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늘 크고 작은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가지 도전과 어려움을 끊임없이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다. 질병, 사고, 이혼, 파산, 죽음 등 커다란 시련도 있지만,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인간관계에서의 사소한 갈등이나 자그마한 실수 혹은 짜증스러운 일 등 자잘한 어려움도 모두 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시련이다. 모든 일이 언제나 다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그는 아마도 사람이 아니라 신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시련은 2001년 3월 초 어머님이 갑작스레 하늘의 부르심을 받으셨을 때 찾아왔다. 그리고 2년 반 뒤에 아버님마저 어머님의 곁으로 가셨다. 대학초년 시절부터 같은 과 커플이었던 두 분은 평생을 동갑내기 친구처럼 다정하게 사셨고, 나는 늘 대화를 나누시던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어울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성장했다.
어느날 문득 고아가 되어버린 나에게 견딜 수 없이 큰 슬픔으로 다가왔던 것은 이제 영원히 어머님 아버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단 10분만이라도 좋으니 어머님 아버님과 다시 마주 앉아 아무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들이 무슨 일을 하든 대견해하고 지켜봐 주시던 두 분이 이 세상에 더 이상 계시질 않으니, 무슨 일을 해도 도무지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결국 수 년간 상당한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긍정적 정서와 회복탄력성의 힘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면서 무기력증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많은 어려움들을 점차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3월에 <회복탄력성> 초판이 출간되었으니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감사하게도 그동안 <회복탄력성>은 많은 분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많이 받았다. "회복탄력성"이란 말은 이 책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책을 낼 당시만해도 "회복탄력성"이란 말이 너무 어렵다, 마치 물리학이나 경제학 개념 처럼 들린다 등등의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지 수년만에 마치 원래 우리 말에 그런 단어가 있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일상적인 용어가 되어 버렸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회복탄력성"이란 말을 제목에 내건 책만해도 수십권이 나왔다.
2011년에 출간된 이 책은 2015년 중앙일보에서 보도한 "학문분야별 최다 인용 저역서 랭킹"에서 사회과학부문 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4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학자들이 학술논문을 작성할 때 이 책을 인용했다는 뜻이다. 3위를 차지한 정치학의 고전인 데이빗 헬드의 책이나 5위를 차지한 사회학의 고전인 울리히 벡의 책을 제치고 출간 4년만에 사회과학 전체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인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학술서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감사한 일이다. 학자들이 학술논문 쓰는 경우에 즐겨 인용하는 학술서이니만큼, 사실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해서 쉽게 씌여진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놀랍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감사하기도 하다.
인간과 사회에 관한 다양한 현대의 학문들은 병적인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에만 주로 촛점을 맞춰왔다. 잘못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인간과 사회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학문의 기본적 존재 이유라는 암묵적인 가정이 여러 학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예컨대 심리학은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를 어떻게 하면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루며 이상심리학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경제학은 대공황이나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급속하게 발전했으며, 정치학은 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지 않는가, 폭력적이고도 억압적인 정치체계는 왜 생겨나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많은 발전을 해왔다. 사회학 역시 계급간의 갈등을 비롯한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발전해 왔다.
현대의 커뮤니케이션학 역시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여러가지 문제나 장애를 해결하는데에 주로 촛점을 맞춰 왔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가장 많은 연구 논문이 생산되는 주제가 소통 장애나 커뮤니케이션 불안증 등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들의 소통 능력을 더욱 더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개인이나 사회를 더 높은 곳을 고양시키기 위한 연구는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더 높고 훌륭한 상태로 고양시키고자 하는 이론들은 이제는 장자 철학이나 공자 사상, 그리고 스토아 철학자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2천년전 로마시대에 활짝 꽃을 피운 수사학 이론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해결 보다는 주로 훌륭한 연설가를 길러내기 위한 방법에 집중하였다. 예컨대 12권에 달하는 퀸틸리아누스의 <웅변가 교육>에는 기본적으로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뛰어난 연설가가 될 수 있다는 입장 잘 나타나 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소통능력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나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소통능력을 더욱 고양시키는 방법 역시 현대 사회에서도 반드시 연구해야 하는 주제라는 확신과 사명감을 갖고 이에 관한 연구에 오래전부터 매달리기 시작했다. 소통능력은 결코 말만 그럴 듯하게 잘하는 언어구사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소통능력의 기본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건강한 인간관계는 사랑과 존중이라는 두 축에 의해서 유지된다. 소통능력이란 결국 인간관계 속에서 사랑과 존중을 실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랑과 존중의 능력은 곧 호감과 신뢰를 줄 수 있는 능력이며 이는 설득력과 리더십의 바탕이 된다. 이러한 소통 능력의 향상은 긍정적 정서의 함양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소통능력에 관한 연구를 하던 중, 회복탄력성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인간관계능력을 회복탄력성의 중요한 요인을 파악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수십년간 수십명의 학자들이 서로 다른 개념과 다양한 이론들을 통해 회복탄력성에 대해 다양한 연구들을 남겨 놓았는데, 개념과 이론은 달라도 회복탄력성의 근저에는 인간관계능력이 자리 잡고 있음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소통능력을 연구하던 내가 회복탄력성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소통능력은 마음근력의 기초다. 소통능력을 향상시켜야 강한 회복탄력성을 지닐 수 있게 된다는 것과 소통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긍정적 정서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논지다. 긍정적 정서는 변연계의 도파민 회로가 가져다주는 보상체계의 짜릿한 쾌감과는 거리가 멀다. 소통능력과 관련되는 긍정적 정서는 전전두엽의 활성화와 연관이 깊은 행복감이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감이다.
