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억지 긍정(Toxic positivity)

때로는 약이 되지만, 또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는 것

by 글쓰는토마토
안 괜찮은데 '괜찮다'라고 말하면 정말 괜찮아질까?


내가 오래 품어온 질문 중 하나다.

어떤 안 좋은 상황이든 '괜찮다, 분명히 괜찮아질 거다'라고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나아가 마음 속 상처도 낫게 해 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이런 긍정 방식은 크게 두 가지 분류에 따라 다른 효과를 주었다.

어떤 때는 약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오히려 독이 되기도 했다.




<억지 긍정이 약이 될 때>

이럴 때는 억지 긍정이란 말이 '파이팅 정신'으로 흔히 치환되곤 한다. 돌이켜 보면 이 파이팅이 분명 힘이 되었다. 특히 일적인 영역에서 그러했다. 남들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던 일에 매달리면서 긍정에 긍정을 더해가며 스스로를 다독였던 순간들. 그 결실을 맺었던 순간들이 꽤 많았다.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특히 그랬다. 공부, 자격증, 업무들. 몹시 어려워 보여도 해결할 수 있는 영역에 있는 일은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되뇌는 "괜찮다.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될 거다" -- 이 때의 억지 긍정은 분명 긍정이고, 동력이며,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이 억지 긍정의 불가침 영역이 있다. 바로 감정이다.




<억지 긍정이 독이 될 때>

누군가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인간관계에 시달리다 결국 관뒀다는,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였다. 뻔한 이야기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일하는 대부분 사람들이 겪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각자 느끼는 그 말의 울림은, 정도도 종류도 다르다. 겪었던 경험이나 사연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 때문에 퇴사했다'는 말을 듣고 내 안에 무언가가 불꽃처럼 확 타올랐다.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체념인지 무슨 감정인지 정확하게 해석이 되진 않았지만 그 감정들이 내 마음 안에서 마치 늘 마련된 장작처럼 불을 지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괜찮다고, 그 경험을 통해서 나름대로 무언가를 배웠다고 스스로를 충분히 납득했다고 믿었는데 언제, 왜 내 안에 이런 커다란 응어리가 남아있게 되었을까?


나의 10대 20대는 그닥 유쾌하지 않은 인연들이 꽤 촘촘히 채워져 있다. 함께였지만 어쩐지 더 외롭게 만드는 학교 친구들과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난 가스라이터와 나르시시스트들, 교환학생 때 무리지어 따돌리던 유학생들, 직장에서 호되게 겪은 인간관계.

물론 그 반대편에는 내게 이유없이 잘해주었던 고마웠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 대신 이들을 떠올리려 애썼다. 다 지난 일이라고, 그들을 미워하면 나만 손해라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독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들을 하나도 잊지 못했다. 분명 언젠가는 잊히겠지만, 여전히 그 시절 그 때 그 순간에 멈춰진 감정들이 흘러가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다.



<감정은 엄연한 사실이다>

아마 내가 이토록 잊지 못하는 이유는 내 감정을 오랫동안 '긍정으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감정과 마음에 역행하는 억지 긍정을 해온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괜찮아지고 싶어서 서둘러 괜찮다고 생각했고, 고통이 올라와도 못 본 척 얼른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감정 억압'이라고 부른다. 느껴지는 감정을 없애거나 다른 감정으로 빠르게 교체하려는 시도. 이런 시도는 한시적인 착시 효과를 줄 수는 있지만, 문제는 감정이 그 순간 다른 감정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이미 느낀 감정이 뿅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리되지 않은 감정은 반드시 내 안 어딘가에 누적되어 응어리지고 언제고 불시에 터져나온다.



내가 느낀 감정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것이 부정적이고 추레할지라도, 내가 느낀 감정이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너무 용쓰지 말자. 긍정적 사고방식에 끼워 맞추려는 것이 오히려 자기 부정이고, 어쩌면 학대 행위일 수도 있다. 이미 몸으로 느낀 감정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 할 수만 있다면 인정을 넘어 존중까지 해줄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다.




<누구를 위한 긍정이었을까?>


한 가지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내가 억지로 괜찮다고 말했던 건 순전히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힘들다고 말하면 상대방이 나를 낮잡아 볼 것 같았다. 아직도 그 일을 오랫동안 끌고 다닌다고 볼까봐. 무언가 모자란 사람처럼, 유리멘탈처럼 보일까봐.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고, 하더라도 금방 후회하곤 했다.


그러니까 억지 긍정 안에는 이런 마음도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강한 사람이야. 나는 과거에 붙들려 있지 않아. 상처받은 나 자신으로 있기가 너무 괴로웠기에, 그 상처를 극복한 나를 연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심지어 내 벌거벗은 마음 앞에서도.



억지 긍정은 치유가 아니라 자기 연출에 가깝다


그 연출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다 사회에서 적절한 탈을 쓰고 살아간다. 나를 위해, 사회를 위해.

다만 그게 너무 습관이 되면, 어느 순간 나조차도 나의 진짜 감정을 잘 모르게 된다. 진짜 괜찮은 건지, 아니면 괜찮아 보이고 싶은 건지.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


이제 나는 예전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무턱대고 긍정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힘들었던 기억들이 올라오거나 살면서 무례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 감정 그대로를 그냥 느끼기로 했다.


그 감정을 느끼고 느끼다 보면, 어느새 그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나를 관찰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마치 건물 안에서 쏟아지는 우박을 바라보듯이. 여전히 우박은 세차게 내리고 있지만, 나는 안전한 집 안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 거리감, 그게 달라진 것이다.


그 시간을 스스로에게 충분히 허락하고 나면 비로소 상황과 감정을 떼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가 생긴 자리에서 내가 진짜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억지 긍정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그냥 충분히 아파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 둘을 구분할 줄 아는 것, 그것이 평생의 숙제가 아닐까.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면 괜찮아질까. 답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내가 느낀 감정을 긍정하는 것.

그것을 긍정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진정한 긍정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