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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환 Jan 07. 2023

감정이 두려움 하나 뿐이라는 것의 의미

긍정적 "감정"은 감정이 아니다

두려움과 분노는 본질적으로 같다


앞에서 우리는 마음근력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고, 마음근력의 강화를 위해서는 편도체의 안정화와 전전두피질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마음의 기반이 되는 의식의 작동방식에 대해서는 자유에너지 원칙과 능동적 추론 이론을 통해서, 그리고 의식의 본질적인 내용인 내면소통에 대해서는 마코프 블랭킷 모델과 생성질서의 개념을 통해 살펴보았다. 아울러 전통적인 명상 수행법의 핵심에는 마음근력 강화를 위한 내면소통 훈련의 요소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이제부터는 실제로 편도체 안정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마음근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부정적 정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두려움과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편도체를 안정화하는 것이다. 편도체를 안정화한다는 것은 결국 감정을 잘 다스린다는 것이며, 이는 마음근력의 핵심인 자기조절력의 기초이기도 하다. 편도체와 관련된 감정은 주로 부정적인 것이다. 물론 강한 관심을 끄는 대상이 나타나거나 매우 기쁠 때에도 편도체는 활성화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편도체는 위기 상황에서 활성화되고 그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몸을 준비시킨다. 이 준비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신체적 변화를 뇌는 두려움이나 불안 등의 '감정'으로 느낀다. 위기 상황이라는 판단 하에 신경시스템이 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몸의 상태는 두려움이라는 감정 (emotion)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얼른 해소되지 않을 때 분노나 공격성의 감정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편도체 활성화’란 부정적 정서의 기반이 되는 몸의 여러 가지 현상을 환유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해둔다. 부정적 정서가 ‘편도체’라는 뇌의 일부 부위와만 관련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긍정적 정서는 어떠한가?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부정적 정서’라는 말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개념이다. ‘부정’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마치 ‘정서’라는 실체가 존재하고, 그중에서 부정적 정서와 긍정적 정서가 존재하는 것인 양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i] 


행복감이나 삶의 만족도, 내재동기 등을 흔히 긍정적 '정서’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때의 ‘정서’는 분노나 두려움 등을 가리키는 부정적 정서에서의 ‘정서’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동일한 하나의 '정서'라는 실체가 있는데 그중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두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정서(emotion)는 부정적인 감정만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행복감이나 삶의 만족도 혹은 즐거움이나 사랑과 같은 개념과 분노와 두려움과 같은 개념을 모두 포괄하는 상위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 감정이나 정서는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긍정적 정서의 '정서'는 감정이나 정서가 아니다. 즉 부정적 '정서'에서의 '정서'라는 말과 긍정적 '정서'에서의 정서라는 말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같은 개념에 긍정 혹은 부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긍정적이지도 않고 부정적이도 않은 그냥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정서'란 없다. 정서 혹은 감정은 ‘emotion’을 번역한 말인데, 이는 분노, 짜증, 두려움, 걱정, 공포, 역겨움 등을 일컫는 말이다. 흔히 긍정적 정서라 일컬어지는 행복감은 전전두피질의 활성화와 주로 관련되며 편도체 활성화와 관련된 부정적 정서와는 기본 작동 기제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긍정적 정서에서의 '정서'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생각'에 더 가까운 것이다. 반면에 즐거움, 행복감, 자부심, 자타긍정, 용서, 감사,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 등의 긍정적 정서는 몸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마음 작용에 기반한 것이다. 


반면에 부정적 정서는 전적으로 몸의 작용을 기반으로 한다. 어떤 기억이나 생각을 떠올려서 부정적 정서가 촉발되는 경우에도 다마지오의 신체표지가설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ii] 일정한 기억이나 생각이 몸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러한 몸의 변화를 대뇌가 감정으로 해석해냄으로써 감정인지가 일어난다. [iii]


