이라는 강팀이 있는데 대한민국이 조별리그에서 2위 안에 들 수 있을까? 나는 두 번의 경기 이후 우리나라가 16강 진출이 희박해진 상황을 둘러보며 세 번째 경기가 우리의 마지막 경기일 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16강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포르투갈과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5분 만에 선제골을 먹었고, 상대팀 골문 앞으로는 몇 번 다가가지도 못한 채 전반전이 끝났다.


그러나 모두가 어제 보았다시피 후반전에서 우리나라는 동점골을 따냈다. 후반 45분 이후 추가시간이 주어진 사이에 기적 같은 역전골을 만들어냈다. 승리의 기쁨을 잠시 미뤄둔 채로, 가나와 우루과이의 경기가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우루과이는 마지막 경기를 2대 0으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16강에 진출하지 못해 울었다. 포르투갈과 대한민국이 최종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포르투갈과의 경기 전, 거리응원을 나온 한 시민이 말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우리나라 16강 갈 수 있다! 대한민국 파이팅! 나는 그 시민의 응원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대한민국이 승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16강에 가면 좋겠지만 우리나라가 갈 수 있을까? 이겼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그러니까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은 함께 있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새벽 2시 이후에도 경기 하이라이트와 함께 거리응원을 나온 사람들의 인터뷰 영상을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16강 진출이 확정된 이후, 그 말을 하는 시민의 인터뷰를 다시 보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은 16강행이라는 결과가 나왔으니 기쁜 마음뿐이지만, 저 사람은 어떻게 포르투갈 경기 전에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마치 응원하러 모인 군단이 간절히 바라면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그들은 16강 진출을 어떤 의심 없이 바라고 있었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광화문 광장 앞에 모인 붉은 악마 뿔 머리띠를 착용한 수많은 인파들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이태원 참사를 떠올렸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가 국가적인 트라우마라는 건 헛소리가 아니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배를 타고 여행을 할 때는 세월호를, 수많은 인파가 모인 축제 분위기에서는 이태원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배를 타는 게 아니라도, 비행기에서 내려 제주 항공에 발을 디딜 때면 어김없이 세월호를 떠올린다.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붉은빛으로 점멸하는 귀여운 붉은 악마 머리띠를 착용한, 광화문을 꽉 채운 붉은 악마 응원단 인파를 공중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볼 때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좁고 가파른 골목을 떠올리게 된다. 뉴스에서 비춘 거리 응원단의 힘찬 함성이 그날 이태원의 비명과 통곡으로 겹쳐 들려서, 나도 모르게 뉴스 화면을 돌려버린 적도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지레 포기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닐 것이다. 결국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 아닐까. 정말 그렇게 바라고 믿는 것. 바라는 것을 너머 의심하지 않는 것. 믿음의 깊이와 순수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꿈꾸는 바를 향해서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우리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십 년 전 한일 월드컵 때의 슬로건이 생각난다. '꿈★은 이루어진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간절히 이루고 싶은 그 꿈이 나에게는 무엇일까.


조별 예선을 치르는 동안 편파 판정의 부당함과 패배의 치욕을 맛본 설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강팀과의 승부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것과 더불어 16강 진출이라는 목표에 도달함으로써, 모든 서운함이 말끔히 씻겨 내려갈 수 있었다. 손흥민 선수의 환희로 가득한 얼굴을 보면서, 가슴 한켠 내내 떠오르던 최성범 소방서장의 편안한 미소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현재 진행형인 이태원 참사도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려주지 않는다.  


모두가 후련해지는 상황이 있길 바란다. 두고두고 뒤를 돌아보며 가슴을 움켜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기적만이 단단히 굳어진 가슴의 응어리를 풀 수 있다. 이태원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무도 사고를 책임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때와 다르지 않다.


좀 더 특별히 강한 인간이 있을까. 그런 건 없다. 월드컵 국가대표팀 주장도, 이십 이년 차 현직 소방서장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 초능력자도 아니고 슈퍼 히어로도 아닌 그들을 왜 영웅이라고 부를까. 그들이 남들과 다르게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자신이 맡은 일을 죽을힘을 다해 지켜내고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며,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새롭게 배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적을 품고 싶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꿈꾼다. 마침내 우리 모두가 원하는 그 모습을 볼 때까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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