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남의 말은 흘려듣는 게 낫다
경청의 신화, 깨부수기
경청. 이제는 귀에 익숙할 정도로 흔한 단어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 듣고, 적극적으로 들을 자세를 취하는 것. 어느 순간부터 경청은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로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서로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이 '경청'이라는 단어를 초등학교 도덕시간에 배웠습니다. 도덕 시험 주관식 문제의 정답으로 경청이라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경청은 어릴 적부터, 즉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부터 교과서로 먼저 배웁니다. 물론 도덕 시간에 배웠다고 해서 모두가 실생활에 실천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에서 지향하는 태도가 경청이라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경청은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며, 반대로 말하면 '경청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전제가 은연중에 깔려 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경청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경청이 오히려 해가 될 때도 있지 않을까?
제가 오늘 말하고 싶은 건, 경청에 대한 일종의 딴지걸기입니다.
저 역시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경청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고 공감해주는 것, 그것이 곧 예의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너무 열심히 경청해서 후회한 적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부모님 말이 그렇습니다. 이런 말하기 불편하지만, 부모도 자식에게 가스라이팅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예가, 흔히 말하는 부모 자격 없는 부모들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이런 부모의 말을 경청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말은 차라리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이 그 아이의 인생에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부모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욕하는 말이라 해도요. 아직 마음의 방패를 만들기도 전에, 아이들은 그런 부모의 말을 그대로 마음 깊이 받아들입니다. 자신이 한없이 못났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부모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게 됩니다.
어릴 때 만들어진 이 구멍난 마음은 평생 동안 그 사람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 아이들은 언제나 자신이 틀렸다는 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모두 옳다고 여기고, 심지어 자신이 느끼는 감정조차도 부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타인의 말을 따르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며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자기 결정권을 포기해 버립니다.
이런 무거운 이야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경험이 있을 겁니다.
친구나 동료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교묘한 조종과 깎아내리기에 불과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에게 양보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 알고 보니 내게 죄책감을 주기 위한 떠넘기기였던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차라리 한쪽 귀로 흘려버리는 게 더 나았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이 악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결국 다른 사람의 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릅니다. 각자가 겪고 본 만큼 느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른 채, 단편적인 사연이나 상황만 듣고 조언하는 것은 어쩌면 경청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가장 먼저 자신이 자신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인정하고,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결국 내 삶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 뿐입니다. 본인만이 자신의 선택을 납득할 수 있으며, 설령 그 선택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자신의 선택이었기에 후회가 적습니다. 반대로 남이 시키는 대로 따르다 보면, 결국 남 탓만 하게 되고 허무함만 남을 뿐입니다. 그러면 관계도, 자신감도 잃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내가 홀로 바로 서야 비로소 타인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홀로 바로 선다는 것은 자신만의 주관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은 소중한 결론들의 모음. 그런 것들이 많아질수록 흔들리지 않고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흘려들어야 할 말과 새겨들어야 할 말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말에 흔들리지 않고, 설령 그 말이 마음에 박히더라도 오래 담아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청이 미덕이 된 지금, 다른 사람들의 말을 흘려듣는 것도 어쩌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말들이 떠돌아다닙니다. 그걸 다 일일이 들을 필요 없습니다. 내가 듣는 모든 말이 나를 위한 조언이거나 삶의 지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말이 들려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