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지 않아도 모두 늙으니까 젊음을 찬미하는 거야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by 김시현

늙음을 증오하진 않았지만 후회 없이 지금을 채워낼 자신이 없었다. 당시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건 젊음이었다. 젊음은 쉽게 사랑의 이유가 되었고, 젊음을 찬미하는 사회는 많은 것을 묻지 않고 나의 하루를 사주었다. 그러나 언젠가 시간은 이러한 특권들을 앗아갈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으로 나는 때를 기다리는 늙음을 막연히 두려워했다.


젊음은 왜 사랑의 이유가 될까. 본디 인간은 후회하고 과신하고 미정(未定)의 여유에 쉽게 안도하기에 우리는 젊음에 되지도 않는 값을 부르는 게 아닐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젊음은 무용(無用) 한 것이 되는가. 평범한 하루를 확정(確定)하길 반복하며 나는 빠르게 늙어갔다.



며칠 전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The Sorrows of Young Werther),1774>이었고, 또 하나는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1916)>이란 책이다. 숙제처럼 읽기를 미뤘던 책들을 읽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이 책들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는데 첫째는 괴테의 작품을 한 권씩 독파하려던 차였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두 권의 책 모두 공교롭게도 제목에 '젊은(Young)'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였다. 왜 예술가의 초상은 젊음의 시간에 그려졌을까. 슬픈 베르테르는 어찌하여 '젊은'이라는 말로 수식(修飾)될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The Sorrows of Young Werther),1774> 속 주인공은 젊고 감성적이다. 사랑의 실패로 절망하고 결국엔 자살을 택한다. 그는 어리석고 욕망하는 존재다.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사랑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좌절한다. 그렇다, 베르테르는 지극히 낭만적이다. 낭만은 젊음의 성질 중 하나다(여기서 젊다는 것은 나이가 어리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 관용적 표현을 의도한 것임). 성인이 되는 과정 속 학습이란 미명 아래 우리는 이성의 통제 아래 낭만을 가둔다. 여기서 낭만(浪漫)이란 무엇인가.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이상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시선. 고전주의와 계몽주의에 반발한 낭만주의는 감정에 주목했고 젊음은 그런 낭만에 취약하다. 그래서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한 베르테르의 어리석음은 필연적으로 젊음의 시간 가운데 존재했다. 근소한 차이지만 젊은 시절에 미친 짓을 더 자주 저지르는 법이다.


인간은 단조로운 존재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사는 데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약간의 자유로운 시간이 주워지면 겁을 집어먹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온갖 수단을 강구한다네. 오, 인간의 운명이여!





스물한 살 여름, 문득 매일 늙어간다는 사실이 기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절 나는 우울함을 자주 느꼈는데 큰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타지 생활은 막연히 외로웠고 돈은 늘 부족했다. 위안이 될 수 없는 가족들이 신기하게 그리웠고 허한 감정을 채우려 값싼 음식들을 입에 쑤셔 넣었다. 구역질이 나올 때까지 먹고 나면 어김없이 울었다. 그 밖에도 사소한 이유들이 있었는데 별 거 아닌 것들이었다. 문제는 그런 불행의 이유가 너무 많았고 무디지 못한 성정은 애석하게도 오래 버텨주지 못했다. 나의 '젊음'은 힘이 없었고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그 시절을 동정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젊음을 사랑하는 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그중 하나는 약함일지도 몰라.


약함은 가엽다. 젊음은 쉽게 다친다. 약함은 어리석다. 젊음은 맹목적이다. 약함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젊음은 실수한다. 약함은 동정심을 일으키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젊음은 감성적이고 인간적이다. 신은 내게 약함은 사랑의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2 Corinthians 12:8-9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2 Corinthians2 Corinthia


매일 밤 울고 다음 날이 되면 아무렇지 않은 척 사람들을 만났다. 웃고 떠들고 수업을 들었다. 동아리 연습을 하고 친구들과 밥을 먹었다. 지킬 앤 하이드처럼 낮에는 웃고 밤에는 울었다. 간헐적으로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았다. 행복과 불행은 짧은 주기로 반복되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는데 하루는 어떻게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셨고 약을 주셨다. 이상하게도 약을 먹으나 먹지 않으나 똑같았다. 그 뒤에도 젊은 나는 평소와 같이 자주 울었다. 병원에 가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여섯 번 정도 진료를 받았고 더는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결정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때 나는 스물둘의 봄을 믿지 않았고 늙음을 언제든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건강을 되찾고 스물일곱의 겨울을 지금에 산다. 전의 슬픔과 우울은 바래고 닳았다. 이런 생각이 든다. 젊음은 과거로 추억되기에 미화되는 것이 아닐까. 끔찍했던 시간 속 마음의 상흔이 방황하는 젊음의 공적이 된 것처럼 말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모두 늙으니까, '늙음의 특권'을 우리는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게 아닐까. 권태롭든 위태롭든 정직하게 젊음을 소진한 뒤에야 늙음은 허락된다. 늙음이 있기에 젊음은 아름답다. 젊음이 있기에 늙음은 가치 있다. 나는 가능하다면 늙음의 시간까지 오롯이 살아낸 뒤 죽고 싶다. 내 꿈은 할머니가 되는 거다. 할머니가 된다는 건 꽤 어렵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기르고 내 자식이 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매일 밥도 먹고 돈도 벌고 잠도 자야 한다. 젊음을 채우고 늙음을 준비해야 한다. 생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필요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운의 요소도 개입된다. 젊음처럼 늙음도 특권이란 생각이 든다. 차이가 있다면 늙음이 허락된 사람이 더 적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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