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는 돌고돌아-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흔들리고, 깨지고, 결국 나에게로

by 글쓰는토마토





꼬마 시절, 나는 소위 글짓기 대표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담임 선생님의 눈에 띄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와 지역 대표로 글짓기 대회를 나갔었다.

운 좋게도 대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나가면 크고 작은 상을 타왔다.

아마 워낙 작은 시골 군 마을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그러던 열일곱살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글짓기 대회를 나가달라는 담임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한 이후부터였다.

그때 왜 그런 증상이 나타났을까?

돌아보면, 아마도 자만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의 나는 몹시 불안했다.

지난 3편(N송합니다)과도 약간 이어지는 내용으로 끊임없이 땅굴을 파는 흑역사 방출 시기와 맞물린다.

그 당시 나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음은 '반항심'과 '자기연민'이었다.

오로지 그것만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다.

지금에 와서야 그때를 이렇게 정의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내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고 그저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안이 많은 사람은 그 반작용으로 자만심이 과장되게 드러난다고 한다.

불안과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심리로, 반대 방향인 자만심과 허세를 부풀리는 방식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나의 가치를 더 크게 보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선생님이 내 가치를 좀 더 인정해주며 한 번 더 나에게 글짓기 대회를 나가달라고 부탁하길 바랬다. 하지만 그때 선생님은 내가 거절하자 싸늘한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 그렇게 해서 얼마나 잘되는지 보자."

경고를 날리고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리고 이후로 다시는 내게 글짓기 대회를 권하지 않았다.

그 말이 내안에 단단히 박혔다.

그냥 흘러들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 말을 내 스스로에게 내리는 저주처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정말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글을 못 쓰게되자, 나는 자책과 자괴감에 빠졌다.

괴로웠고 부끄러웠다.

대학교 레포트는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담아 쓰는 글은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그때의 내가 낸 결론은 이랬다.

"나의 어리석은 자만심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탈렌트를 도로 가져가신 거야."

작고 하찮은 탈렌트일지 몰라도 그것이 내겐 전부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빼앗긴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남은 것마저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20대 내내 자만심을 병적으로 경계하며 살았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자만심을 지나치게 경계하다보니 결국 '자기부정'으로 이어졌다.

내가 잘한 일은 작게 축소하고, 남이 한 일은 크게 확대했다.

내 감정, 마음, 생각은 늘 석연치 않게 느껴졌고, 타인의 말과 감정은 언제나 더 타당해 보였다.

자존감은 점점 바닥을 쳤고, 불안은 점점 가속화되었다.

모든 일을 비장하게 받아들이고, 사소한 일에도 집착하며 강박적으로 굴었다.

그리고 완벽주의는 극에 달했다.



그러다 20대 후반, 깊었던 땅굴도 결국 끝에 다다랐다.

그 끝에 이르자, 나의 모든 심적 에너지 고갈되어 버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것이 역설적으로 체념과 수긍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했으니, 이제 됐다. 후회 없다.

툭 털어낼 수 있었다.



"그래,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인 사람이다."

그렇게 진정으로 내려놓기 시작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게 난데, 그래서 어쩌라고." 턱을 치켜올릴 수 있는 뻔뻔함도 생겼다.

그때서야 나는 '실제 나'는 결코 '되고 싶은 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돌고돌아 드디어 스스로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나는 자만심이라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갔다.

하지만 그 배는 자기 부정이라는 암초에 단단히 걸려 부서졌고,

체념과 수긍이라는 호된 폭풍우를 맞아야 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나 자신이라는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 신기하게도 저주가 풀렸다.

실타래처럼 마구 엉켜있던 마음들이 한 올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나에게 글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거울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볼품없는 내 모습이 드러날까 봐, 마주하기 싫어서.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있는 그대로가 가장 가치 있다.

비교하지 않고, 꾸미지 않고,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짜이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구려도, 그게 가장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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