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닌 누군가를 위한 마음
잘 살고 있다는 건,
어쩌면 내 마음에 이름 모를 타인이 들어올 한 뼘의 여유를 남겨두고 일일지도 모른다.
작년 가을, 구례에 있는 천년고찰 화엄사를 다녀왔습니다.
산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화엄사를 거닐며 조용하지만 깊이 스며드는 휴식을 취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중, 화엄사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구례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연기암 표지판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옳다구나!' 차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어서 중간에 '이 길이 맞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다행히 곳곳에 세워진 표지판 덕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연기암에서 내려다본 구례 전경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시간을 내서 올라오길 정말 잘했다, 싶을 정도로 탁 트인 전경을 보니 눈이 시원했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은 계곡물 소리, 상쾌한 바람에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속세에 찌든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했죠.
'이래서 사람들이 절을 찾는구나'하고 자연스레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절을 거닐던 중, 제 눈에 어떤 것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도토리였습니다.
계단 기둥 끝에 올망졸망 놓인 귀여운 도토리들을 보니 저절로 제 입가에 미소가 맺히더군요.
스님들이 동물들을 위해 도토리를 올려두신 것 같았습니다.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굶주린 동물들이 지나가다 발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치 제가 굶주린 다람쥐가 된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 마음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이 귀여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지금, 참 신기합니다.
그 이후로도 일상 속에서 종종 계단 위에 놓인 도토리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그 풍경이 화엄사의 매화 나무보다도, 연기암에서 내려다본 구례 전경보다도, 제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왜 그럴까. 너무 귀여웠기 때문일까요. 아마 그건 아닐테죠.
아마도 도토리에 담긴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을 위한 그 따뜻한 마음이 도토리가 놓인 풍경에 고스란이 녹아있었기 때문이겠죠.
저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한 마음을 발견할 때 어쩐지 울컥하곤 합니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주거나, 행동으로 배려하는 모습을 볼 때 어쩌면 이것이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작 도토리가 놓인 풍경에 유난스레 마음이 움직이는 건, 어쩌면 제 안에 저로만 가득 차있어서 그런걸까요?
빼앗기는 게 싫어서 남은 것도 남에게 내주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었던 부끄러운 손을 괜스레 주머니 속에 넣어봅니다.
나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마음 속 한뼘의 공간을 남겨두고 그들과 무언가를 주고받을 여유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내어줄 마음에 한뼘의 공간을 남겨둔다면, 그곳은 텅빈 공간이 아니라 언젠가 누군가의 온기로 가득 채워져 결국 나를 더 온전하게 만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