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부은 청약 통장을 해지했다

돈 때문에 인생 속도를 줄이지 말 것

by 김시현

살면서 청약은 하나 들어놓아야 한다기에 23살에 매월 10만 원 자동 납부로 통장을 만들었다. 월에 십만 원, 있으나 없으나 한 돈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올해 초 까맣게 잊고 있던 청약통장이 문득 생각났다.


아, 그 돈이 있었지.


올해 2월, 4년째 붓던 청약 통장을 해지했다. 은행에 가서 시키는 대로 모바일 앱 확인절차를 몇 차례 거치자 금방 계좌에 새로운 금액이 찍혔다. 내가 돌려받은 돈은 원금에 이자 몇십만 원을 더해 대략 480만 원 정도였다. 다음 날 그 돈으로 대학 등록금을 냈다. 27살에 들어가는 두 번째 대학, 나는 대학을 10년 다니게 될 것 같다.



첫 번째 대학은 4년제 국립대였고 국가장학금으로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학비가 쌌다. 한 학기 학비가 244만 원이었다. 그 시절, 하고 싶었던 공부를 없는 형편에 사치스럽게 했다. 돈보다 흥미를 따라 선택한 전공이었다. 한 학기는 휴학했고 매 학기 학점을 살뜰히 채워 일곱 학기를 다녔다. 동기 중 가장 일찍 졸업했다. 정확히 3년 반을 전적대에서 채우고 학교를 떠났다. 졸업 후 그럴듯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취업을 한 것도 아니었다. 종지부를 찍지 못한 수많은 과제 중 하나라도 매듭을 짓고 싶다는 초조함이 이유였다. 사기업에 취직하려던 것도 아니라 졸업에 미련은 없었다. 교환학생을 가보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졸업 후에 나는 1년을 쉬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업 수험생으로 살았는데 결과는 애석하게도 실패였다. 불합격 뒤에 남은 것은 없었다. 열심히 했지만 쉰 게 되어버렸다. 또다시 시험공부를 할 자신이 없었다. 돈부터 벌자, 뭐든 일을 하자 생각했다. 25살이 되던 해 1월, 공부방을 창업했다. 그리고 2년은 일만 했다. 열심히 일했고 집을 샀다. 지금은 20프로 정도 은행 대출이 남았다. 지긋지긋한 월세살이에 종지부를 찍던 순간의 묘한 해방감을 잊을 수가 없다. 비싼 아파트는 아니지만 다달이 나가는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일을 시작하면서 느낀 게 많은데 그중 하나는 생각보다 돈이 살아가는 데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충분히 가난해보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하는 거다.


나는 애매하게 가난한 게 싫었다. 400만 원 남짓의 연세를 낼 여유가 없어 고민하는 게 짜증이 났다. 천만 원도 아니고 고작 400만 원이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결혼을 하고 명절에 친정에 갈 텐데. 친정집이 월세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예전부터 생각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그냥 나는 '우리 집'이 무척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일은 정말 시간을 돈과 맞바꾸는 일이다. 물론 보람도 있고 즐거움도 있다. 다만 삶이 점점 지루해졌다. 사람이 성장을 멈출 때 심심해진다던데.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른가 생각했다. 돈을 벌기만 하는 삶은 재미가 없는 것 같다. 버는 것도 중요한데 잘 써야 한다. 돈을 쓰는 것만큼 또 재미있는 게 없지. 집에 붓던 돈을 이번에는 내 인생에 투자해 보기로 했다. 26살에 수능을 치고 27살, 약대에서 6년의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입학을 앞두고 기회비용을 계산해 봤다. 공부방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지금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게 맞는 걸까. 1년에 천만 원이 넘는 학비와 생활비는 어떡하지. 차라리 한 학기만 다니고 휴학한 뒤 공부방 일을 몇 년 더 하다가 약대로 돌아갈까. 쓸데없는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공부방을 병행하겠지만 전처럼 규모를 늘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똑같다. 고작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이 종종 내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다행인 것은 어릴 적부터 돈이 없을 때 현명한 선택을 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는 거다. 그건 '돈이 엄청 많은 척' 해보는 거다. 돈이 정말 많았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상상해 보기. 나는 돈이 많다면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자신에게 솔직해질 때 답은 선명하게 보인다. 결코 돈 때문에 인생 속도를 줄이지 말 것. 잊고 있던 청약 통장이 잠시 숨통을 터준 것처럼 대충 뭐 알아서 되겠지.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Psalms 23:1)



서울대 졸업 후 3년

https://youtu.be/ofTxTSPBaVk?si=gfO5siPuL_9fN1IS