나쁜 일에 대한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은 편도체의 활성화를 가져온다. 편도체는 온몸에 ‘위기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경보 시스템과도 같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신체 여러 부위가 긴장되고 심장박동은 빨라지며 근육에 혈액이 모여 에너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러한 몸의 변화를 뇌가 감지하여 능동적 추론을 통해 ‘불안감’이나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결국에 부정적 감정은 몸 상태에 관한 해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편도체 활성화가 언제나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강한 쾌감이나 흥미를 느낄 때도 편도체는 활성화된다. 그러나 지속적인 편도체 활성화는 대부분 습관적인 부정적 감정 유발과 관련된다. 편도체의 지속적인 활성화 상태는 전전두피질 신경망의 작용을 억제해서 마음근력을 약화한다. 마음근력 강화를 위해서는 우선 편도체를 안정화하는 훈련을 통해서 부정적 감정이 유발되는 습관을 잠재우고 감정인지 및 감정조절 능력을 키워야 한다. 


편도체 안정화를 통해 부정적 감정을 가라앉힌다고 할 때, 과연 어떠한 부정적 감정을 말하는 걸까? 흔히 부정적 감정에는 분노나 짜증, 불안감이나 두려움, 역겨움, 좌절감, 우울감 등 여러 종류가 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뇌과학적으로 볼 때 부정적 감정은 단 하나뿐이다. 하나의 실체로부터 여러가지 부정적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여러 부정적 감정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사회문화적으로 그렇게 통용되는 것일 뿐 근원적으로는 하나의 실체다. 


가랑비, 보슬비, 소나기, 장맛비 등은 불리는 이름이 다를 뿐 근원적으로는 모두 ‘비’인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당 얼마만큼 내리는 것이 가랑비고 소나기인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우박, 함박눈, 싸라기눈, 진눈깨비 등도 불리는 이름이 다를 뿐 모두 ‘눈’이다. 심지어 눈과 비도 처음부터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얼음알갱이였다가 지표면에 가까워지면서 빗방울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 눈이 덜 녹거나 녹았다가 다시 조금 얼면 진눈깨비가 된다. 눈과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라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같다. 바람도 마찬가지다. 봄바람, 산들바람, 강풍, 태풍, 회오리바람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본질적으로는 ‘공기의 흐름’이다. 비, 눈, 바람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여러 이름은 대개 사회문화적 산물이지 과학적 실체는 아니다.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감정에는 긍정적인 것이나 부정적인 것이 따로 있지 않다(왜냐면 긍정적 '정서'는 엄밀히 말해서 '정서'가 아니므로). 부정적 감정에 다양한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감정의 실체는 ‘부정적 감정’ 단 하나뿐이고, 그것의 본질은 ‘두려움(불안감 혹은 공포)’ 하나뿐이다. 두려움에서 좌절감과 우울감이 오고 분노와 공격 성향이 나온다. 불안감은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모든 부정적 감정의 근원이다. 두려움과 분노가 별도의 실체인 양 개념화하고 연구하는 것은 마치 가랑비와 소나기를 별도의 실체인 양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감정에 대한 이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랑비나 소나기나 모두 ‘비’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는 것이다. 즉 분노나 짜증이나 신경질이나 불안감이나 모두 다 ‘두려움’의 다양한 형태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은 말하자면 '강수량'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강수량에 대한 원인과 결과에 대해 면밀한 연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심리학은 통속심리학(falk psychology)에서 가져온 분노, 슬픔, 두려움, 역겨움 등의 감정 개념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마치 그러한 감정들이 과학적인 실체가 있는 것인 양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배럿 교수의 주장대로 이제 감정에 관한 연구는 뇌의 기본 작동 방식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귀납적인 방법으로 접근해가야 한다. [iv]

배럿 교수에 따르면 분노, 슬픔, 공포, 역겨움 등 전통적인 감정의 종류나 개념화는 일상적인 언어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들이 아니다. 해결되지 않는 두려움 때문에 좌절감에 빠지고 그에 따라 공격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을 분노라 한다면, 두려움과 분노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감정이 아니다. 역겨움 역시 분노의 한 표현 방식에 불과하다. 


