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적 질서와 내향적 펼쳐짐 (1/6)

Bohm's Implicate Order and Enfolding

by 김주환

내면소통에 있어서 "내면"의 의미

내면소통은 외면소통과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다. 내면 소통은 소통의 본질적인 특성이 "내면적"이라는 것을 강조한 개념이다. "내면적"인 것은 의식의 본질적인 모습이며 나아가 우주의 기본적 작동 원리와도 직결되어 있는 개념이다. 내면소통이 "우주의 작동원리"와도 직결되어 있다는 주장은 얼핏 한 커뮤니케이션 학자의 소통의 중요성에 대한 과대망상적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살펴보게 될 물리학자 데이빗 봄의 기본 개념들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이것이 결코 과장된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내면소통에 있어서 "내면"이라는 말 속에는 여러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지만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봄의 핵심 개념인 내재적 질서(implicate order)와 내향적 펼쳐짐(enfolding)이다. 내면소통의 내면은 편의상 "inner communication"으로 간단히 표기하지만 사실 내면소통에서의 "내면"에는 내재적 질서와 내향적 펼쳐짐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즉 내면소통은 외적인 소통(대화, 매스컴 등)과 대비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외적인 소통은 내면소통의 한 특수한 형태이며, 듣기와 말하기는 전체(wholeness)로서의 하나의 과정이다.

내면소통의 개념적 기반이 되는 내재적 질서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고전물리학의 토대가 되는 기계론적 세계관의 한계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뉴튼 물리학이라 불리우는 고전물리학이 보여주는 세상은 이해하기 쉬운데 반해 현대물리학이 제시하는 우주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현대물리학은 이론 자체가 어렵고 그 바탕이 되는 수학이 어려워서 그렇다고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이해하기 어려운 핵심적인 이유는 그것을 설명하는 수학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뉴튼의 물리학이나 중력의 법칙도 수학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고전물리학의 복잡한 방정식들을 우리가 다 수학적으로 이해하기에 고전물리학을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가시광선의 특성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뉴튼의 광학이론을 우리가 다 이해하기에 빛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고전물리학이 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고전물리학이 그려내는 우주의 모습과 움직임의 법칙이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내용과 직관적으로 잘 부합하기 때문에 쉽게 느껴지는 것 뿐이다. 뉴튼물리학의 관성의 법칙이라든지 물건을 하늘 높이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점점 속력이 감소하면서 정점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점점 속력이 빨라지면서 (중력가속도) 땅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의 우리의 경험과 잘 일치한다. 그래서 쉽게 느껴지는 것 뿐이다.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의 수학적 증명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그것이 설명하는 우주와 만물의 작동 방식이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내용과 직관적으로 잘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입자가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든지, 알갱이 하나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든지, 서로 아주 멀리 떨어진 입자끼리 정보 교환 없이 동시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든지, 인간의 관찰에 의해서 입자의 상태가 변한다든지, 중력에 의해서 공간이 휜다든지, 속도에 의해서 질량이 더 무거워진다든지,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간이 느려진다든지, 질량이 곧 에너지라든지 하는 내용들은 이 세상 사물들의 실제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적 내용과는 상당히 괴리가 있기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고전물리학보다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더 정확하게 이 세상을 모습을 설명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고전물리학과 양자역학은 마치 천동설과 지동설처럼 서로 양립불가능한 것인데 우리는 양자역학의 설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더 옳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완벽한 이론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은 헛점 투성이의 이론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고전물리학보다는 훨씬 더 설명력이 뛰어난 이론이다.

물론 고전물리학만 갖고도 축구공이 어떻게 날아갈지, 비행기나 미사일이 어떻게 날아갈지, 대포나 미사일을 어떤 각도와 힘으로 쏘아야 하는지 등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인간적인 일들은 모두 다 충분히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어느 정도 "대충" 계산해도 되는 문제들이어서 그렇다. 축구공이나 로켓을 구성하고 있는 미립자들의 작동 방식까지도 면밀히 다 분석하려면 고전물리학으로는 도저히 안된다. 축구공이 발로 차는 순간 이 우주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고전물리학으로는 부족하다. 양자역학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전물리학보다는 더 정확하고 옳은 이론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고전물리학의 세상은 상당히 "왜곡"된 현실이다. 헬름홀츠 말처럼 일상생활에서는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먼 왜곡된 현실인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제기해야할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왜 잘못된 고전물리학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 잘 부합하는데 반해서 더 세상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양자역학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질까? 왜 인간의 감각과 경험의 방식은 진실된 사실보다는 왜곡된 환상을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뇌가 구현해내는 일상적인 세계의 모습은 실제와 다르기 때문이다. 감각시스템을 통해 우리 의식에 전달되는 세계의 모습은 실제와는 완전히 다른 허구다. 전도몽상이다. 일상적인 경험이 주는 세계의 모습이 허구이기 때문에 그러한 허구의 모습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고전물리학도 허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의 상식과 직관에는 잘 부합한다.

