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러시안룰렛처럼 돌아가던 왕따의 기억

트라우마의 고리를 끊는 건, 결국 내 몫이었다

by 글쓰는토마토




'왕따'라는 말이 처음 생겼을 때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처음으로 '왕따'라는 단어가 생겼을 때 입니다.

당시 저희 반에는 6학년 일진 언니를 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교실 분위기를 장악하며, 돌아가며 왕따를 지목했습니다. 이유는 터무니없었습니다. 빨간 안경을 썼다, 선생님에게 예쁨을 받으려 한다, 잘난 척을 한다, 뒤에서 험담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등등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이유였습니다.

그 아이는 말을 매우 잘했습니다. 상대를 불리한 입장으로 몰아가고 군중심리를 조종하는 데 능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자신이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그 아이의 비위를 맞추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 뒤에서라도 불만을 이야기하면 금세 일러바쳤고, 그러면 새로운 왕따가 생겼습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입에서 왕따 이유가 완성되기 때문이죠. 당시 우리는 고작 열 살이었지만, 서열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속도는 어른 못지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어렸기 때문에 무리에 벗어나는 공포를 본능적으로 빠르게 체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과 답답함이었습니다. 6학년이 되어 그 아이와 반이 갈라졌지만, 여전히 5-2반의 공기를 빽빽하게 메우던 긴장감은 제 안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새 무리에서도 본능적으로 서열이 센 아이를 찾고, 분위기에 맞춰 제 행동을 조절했습니다. 친구가 개개인의 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제 곁을 지켜줄 세력으로 보였습니다. 그 친구가 좋아서 사귀는 것이 아니라,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친구를 사귀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모두가 공평한 친구 관계여야 한다는 말은 이상에 불과했습니다. 특정 누군가가 분위기를 크게 좌우하는 순간, 이미 관계는 기울어져 있었으니까요.

만약 그때,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누구라도 나서서 한 마디 해주셨다면 어땠을까요?

"어떤 이유에서든 한 사람을 배척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어. 그런 분위기를 만든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거야."

그런 말을 들었다면, 저는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그 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분위기에 순응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이때의 경험이 제 안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따라는 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왕따는 은따로 탈바꿈했고, 사회에 나와 보니 이제는 그런 단어조차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군요. 왜냐하면 주동자가 자신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아주 은밀하고 교묘하게 사람들을 괴롭히기 때문이었죠. 무리에 낙오되는 순간 타깃이 되고,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뒤에서 근거없는 풍문을 듣고 씹어댑니다. 평판도 능력인 직장에서 그 순간부터 악화일로를 걷게되죠.

사람들은 '왕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로 두 번 돌을 던집니다. 그리고 손쉽게 그 이유를 찾아내죠.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이유를 찾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누구든 단점 하나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은 이래서 배척당하는 거야' 라는 식의 논리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정녕 그것이 모두 진실이던가요?




트라우마에 갇혀있는 동안 저는 세상이 하나의 목소리만 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나 vs 무리로 세상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보지 못한 채 사람을 단순한 프레임 속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여자, 남자, 연령, 특정 지역, 직종과 직업 등등. 그들이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저는 이미 그들을 특정한 이미지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무리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너무 애쓴 나머지, 저 역시 모두를 틀에 가두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무리지으며 그들은 다 똑같다고 여기며 먼저 사람들을 마음 속에서 밀어냈습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미리 방비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은 계속 답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과 소통하는 은밀한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외딴 행성에 혼자 남겨진 듯한 외로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좁은 세상은 조금씩 서서히 깨지고 있었습니다.

두려워도 계속 도전하고,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부딪혀 가면서 관계를 만들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비슷해 보였던 사람들도, 결국 그 순간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는 것. 머릿속으로 한 부류로 묶어두었던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서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는 것.

사람들을 만나보니 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여자들도 있었고, 여자들끼리의 기싸움을 혐오하며 진심으로 우정을 소중히 지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일본인 중에서도 누구보다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또한 당연한 말이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떠드는 진실과 현실 세상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각기 다른 '한 사람'이라는 것을요.

성장 환경도, 성별도,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단지 그 사람을 이루는 수많은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결국 누구도 하나의 부류로 묶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걷어내니, 거대한 벽처럼 보였던 '무리'가 사라지고, 그 속에서 각기 다른 얼굴을 한 '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 자신조차도 스스로 만든 틀에 갇혀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마침내 제가 갇혀 있던 그 단단하던 틀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요.

그제야 무리에 가려져 있던 '진짜 나'를 발견해낼 수 있었습니다. 조금씩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제 앞에 앉은 사람의 이야기도 진심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망이 없다고 믿는 순간에도 내 안의 무의식은 조용히 더 나아가려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너 힘들만 해." 스스로의 고단함을 이해해주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사연이 있어."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도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나의 서서히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괴로운 경험이었지만, 어쩌면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 모든 시간을 지나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그 시간을 견뎌오며 배웠습니다.

트라우마란 결국 나만이 이해하고, 나만이 풀어낼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