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처럼 끝까지 명랑하고 싶어
어릴 때 나는 지금보다 좀 더 밝고 사람들에게 마냥 호의적이었던 것 같다.
의심할 줄도 몰랐고, 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때로는 눈치가 없기도 했다. 마치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좋아하는 사람들을 무척이나 믿고 따랐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크고 밝은 목소리로 이름을 힘껏 불렀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동안 궁금했던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물어보기도 했다. 요즘 말로 파워E의 모습이라고 해야할까?
그랬던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아무래도 이런 내 성격이 사회생활에는 불리하게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일단 사람들이 밝고 목소리가 큰 사람을 꺼려했다. 목소리가 커지면 미묘하게 눈총을 쏘아보낸다. 심지어 반갑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냉소를 짓고 왜 저렇게 호들갑이냐고, 좀 조용히 하라고 앞뒤로 타박을 하기도 했다. 이게 장난스럽게 타박하는 정도였다면 나는 그냥 생긴대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거기다 우리 팀은 회사에서 가장 조용하고 음침하다고 소문난 팀이기도 했다. 남자 3에 여자는 달랑 나 하나뿐인 팀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계속되는 말없는 타박에, 눈총에, 조금씩 깎여져갔다. 마치 모난 것마냥 정을 막고 둥글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내가 잘못된 것처럼, 잘못을 한 것처럼 그런 기분을 계속 느끼게 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그 후에 마치 메아리처럼 죄책감 몰려들기까지 이르렀다. 어느새 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계속 되었고, 그와 동시에 또 한가지 파워게임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사람들이 착하고 다정한 사람들을 은근히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따뜻하고 양보도 잘하는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곤 하지만, 뒤에서는 '우유부단하다', '착한 척 한다'라는 험담도 쉽게 붙곤 했다. 사람들이 뒤에서는 그렇게 욕하고서는 앞에서 또 태연하게 그들에게 도움을 요구하는 모습을 나는 많이 목격해왔다.
나는 착하지도 다정하지도 않고, 호불호도 자기주장도 강한 사람이었음에도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호의가 있었다. 스스로의 성향을 누르고 살았지만, 그럼에도 천성적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넘쳤고, 나와 주파수 맞는 사람들을 찾아 안테나를 쫑긋 세우곤 했다.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많아서일까? 사람들에게 질문도 곧잘하고 관심을 기울여 이야기를 듣곤 했다.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속한 조직에서 나 같은 사람은 정말 드물었고 특이한 사람이 되어갔다. 특이하다는 건 소수로 고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슨 말을 해도 겉돌고 조금도 공감받지 못하는 분위기랄까. 다시 생각해도 괴로울만큼 끔찍한 소외감이다.
비단 조직뿐만 아니라, 세상은 명랑한 사람을 억까(억지로 까내리기)한다.
명랑하고 다정하고 해맑은 사람들에게 싸늘한 냉소를 보낸다. '왜 저래?', '왜 저렇게 나대?' 라는 표정으로 명랑한 사람들을 까내린다. 그들은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안심을 하면서도, 곧장 그들 위에 서려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게 마치 우위를 서게 만드는 무기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 눈빛을 기억한다. 거부하고 냉소를 짓는 그 표정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 눈빛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나도 냉소를 학습하고 그들 편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그렇게 변했다고 믿고 살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냉소와 비난은 약자들이 하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자신들의 불안과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취한 본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분명 그렇다. 세상을 승자와 패자로 나눈다면 승자의 모습이 저렇진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호의를 아무렇지 않게 뭉개는 사람이 승자는커녕 제대로 된 인간일리도 없지 않은가.
세상의 눈총에도 늘 명랑하게 웃는 사람.
호의를 베풀고 먼저 따뜻하게 인사를 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
이런 사람이 귀한 사람이고 세상에 이로운 사람들이 아닐까?
나는 지금 명랑과 냉소 사이에 머물러 있다. 나쁜 건 참 물들기 쉽고 물을 빼기도 힘들다.
그래도 적어도 이 과정을 겪으며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명랑한 사람들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큰 용기와 사랑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특이한 것이 아닌, 특별한 사람이었다.
사회의 냉소로 찌든 내 마음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 정해졌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언젠가 나의 명랑함을 모두 되찾을 수 있도록.
그러면 적어도 명랑한 할머니는 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