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철 졸업생, 인문학으로 먹고살고 싶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답이 없는 학문이다

by 김시현


4년제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졸업한 지 3년이 지났다. 내게 전공은 무엇을 남겼던가.


인문학을 전공한 걸 후회하진 않지만 다른 선택을 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은 든다. 세상 물정 몰랐던 열아홉의 나는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 그저 행복할 줄 알았다. 책 읽는 걸 좋아하니까, 글 쓰는 게 취미니까 적성에 맞겠다 싶었다. 아니, 꽤 낭만을 쫓는 마음으로 전공이 직업이 될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의대를 포기하고 서울대 서어서문학과를 선택했다. 생각대로 대학 공부는 재미있었다. 외국어를 배우고, 문학을 읽고 적어낸 생각을 들어주는 이들 앞에 풀어냈던 4년의 시간은, 목말랐던 문학에 대한 갈망과 지적 허영을 채우고도 남았다. 그러나 밥을 먹여주진 않았다.


뭐 애초에 내가 전공에 기대한 것은 돈이나 명예 따위가 아니었다. 욕심과 기대가 없어서였나. 그래서 전공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후회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27살 다시 수능을 다시 쳤다. 이번에는 새로운 전공으로 약학을 선택했다. 그런 나를 보고 많이 돌아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부터 한의대를 갔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인생에서 대학의 의미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열아홉의 나에게 대학은 통과의례였다. 남들보다 대단히 뛰어나진 않더라도 남들 하는 만큼만 딱 하고 살자. 그래서 대학을 갔고 이왕 갈 거면 좋아하는 공부를 하자는 생각이었다. 돈이 넘치게 많았다면 전공 공부를 계속했을 텐데. 현실의 문제를 이길 만큼 문학이 애틋하진 않았던 것 같다. 교수가 되고 논문을 내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인문학이 조금 다르다고 느낀 것도 있다.


지금에 생각해 보면 열아홉의 나는 막연히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4년의 유예를 선택했다. 고3 입시가 끝나고 한의예과와 서울대 서어서문학과에 모두 합격했을 때 어리석다는 주변 어른들의 만류에도 나는 인문학도가 되길 선택했다. 4년의 대학 생활은 내 인생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불안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인문학도로 4년의 대학생활을 보내고 느낀 점이 있다. 그중 하나는 인문학은 정말이지 '답이 없는' 학문이라는 거다. 어디에도 정해진 정답이 없다. 대학에서 들은 수업도 지극히 고독한 문답 속에 논리를 갖춘 임의의 결론을 찾는 항해에 가까웠다. 가끔은 '정답이 없다' 막막함에 좌절하기도 했다. 나의 답을 적어보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더없이 즐거웠지만 새로운 답을 끊임없이 '창작'하는 것이 버겁기도 했다. 수학처럼 정해진 답을 확인하고 느끼는 안식이 인문학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아주 잠시 방황했다.


학년이 올라가고 진로 고민이 더해질수록 회의와 좌절을 느낄 때도 있었다. 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로 '후려치기'를 당하는 전공의 현실에 마음이 쓰리기도 했다. 인문학을 전공해서 취업은 어떻게 하냐는 이야기를 면전에 대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취업하려면 복전 뭐 할 건데. 우리 과 올래?"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가 장난스레 던진 말에 웃어넘겼지만 재미있진 않았다. 인문학을 '비상경 문과'로 분류하고 무용한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 속에 방황했고 2학년 여름, 처음으로 전공선택을 후회했다. 공부는 즐거웠지만 이것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남들 따라 상경계열 수업을 듣고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도 나름 할만했다. 경영, 경제 수업을 들으며 사회와 현실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것도 즐거웠다. 결이 다른 학문을 자격증 공부와 1년 병행했다. 그러던 중 인문학이 문득 그리운 하루가 있었다. 시를 쓰고 도서관에서 소설책을 대출하던 내가 경제, 회계 문제집을 사모은 지 정확히 1년째 되던 날이었다. 그 날부로 무용한 것을 다시 시작했다. '문송한' 전공생이 되는 대신 내가 인문학을 사랑했던 시간을 되새겼다. 필연적으로 그것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약학이라는 새로운 전공을 선택했고, 내 진로는 계획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갔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전공을 붙들고 있다. 졸업 후에도 스페인어를 계속 공부했던 이유는 대학 시절의 자유와 탐독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에서였다. 나는 나에게 시간을 조금 더 주고 싶다. 전공을 살려 몇 푼의 돈을 버는 건 액수와 별개로 의미가 있었다. 사랑하는 학문이 오락으로 취급받을 때 나는 무용한 것이 애정의 이유가 된다 믿었다. 퍽이나 낭만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인문학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대학원을 간다거나 학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흥미를 녹여 작은 돈을 번다는 사실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전에 코로나로 대면 수업을 못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전체 메일로 인문대학 학장님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학장님은 비대면 수업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시며 팬데믹 속 복잡한 현실의 새로운 삶을 모색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어려운 시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며 무엇을 위해 살 것이냐를 묻는 가치의 문제에 대해 탐구하는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어떤 것이었던가.


"매일을 씨름하며 인문학을 공부하는 여러분은 큰 자부심을 가지길 바랍니다."


그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가치의 문제를 씨름하는 나의 문학은 여전히 무용하나 날 것의 자유로운 생각에 관해 오늘부터 매일의 기록을 공유하고자 한다.






서울대 졸업 후 공부방 창업 2년, 그리고 약대 입시 도전

https://youtu.be/UrbH1ZQSC5o?si=aMTxPJWekGvSfIv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