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 모두가 지켜야 할 소중한 저작권
"야! 내 거 따라하지마!"
아주 오래 전, 초등학교 시절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름 소문이 자자한 꼬마 만화가였다. 연습장 3장을 툭 떼어낸 다음, 반으로 접고 토막난 한 면마다 만화를 그려 이야기를 만들었다. 장르는 다양했다. 무서운 이야기, 야시시한 이야기, 놀라운 이야기 등 지금 생각하면 조잡하고 썰렁한 이야기들이었지만 당시엔 꽤 진지하게 만화를 그리고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완성된 만화는 등장 인물마다 다른 목소리를 재현해 구연하듯 들려줬다. 아이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놀라거나 즐거워 하면 그보다 더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 그리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이야기 구도, 인물, 대사까지 똑같이 베낀 후 다른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해서 따졌지만, 아이들은 "너 거 말고 다른 애 거 따라한거야" 라는 식으로 회피해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아이들 단속에 지친 나는 그 이후부터 점점 만화를 그리지 않게 되었다. 만화를 그려봤자 또 아이들이 자기 거라고 우길테니 괜한 헛수고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경험이 나에게 저작권 침해의 본질을 아주 직관적으로 알려준 최초 사건이었다. 열심히 그린 내 만화를 도둑질당한 당혹감과 불쾌함. 팬이었던 아이들조차 베낀 이야기도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며 나몰라라 수수방관하던 모습. 이는 어린 창작자의 의욕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억울한 도둑질이었고, 저작권 침해는 나의 인격과 시간을 담은 창작물을 고스란히 빼앗는 행위라는 것을 어린 나는 온몸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내가 자라는 동안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인 제도와 인식은 분명 나아졌지만, 여전히 저작권 침해는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웹툰 작가 A씨가 자신의 그림과 이야기를 표절에 가깝게 모방한 해외 소셜미디어 계정을 발견하기도 했고, 한 인디 뮤지션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에서 무단으로 업로드되어 수익이 빼앗기는 일이 발생했다. 그뿐 아니라 흔히 일상 속에서도 많은 유튜버들이 저작권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자료화면으로 쓰는 사례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저작권 침해는 더 은밀하고 복잡해졌다. 수많은 창작물을 학습한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의 저작권 귀속은 아직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디지털 콘텐츠일수록 저작권 침해는 쉽고 빠르게, 교묘하면서도 광대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날이 갈수록 점점 거대한 온라인 사회 기반을 공고히 다져가는 현상과 비례해 저작권 침해 사례도 점점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왜 이러한 일이 반복될까? 첫째, 일반 대중은 자신의 일상 속에서 저작권이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 쉽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료로 드라마나 영화, 소설, 만화, 프로그램을 다운받을 수 있는 사이트를 열심히 찾아헤맨다. 저작권의 개념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추상적이게만 느껴져서 창작물이 '마땅히 돈을 지불해야 하는 무형 서비스 및 콘텐츠'가 아닌 '잠시 손품만 팔면 받을 수 있는 공짜 서비스'라고 오인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돈을 아낄 수 있는 것만큼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없다. 잠시 눈 한번 깜빡이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미미한 죄책감만 있을 뿐. '그런 당신' 때문에 오늘 또 한 명의 작가가 절필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실은 과연 알런지.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저작권을 창작자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창작자가 아닌 일반인은 빼앗길 저작권도 없다고 쉽게 단언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인터넷 속도가 빠른만큼 온라인 플랫폼도 그만큼 빠르게 발전해왔다. 이제는 거의 모두가 소셜미디어 계정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올리고, SNS에 그림을 게시하며, 글을 쓰는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그 말은 즉슨 과거에 비해 창작자의 진입장벽이 매우 낮아졌으며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작권 문제는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비로소 '내 일'이라고 느낄 때 사태의 시급성을 느낀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인식이 여전히 미흡한 이유는 대부분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재하고, 이미 자신이 창작자란 사실도 크게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작자라는 자각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실상 저작권 문제도 자연스럽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둘째, 저작권 침해 시스템의 모호성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현재 저작권 침해는 사후 법적 처벌로 주로 다루고 있다. 이는 일반 대중에게 가뜩이나 먼 저작권의 문제를 전문가와 법적인 영역으로 멀찌감치 두고 타자화하게 한다. 여전히 사회는 저작권 침해를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개인 창작자의 간혹 겪는 억울한 사연 정도로 다루고 있다. 이제는 모두가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인 만큼 더이상 저작권 문제를 이렇게 안일하게 다뤄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늦기 전에 전국민을 대상으로 저작권 인식을 심어주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초등교육부터 창작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저작권 조기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이야기 만들기'와 '친구가 만든 이야기 존중하기'를 가르치는 활동형 수업을 통해 저작권을 감정적으로 아이들의 피부에 와닿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어릴 때의 교육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어릴 때 저작권의 바른 인식을 심어준다면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이나 교육보다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거라 기대된다.
둘째, 디지털 콘텐츠에 지금보다 더 식별할 수 있도록 한글 저작권 인식 마크를 달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영상이나 이미지, 음악 등에 저작권 존재를 직관적으로 한번 더 일깨워주고 창작자의 소중한 콘텐츠를 지켜줌으로써 소비자도 더 흥미로운 콘텐츠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셋째, 기존에 있는 '좋아요', '공감' 기능을 저작권 인식을 보강하는 활용법으로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보강된 '좋아요', '공감' 기능을 통해 창작자의 저작권 존중을 알리고 앞으로의 창작 활동을 응원하는 의미를 함께 실어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피드백을 넘어 생활 속에서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보다 자주, 꾸준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 그렇기에 이제 저작권은 모두의 문제다. 공감이 많은 이들에게 닿을수록 변화는 더 빨리 찾아온다. 다만 끓는점 100도에서 단 1도가 부족한 물처럼 우리 사회는 지금, 저작권 선진 의식에서 딱 한 걸음이 모자라다.
이 한 걸음을 내딛게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나 역시 창작자'라는 인식과 공감이다. 한 번이라도 창작을 해본 사람은 누군가의 창작물을 함부로 폄하하지 못한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자신의 창작물을 빼앗겨본 사람은 남의 창작물을 결코 함부로 빼앗지 못한다.
공감이 모이면 책임이 되고, 책임이 모이면 변화가 된다. 모두가 창작자의 마음에 공감하는 사회라면 저작권 침해는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드는 마지막 1도는 개인과 기업, 정부가 함께 내딛는 모두의 뜨거운 한 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