우리의 뇌를 통해 본 세상의 모습은 왜곡된 허구이긴 하지만 무작위적인 허구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뇌는 아무렇게나 멋대로 왜곡하지는 않는다. 뇌는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현실을 왜곡한다. 눈 앞에 보이는 나무에 내 몸에 열량을 공급할 수 있는 열매가 열려 있으면 그것을 얼른 알아보고, 손을 뻗어 따서, 냄새 맡아 상하지 않았나 확인하고, 맛있다고 느끼면서 먹을 수 있도록 뇌는 진화했다. 나의 신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맹수는 피하고 사냥감에는 돌도끼를 던져 사냥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것이 우리 뇌의 인식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의 완성본이 고전물리학이다. 양자역학은 우주의 본 모습을 훨씬 더 정확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게 "실제 모습"으로서의 우주를 파악하는 것은 사실 토끼 사냥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 그러나 레이저 광선을 만든다든가, 반도체와 컴퓨터를 만든다든가, 와이파이와 인터넷을 구축한다든가 하는 데 있어서는 양자역학이 필수적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의 한계

전통적으로 고전물리학은 기계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이 기계론적 세계관이 오늘날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인문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거의 모든 학문 분야가 암묵적으로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는 이 기계론적 세계관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전제들을 갖고 있다.

(1)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독립적인 입자들이 서로 외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외적인 상호작용이라는 것은 사물들이 자기 자신의 실체성과 고정성은 유지한 채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뜻이다. 마치 서로 부딪히며 움직이는 당구공과 같은 존재로 온갖 사물들을 이해한다. 생명현상이든 물리현상이든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현상이든 근간을 이루는 독립적인 요소들이 전제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이러한 세계관은 그대로 적용된다.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고립되고 독립된 단위로서의 개인들이 서로 상호작용해서 이 사회를 이룬다고 보는 것이다. 학문과 분석단위에 따라 그 입자는 미립자일 수도 있고, 분자일수도 있으며, 세포일 수도 있고, 개인일 수도 있고, 조직이나 국가일 수도 있고 혹은 우주의 항성일 수도 있다.

(2) 독립적인 입자들의 상호작용은 주로 인과관계로 설명이 된다.

시간의 축에 따라 하나의 입자가 다른 입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인과관계의 기본구조다. 인간의 언어 구조 자체가 이미 인과관계적 설명에 최적화되어 있다. 자연과학이든 인문사회과학이든 "무엇이 무엇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가 연구 문제의 기본적인 패턴이다. 인과관계의 바탕이 되는 시공간은 칸트의 주장대로 인간의 의식이나 경험 이전에 이미 선험적으로 주어져있는 것이다. 사물들의 상호작용을 경험하는 인간의 의식과 기억에 의해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사후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보아야 타당하지만, 기계론적 세계관에서는 시간은 인간의 모든 경험에 앞서서, 인간의 경험과는 상관없이, 객관적이고도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3) 전체는 부분의 모임이다.

사물의 본질은 그것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에 있다고 본다. 구성요소로서의 독립적인 입자들의 특성이 주어지고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방식이 완벽하게 기술될 수 있다면 전체에 대해서는 별도의 개념화가 필요없다고 본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는 말은 입자들의 특성과 상호작용의 방식과 결과가 전부 다 파악되지 않았을 때나 타당한 말이 된다.

이러한 기본적 전제를 지닌 기계론적 세계관의 핵심은 본질적인 것이 독립적인 입자, 즉 전체를 이루는 작은 부분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전체는 작은 원소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며, 전체에 대한 이해는 그것을 구성하는 작은 알갱이들의 특성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방식(주로 인과관계)을 이해하면 얻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즉 실체나 본질은 어디까지나 구성요소인 원소에 있는 것이고 그것들이 모여서 이루어낸 전체는 인간의 인식작용이 가해진 일종의 추상적이고도 개념적인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독립적인 입자란 것은 없다. 일시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미립자들은 서로 얽혀있고(entanglement), 상태는 중첩되어 있어 (superposition) 인과관계적로 설명하기 어렵다. 고유한 자기만의 위치나 특성을 유지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현재 상태가 과거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인과관계(?)를 보이기도 한다. 데이빗 봄에 따르면 결국 양자역학은 우주가 미립자나 독립적인 알갱이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Bohm, 2002).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의 간극

상대성 이론은 거대한 천체를 설명하는데에는 유용하지만 미시적인 세계의 미립자를 설명하는 데에는 적절치 않다. 그 이유는 상대성이론 역시 기계론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고 있기에 엄격한 연속성 (strict continuity), 엄격한 결정주의, 엄격한 국지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불연속성, 비결정성, 비국지성을 전제해야만 한다 (Bohm, 2005, p.8).

