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다시 꺼낸 운전면허증
우리 동네에는 운전면허 학원이 있다. 집에서 느린 걸음으로 가도 3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수능이 끝나면 반 아이들 중 절반은 그 학원에 등록했다. 중학교 때 얼굴만 알던 애도 있고, 옆 반 친구들도 있고 운전면허 학원이 만남의 장인가 싶을 정도로 동네 애들이 하나 같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면 면허를 따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막상 서울로 대학을 와보니 동기 중 운전면허를 딴 사람은 내가 거의 유일했다. 동아리에도 운전을 할 줄 아는 친구가 고작 서넛이라는 게 신기했다. 서울과 지방 차이도 있겠고 우리 동네에 운전면허 학원이 있어 유난히 주변에서 많이들 땄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1종 보통면허를 한 번에 붙었다. 그래서 나도 당연히 1종을 쉽게 딸 거라 믿으셨다. 내가 트럭 운전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투덜거리자 엄마는 말했다. 기왕 따려면 1종 따야지. 엄마는 딸을 믿었고 결국 배신당했다. 엄마의 입김에 나는 굳이 2종을 두고 1종 시험으로 학원에 등록하고 만다. 필기는 무난히 통과했으나 기능시험이 발목을 잡았다. 나는 기능시험을 3수 했다. 첫 번째는 시작하자마자 시동이 꺼져 탈락이었는데 아직도 내가 뭘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두 번째 시도 때는 T자 주차코스에서 차를 이상하게 밀어 넣어서 탈락. 결국 돈을 주고 추가 연수도 세 번 정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2종 한다고 했잖아. 나 연수비랑 시험비로 집안 말아먹겠어.
중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지금까지 들인 돈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다. 이게 붙어야 끝나는데 진심으로 면허 따다 거지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나는 한결같이 어리바리했는데 첫 번째 선생님은 젠틀하셨고 추가 연수 때 만난 두 번째 선생님은 과격하셨다. 두 번째 선생님께 욕을 먹으며 눈물의 특훈을 한 끝에 기능시험을 통과했고 다행히 도로주행은 한 번에 붙었다. 면허 사진은 수능 원서 사진으로 했다. 사진관에 가서 새로 찍자니 귀찮고 마침 원서 사진이랑 규격이 딱 맞기에 그렇게 했는데 7년째 후회 중이다.
운전대를 7년 만에 잡게 된 건 올해 다시 대학에 가면서다. 뭐든 코앞에 닥쳐야지 시작하는 법이라고. 학교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학하면 왕복 3시간이다. 차를 타고 가면 가는 데 30분 밖에 안 걸리니 다른 선택지가 없다. 약대는 학과에서 시간표를 짜준다. 몇 개의 교양을 빼고는 선택권이 없는데 월, 화, 수 수업이 5시 45분에 마친다. 6시 30분까지는 집에 와야지 공부방 수업을 할 수 있다. 대학생활과 원래 하던 공부방 일을 병행하려면 운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하다. 상황이니만큼 미루던 숙제를 억지로 하는 기분이지만 언젠가는 해내야 할 일이다.
엄마랑 운전연습을 시작한 지 벌써 이주 째다. 내가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켜면 엄마는 핸들과 내 오른손을 붙들고 중얼 기도를 외운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 시현이, 무사히 사고 없이 운전하게 해 주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세요.
맞잡은 손을 슬쩍 빼도 고쳐 쥐고 엄마는 기도를 한다. 놓으라고 하면 무시한 채 내 손을 더 세게 쥔다. 솔직한 심정으론 나도 무섭다. 아니 운전하면서 신경 쓸 게 왜 이렇게 많은지. 에이포 용지에 '초보 운전'이라고 크게 적어 붙이고 첫날은 지하주차장만 열 번은 돈 것 같다. 도로에 본격적으로 나간 것은 이틀 째부터였다.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가 끝날 때쯤이면 '아멘'하고 따라 하라고 엄마는 재촉한다. 그러는 엄마가 괜히 유난이다 싶어 '싫어. 나 갈래.'라고 말하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다. 대신 속으로 혼자 조용히 '아멘'하고 되뇐다.
하나님, 저 지금 아멘 했어요. 아시잖아요. 엄마 앞에서 센 척한 건 진심이 아니고요. 오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지켜주세요. 아까 엄마 앞에서 아멘 안 했다고 안 지켜주시면 안 돼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이주 간 운전연습을 4번 나갔다. 스무 살에 딴 면허증을 7년 동안 묵혔는데 몸은 그때 배웠던 걸 기억하는지 지금까지는 순조롭다. 하지만 자만은 금물. 평생 무사고 기원이다.
너는 생각보다 운전하는 데 겁은 없네.
둘째 날에 도로에 처음 나가서 교회까지 한 번, 학교까지 한 번 찍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가 말씀하셨다. 호들갑을 떨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차분히 운전하는 게 신기하다고.
뭐 그냥 하는 거지. 이거 말고도 어려운 게 너무 많다.
나이를 먹을수록 무서운 게 줄어든다. 두려워할 여유도, 기력도 없다. 그냥 그런대로 살자 싶다. 스무 살에는 모든 것이 무서워서 운전대를 꾹 쥐고 한껏 오그라든 어깨로 덜덜 떨며 도로를 다녔는데 스물일곱에는 운전보다 힘든 게 수없이 많아서 이건 그럭저럭 할만하다. 겁먹지 않아도 될 것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말고 마땅히 조심해야 할 것에 주의하며 오늘도 안전 운전. 아직도 차선 바꾸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