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적당한 불안은 오히려 잘할 수 있는 연료가 된다

불안도 때론 유용하다

by 글쓰는토마토
내 안의 모든 불안이 사라지게 해 주세요



나의 오래된 기도 제목이기도 했다. 내 안의 모든 불안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모든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강인함을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슬프게도 조그마한 트리거가 현실에 나타나는 순간 그 평안은 너무나 쉽게 휘발되곤 했다.



최근에 10만 자가량 쓰고 있던 원고를 중단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감사하게도 이미 출판사 측에서 계약을 진행하자는 제안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모종의 이유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갑자기 생긴 커다란 공백.

불안은 늘 그렇듯 공백 파고들며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의 불안의 근원은 언제나 공백과 도태였다.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지 못할 것 같은 무능에 대한 두려움.

또래보다 크게 도태될 거 같은 두려움.

손에 아무것도 쥔 것도 없이 나이 들어버린 미래.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모습.



불안은 바닥까지 내려가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나'라는 신념에 봉착하곤 했다.

도중에 원고를 그만두다니 다음에 또 글을 쓸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

또 시간을 날리고, 돈도 못 벌고, 또 그렇게 시간은 미친 듯이 빨리 흐르겠지.

그동안 넌 어떻게 할 건데? 온갖 생각이 들끓었다.



불안의 감각은 언제나 또렷하다.

빨라지는 맥박. 조여드는 가슴. 갈팡질팡하는 시야.

당장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

나는 불안 자체보다는 이 감각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토록 불안을 없애달라고 기도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익숙한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박을 느끼는 동시에,

어디선가 '그러면 어때서?'라는 한 줄기 생각이 피어난 것이다.


이어서 이런 깨달음도 뒤따랐다.

'불안이 꼭 다 나쁜 거야? 그동안 더 열심히 하는 연료가 되어 주었잖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불안을 마치 호랑이처럼 생각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불안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달려온 것이다.

마치 오랜 항해 속에서 물고기가 살아남도록 천적을 넣어주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지도 모른다.

미치도록 두려워서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지만, 동시에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감각.



구체적으로 떠올려보자. 대학 시절, 시험에 대한 불안은 수업 내용을 한쪽으로 정리하는 스킬을 익히게 해 주었다. 첫 직장에서 느꼈던 무능감은 밤늦게까지 홀로 남아 혼자 할 수 있을 때까지 내공을 쌓게 해 주었다. 프리랜서로 전환할 때의 두려움은 더 많은 자료를 준비하고 촘촘히 연습하도록 만들었다.

불안이라는 채찍질이 없었다면 여기까지의 성과는 이루어내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불안에 괴로워하더라도 그것에 마냥 압도당하지 않는 자세다.

나는 지금까지 행동으로 불안을 극복하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안은 언제나 무슨 일을 하도록 만드는 동력이 되어주곤 했다.

그걸 인정하고 나자, 불안 역시 유용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불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불안은 불처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도구였다.

즉, 적당한 불안은 오히려 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연료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불안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않으련다.

대신 이렇게 기도할 생각이다.

"불안을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불안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연료가 되도록 해주세요."



당신의 불안도 혹시 당신만의 특별한 연료가 아니었는지, 오늘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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