첫째, 불연속성. 원자핵의 주변을 도는 전자는 특정한 궤도들을 따라 돈다. 따라서 한 궤도와 다른 궤도 사이에 전자가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자는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바로 "점프"해버린다. 즉 궤도와 궤도 사이를 "지나가지도 않은 채" 궤도를 바꾸는 것이다 (Bohm, 2005, p.6). 이러한 불연속성은 기계론적 세계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둘째, 비결정성.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두가지 성질을 동시에 갖으며 주변 환경 (실험이나 관찰 여부)이라는 맥락에 따라 입자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파동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 역시 기계론적 세계관을 무너뜨리는데, 왜냐하면 기계론적 세계관에서는 특정한 입장나 사물들은 주변 맥락에 따라 자신의 본질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의 입자들은 마치 생명체들 처럼 환경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Bohm, 2005, p.6). 즉 입자들은 중첩상태(superposition)에 있으며 그 본성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세째, 비국지성. 양자역학에서 입자들은 비국지적(non-locality) 연결성을 갖는다. 국지성(locality)라는 것은 특정한 사물이 특정한 공간적 위치에 있다는 것인데 미립자들에게는 이러한 특성을 부여하기 힘들다. 하나가 두 곳에 동시에 있을 수도 있고 서로 멀리 떨어져있는 입자들이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에서는 서로 가까이 있는 것들끼리만 영향을 주고 받기에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미립자들이 기계론적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특성을 보인다는 것은 기계론적 세계관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미립자들이 보여주는 것은 "모든 것은 서로 보이지않는 연결성에 의해서 한 덩어리로서 짜여져 있다(woven together)"는 사실이다 (Bohm, 2005, p.7).

봄은 미시세계의 양자역학과 거시세계의 상대성 이론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하고 두 이론적 틀을 통합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는 두 이론 체계의 차이점에 촛점을 맞추기보다는 우선 두 이론체계의 공통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공통점은 우주 전체의 깨어지지 않는 전체성(unbroken wholeness)이다 (Bohm, 2005, p.8). 봄에 따르면 기존의 양자역학이나 상대성 이론 모두 다 기계론적 세계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입자나 부분을 진짜 실체로 보는 것이고, 전체라는 것은 잉여개념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라는 개념은 사실 없어도 되는데 생각하기에 편하니까 추상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다. 봄은 이러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분이 오히려 인간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추상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봄이 제안하는 우주의 모습은 하나의 유기적 전체(organic whole)이며 따라서 그의 양자물리학은 양자 역학(mechanics)이라기 보다는 양자 유기학(organics)라 할만 하다.

우주는 원래부터, 본질적으로, 전체로서의 한 덩어리인데, 인간이 자의적으로 구분하고 나누고 개념화하여 부분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흔히 부분들이 구체적인 실체이며 전체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즉 개인이 구체적 실체고 사회는 개념적 추상이며, 별이 구체적 실체고 은하는 개념적 추상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봄은 그 반대라고 주장한다. 기계론적 세계관의 기반이 되는 구성 요소들이야말로 오히려 인간의 인식 작용이 가해져서 구분되어진 일종의 추상적이고도 개념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즉 전체가 구체적인 실체이며 부분이 추상적이고도 개념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원래 한 덩어리인 우주를 인간이 자의적으로 부분들로 나누고 개념화하여 인과관계를 통해 설명하려 하기 때문에 우주의 본래 모습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봄에 따르면 우주는 처음부터 전체로서의 하나 혹은 하나로서의 전체(wholeness)다. 인간이 인식하는 개별적인 사물이란 그 전체로서의 하나에 어떤 국지적인 에너지의 흐름이나 뭉침이 발생하고 (마치 잔잔한 물위에 바람이 불면 잔잔한 파도가 이는 것처럼) 그러한 뭉침 (일어섬 혹은 구성된 파도) 하나 하나를 개별적인 것으로 "추상화" (개념화)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커다란 사물 (예컨대 거대 은하)에서부터 작은 사물 (미립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거대한 바다를 이루는 한 덩어리에서 나온 크고 작은 파도들에 불과하다.

인간이 자의적으로 거대한 바다의 일부인 "파도"를 독립적인 실체라고 따로 떼어서 보고, 파도들간의 상호작용과 인과관계를 설명하려 한 것이 지금까지의 기계론적 세계관이다.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파도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진정한 이유는 모두 다 거대한 바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파도들의 집합체로 바다를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파도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바다 전체를 알아야 한다. 전체로서의 바다를 이해해야 부분으로서의 파도를 이해할 수 있다. 전체를 통해서만 부분은 이해될 수 있다. 파도를 통해서 바다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분을 우선 이해해야 전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고전물리학적 세계관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부분을 우선시 하는 것이 전도몽상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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