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 님의<애매한 재능> - 이 아닌 완벽한 재능이었다

by 글쓰는토마토

* [초록색]은 책 발췌입니다




스스로의 재능이 애매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쓰던 글을 중단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며칠째. <애매한 재능>은 답답한 마음에 꺼내든 책이었다.

주황색 표지에 선명하게 쓰인 <애매한 재능>이라는 제목이 마치 내 가슴속에서 걸어 나온 듯했다.

나는 홀린 듯이 바로 클릭을 했다.



수미 님의 글을 써온 연대기와 나의 연대기가 조금 비슷하게 느껴서일까?

읽자마자 공감하면서 푹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치열했던 20대 시절 그리고 삼 남매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의 연대기를 천천히 읽으며 따라갔다. 그 연대기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글'이었다.



읽는 내내 느꼈지만, 참으로 뚝심 있는 작가님이다.

가난한 가정 형편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꿋꿋이 선택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보통의 용기가 아니고서는 쉽게 내릴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그 시절에 어른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는 말이 '예술하고는 못 먹고 산다'였다. 그럼에도 어린 나이에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명확히 안다는 건 어쩌면 용기있는 자에게 부여된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걸 실현시킬 용기와 굳센 의지도 필요하겠지만.



['이만하면 잘 쓴다'라고 생각해 예술대학에 입학했는데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라고 낙담한 사람.]


[그나마 잘하는 것을 움켜쥐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과 비교해 애매하다는 판단이 들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루라도 빨리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끈기를 가지고 좀 더 노력해봐야 할까?]



글 잘 쓰는 아이들만 모인 예술대 극작과에서 천재로 보이는 아이를 맞닥뜨렸을 때 느꼈을 열등감과 부러움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나 역시 느껴보았던 익숙한 감정이었으므로.

그때 작가님 귀에 꽂히는 교수님의 말씀. "10년은 해봐라"

그 말이 수미 님이 일단 글을 써보자!라고 생각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교수님의 칭찬. "아동극을 잘 쓸 것 같다" 그 말에 바로 도전했다는 부분에서 박수를 보냈다. 이 사소한 시작은 후에 '사다리 어린이 희곡 공모전' 우수상이라는 창대한 결과로 이어진다.



[돈 없으면 서울이 아니라 시골에 사는 것과 같다는 깨달음이 꿈에 투영된 것만 같았다.]


[작가의 필수 조건은 재능도, 끈기도 아닌 방이라는 걸. 적어도 서울 외곽의 월세방 보증금 정도는 모아야 했다.]



그 이후로도 수미 님은 각박한 서울 살이에도 꿋꿋하게 글 쓰는 삶을 이어나갔다. 아아-. 서울 태생인 사람들은 과연 타지 사람들의 고단함과 서러움을 이해할까? 매달 월세가 디폴트값으로 턱턱 매겨지는 생활. 어디 한 곳 오래 붙어있지 못하고 학기마다, 또 변수가 생길 때마다 거주지가 떠도는 생활. 수미 님은 이런 환경에서도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수많은 일들을 하면서도 글을 놓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썼다. 정말 대단하다. 이걸 아무나 해낼 수 있을까? 절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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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수미 님의 가족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머리가 새카마시던 할머니 판임씨, 시인의 영혼을 품고 사시는 아버지, 무뚝뚝해도 속이 깊은 어머니, 1억 모으기가 목표였던 씩씩한 남동생.

객관적으로 봐도 참 힘들었겠다 싶었던 가족 내 이야기도 수미 님은 너무 무겁지 않게 중심을 잡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대끼며 살면서 이런 기막힌 사연이 없는 집은 드물긴 할 것이다. 글을 읽는 내내 가족에 대한 잔잔한 애정이 묻어난다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일상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 행해지는 그림자 같은 노동들. 아영과 나는 그 고단함을 서로 잘 알고 있었기에 ‘대단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단단하게 현실에 발을 디디고 글 쓰는 사람 옆에는 유명 작가와 무명 배우, 또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평범해 보이지만 비범한 이웃들도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생각했다. 글을 쓰고 사는 삶은, 어쩌면 주변 사람들을 세심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삶이 아닌가 하고. 때로는 멀리, 때로는 마음이 섞일 만큼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내 안으로 끌어들여와 나만의 언어로 글에 담아낸다는 점이 그랬다.



<애매한 재능>에서 작가님은 스스로를 범재라고 칭한다.

신춘문예에 당선한 적이 없어서, 출간은 이 책이 처음이라서, 무명작가라 추가 설명이 필요해서, 기타 등등의 이유로 스스로를 '범재'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단 천재의 기준이 애매하다. 그래도 흔히 말하는, 누가 들어도 '아 그 사람?' 하는 작가가 아마도 수미 님이 생각하는 천재의 영역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짐작해 본다.


하지만 나에게 천재란 그런 것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반드시 좋은 글을 쓴다는 보장은 없다.

베스트셀러라는 말에 혹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중단한 책이 얼마나 많은가?

나에게 진정한 베스트셀러는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때로는 깊은 통찰에 무릎을 치며 읽는 책이다.

그런 책을 쓴 수미 님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천재 작가'다.



[인생을 스스로의 힘과 판단으로 헤쳐 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단단함. 때로 넘어지고 흔들리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서 유유히 다시 걸어가는 그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삶을 긍정하게 된다.]



나는 <애매한 재능>이 이래서 좋았다.

스스로의 삶을 긍정하는 작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생한 고군분투기였기 때문이다.

가난이 더해진 난도 높은 삶의 과정 속에서도 수미 님은 가끔은 휘청해도 묵묵하게 현실에 발을 디딘 채 글 써온 진심이 느껴졌다. 가난과 고단한 서울살이, 때로는 억울한 상황에 놓여 가끔은 글 쓰는 것에 소홀했어도 결국은 다시 글을 썼다. 어쩌면 그 잠시 쉬는 과정도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도 겸손한 자세로 한 뼘이라도 나아진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 온 과정, 그리고 고약한 삶의 농락에도 긍정과 위트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며 살아온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한 챕터마다 꽉꽉 들어찬 에피소드, 한 문장 한 문장 내공이 느껴지는 문장이 끝까지 읽는 내내 기분 좋은 긴장감을 유지시켰다. 얼마나 많은 문장에 줄을 그었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가진 그릇이 작고 겸손해 보일지 모른다. 더 큰 그릇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더 좋은 것을 담아야 한다고 성화를 부릴 수도 있다. 지금 나는 세상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가진 그릇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연습 중이다. 비로소 ‘무언가 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시선을 스스로에게서 거둘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것은 얼마나 분명한 경지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평범한 사람의 일을 평가 절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매한 재능>을 가진 사람의 생존법을 찾으려 읽기 시작한 책에서, 나는 오히려 <완벽한 재능>을 가진 소중한 작가를 만나게 된 것 같다.



지금의 창원에서 삼 남매를 키우면서 글을 쓰고 계신 작가님.

한 명의 좋은 피드백만 있으면 계속 쓸 기운이 나신다고 했던 부분이 기억이 나네요.

신간이 나오면 좋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책이 아닌 형태라도 곳곳에서 수미 님이 쓰신 글을 읽고 싶어요.

진한 공감을 하며 읽을 수 있는, 옹골차게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북토크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때까지 함께 화이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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