내측전전두엽 중심의 뉴럴네트워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정보 처리를 할 때 주로 활성화된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감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긍정적 정보를 처리할 때 얻어진다. 나에 대한 긍정적 정보처리의 대표적인 것이 자기용서, 자기수용, 자기존중이다. 타인에 대한 긍정적 정보처리에는 타인용서, 타인수용, 타인존중이 있다. 나와 남을 용서하고, 수용하고, 존중함으로써 진정한 행복감이 얻어진다. 감사하기는 나와 타인에 대한 긍정적 정보처리를 한꺼번에 함으로써 강력한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 감사한다는 것은 나와 남을 동시에 긍정하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어떤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적 결단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만약 당신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특정 조건들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조건의 충족은 당신에게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더 크다.
행복이 특정한 조건 (돈, 권력, 지위, 명예, 성공, 사회적 평판, 외모 등등)에 의존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 특정한 조건을 숭배하고있는것이다. 돈을 숭배하는 사람은 돈을 벌수록 늘 자신이 돈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권력을 숭배하는 사람은 권력을 얻을수록 자신의 힘이 약하다고 느낀다. 지위를 숭배하는 사람은 높이 올라갈수록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만 바라보며 더 높이 올라가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외모를 숭배하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보며 자신의 단점만을 바라보고 스스로의 매력이 부족하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이처럼 행복의 조건은 오히려 불행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강력한 회복탄력성의 기반이 되는 진정한 행복감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긍정적 태도에서 오는 것이지 외부적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관계가 건강한 사람이다. 소통능력의 핵심은 자기 자신과 긍정적인 내면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인관계는 내면관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을 약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부정적 정서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에서 좌절감이 나오고 좌절감에서 분노가 싹튼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행복의 조건이라고 굳게 믿는 것을 얻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다른 하나는 이미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을 혹시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한다. 이러한 두려움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내가 얻고자 하는 성공이나 성취가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만 한다.
나의 행복은 나의 내면적 결단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아서 어떠한 실패나 역경도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나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든, 나에게 어떠한 삶의 조건이 주어지든 늘 만족할수 있다는 오유지족의 상태가 되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지고 따라서 두려움도 사라진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당연히 적극적 도전성이 생긴다. 이것이 회복탄력성이다. 실패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 상태가 곧 회복탄력성을 지닌 상태다.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지금 이대로 오롯이 존재하게 되면 거기에 무한한 행복이 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말처럼,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진 상태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려도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진정한 행복이다.
회복탄력성에 대한 흔한 오해중에 하나는 성공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갖고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집념을 지닌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강한 집착이나 집념은 오히려 회복탄력성을 떨어뜨린다. 부정적 정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은 성공에 대한 강한 집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음에서 나온다. 회복탄력성은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지닌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지니되, 그 목적 달성 여부에 얽매이거나 전전긍긍하지 않는 삶의 태도가 회복탄력성을 가져온다.
회복탄력성이 약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습관적으로 유발한다. 자신과 남에 대해 분노하고 증오하고 미워하고 공격적인 적대감을 지닌 사람은 마음근력이 허약한 사람이다. 두려움과 분노와 스트레스에 가득차 불행감을 느끼는 사람은 회복탄력성이 약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요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이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현대 사회는 어려서는 부모의 인정, 커서는 사회적 인정에 중독되도록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인정과 선망과 칭찬에 짜릿한 쾌감을 느끼도록 훈련받으며 자라난다. 그 결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에 주는 쾌감에 중독되어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추구하느라 자신의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한다. 혹시 무시당하거나 비판이나 경멸을 받게 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두려움에 떨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실패나 역경 자체를 두려워한다기보다는 그것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의 무시나 비난을 더 두려워한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긍정적 정보 처리를 통해 진정한 행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고자 갈망하는 중독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만 나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건강해지고, 그래야 긍정적 정서가 유발되며, 그래야 회복탄력성이 생겨난다.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져 "심무가애, 무유공포"의 상태에 가까와질 수 있다. 그래야 어떠한 상황에서든 스스로 오로지 만족하는 자가 되어 어떠한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세상의 평판이나 다른 사람의 인정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강력한 회복탄력성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어떠한 실패나 역경을 겪는다해도 그것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되튀어오른다.
긍정적 정서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공동체의 문제다. 행복감이나 불행감 모두 전염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부정적 정서를 유발하게 되면 그 불행한 감정은 그 주변사람 모두에게 곧 전염된다. 나의 불행감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함부로 부정적 정서를 표출하여 우리 주변 사람들을 불행감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일 권리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의무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감을 유지하는 것은 따라서 개인적 권리이기 이전에 공동체적 의무다. 회복탄력성은 사실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강력한 회복탄력성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꼭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학문들은 늘 사람을 피동적인 존재로 전제해 왔다. 사람의 태도와 행동과 인식이 객관적인 "사회-경제-문화-정치적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아 왔다. 인간의 의지 밖에 존재하는 "사회 구조"가 독립변인이고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그에 의해서 결정되는 종속변인이라는 관점이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세계관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나 혁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개인의 의지, 행동, 생각이 사회구조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독립변수일 수도 있다는 관점도 늘 열어 놓아야 한다. 보다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그래야만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보다 나은 세상으로 변화되어가기를 원한다면 인간을 독립변수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물론 사회적 구조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구조만 바라보면서 모든 탓을 구조로 돌려서는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 인간이 정치-사회적 조건에 의해서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만 살펴볼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정치-사회적 조건에 어떻게, 언제, 얼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한 개인이 그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켜가려면 강력한 회복탄력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의 원고 작업 내내 글의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고 잘못을 바로 잡아준 서울대 언어교육원의 한은경 박사님에게 깊이 감사한다. 내 회복탄력성의 근원인 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세상 빛을 보기 어려웠을것이다.
2019년 3월 석수 김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