뇌과학 연구들도 전통적인 의미에서 분노, 두려움, 역겨움 등의 감정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실체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기 시작했다. 분노, 슬픔, 두려움, 역겨움, 행복감 등 심리학에서 오랫동안 '기본 감정'이라고 여겨왔던 감정들은 각기 관련된 특정한 뇌 부위가 존재하고 심지어 동물들에게도 존재하는 보편적이고도 기본적인 감정이라고 가정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뇌영상 연구는 특정한 개별 감정에 대응하는 특정한 부위나 특정한 네트워크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v] 


모든 감정의 본질은 두려움이다. 따라서 감정조절장애의 문제나 습관적 부정적 정서 유발의 문제는 모두 두려움에서 벗어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마음근력이 강화된다는 것은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 불안감이 없는 상태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특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수록 중요한 마음근력 중 하나인 회복탄력성이 강해진다.



[BOX]------------------------------------------- 


<데카르트의 실수> 신체표지가설

감정이 몸의 여러 상태에 의해서 결정되며 의사결정 등 인지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것은 뇌과학자 다마지오이다. 그는 신체표지가설(somatic marker hypothesis)을 통해서 인간의 감정은 몸의 특징적인 변화를 통해 인지된다는 이론을 발표했다.[i]

편도체가 활성화하는 것은 변연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인간의 의식이 직접 인식하지는 못한다.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호르몬이 분비되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불규칙해지며, 근육들이 긴장되는 몇몇 특징적인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면 그제야 신체 변화를 감지해 감정의 유발을 인지하게 된다. 나아가 다마지오는 이러한 신체의 변화가 의사결정 과정 등 이성적인 인지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내복측전전두피질(vmPFC)이나 편도체에 의한 신체변화가 인간이 스스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여기는 사유과정에 직접적이고도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ii]

심리학자들도 변연계에서 촉발되는 자신의 감정 변화를 스스로 인지하는 것은 신체 변화가 대뇌피질에 사후적으로 전달된 이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iii]

화가 나거나 두렵다는 등의 감정 유발은 변연계에서 촉발된 신호가 신체의 특징적인 변화들을 가져오고, 신체표지로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들을 대뇌가 감지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스스로 특정한 감정 상태를 인지하는 것은 따라서 변연계가 특정한 흥분상태에 돌입한 후 신체의 변화가 생겨난 이후, 즉 0.5초 가량 지난 다음이다. 감정은 의식이나 생각보다는 본질적으로 몸의 문제이며, 특정한 무의식적 움직임의 상태인 것이다.


데카르트 이래 인간의 이성은 몸과는 상관없는 영혼과도 같은 존재라 여겨졌는데, 인간의 이성이야말로 오히려 철저하게 몸에 기반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기에 다마지오는 자신의 책 제목을 '데카르트의 실수(Descartes' error)'라고 지었다. “나는 인지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기보다는 “나는 느끼고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후속 연구들을 통해 다마지오는 인간의 의식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뇌와 몸이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시스템이 곧 자의식’이라고 답한다.[iv]

몸과 뇌의 관계에 있어서 몸은 의식이 다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폭 넓게 많은 정보를 주는데 반해서, 의식이 몸에 주는 정보는 의도나 행동 등 매우 제한적이다. 

결국 다마지오 역시 지나스[i]나 월포트[ii]와 마찬가지로 의식을 몸의 효율적인 작동을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의식과 감정에 대한 여러 뇌과학 연구들은 마음근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에 새로운 ‘고정된 행위유형(fixed action pattern, FAP)’을 학습시키는 것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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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i] 감정(emotion)은 상대적으로 일시적인 것이며 정서(affection)는 지속적인 성향에 가까운 것이라고 구분하기도 하지만, 일단 여기서는 근원적으로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는 개념이라 해두자. 한편 느낌(feeling)은 몸이 주는 감각정보를 바탕으로 의식이 일차적으로 막연하게 인지하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느낌은 특정한 기분 상태(mood)에 영향을 미친다.

[ii] Damasio, 1994

[iii] Barret, 2017

[iv] Barret, 2017

[v] 뿐만아니라 SN(현저성네트워크)는 다양한 여러 감정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Touroutoglou et al., 2015. 


참고 사항: 이 글은 곧 출간될 책 원고의 일부이며, 인용이나 복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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